연구용 시체를 향한 메스(mes : 수술칼)의 공격 시대도 끝이 보인다.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의 아나토마지사는 가상 해부대 ‘테이블’을 개발했다. 3D 기술이 탑재된 가상 시스템으로 해부학 수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지난 5월15일 아나토마지 창업자이자 대표인 최원철씨(44)가 가상 해부대 앞에 섰다. 가로 76㎝, 세로 213㎝의 80인치 LCD 화면 위로 여자의 해부도가 생생하게 뜬다. 사람의 몸을 1:1 비율로 만든 3D 입체 이미지다. 아이패드를 이용하듯 손가락으로 화면을 건드리면 장기와 혈관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자유롭게 확대ㆍ축소, 회전ㆍ절개 등이 가능하다. 얽히고 설킨 핏줄 하나하나까지 반복해서 해부할 수 있다. 보고 싶은 부위를 화면에서 잘라내고 그 단면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도 있다. SF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아닌, 현실이다.

“의사들에게 해부학은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하지만 카데바(cadaver : 연구용 시체)를 구하는 게 어렵죠. 구매는 불법이고, 기증을 받아야 하니까요. 미국에선 시신 기증 프로그램과 해부학교실을 운영하는 데 연간 50만~100만달러의 비용이 듭니다. 아나토마지 테이블(대당 6만달러)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죠? 요즘은 종교적인 이유로 시체 해부를 금지하는 나라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2011년 개발된 테이블은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을 통해 습득된 인체 사진에 해부학적 구조물을 모델링한 영상을 덧씌워 만들었다. ‘그래도 진짜만 할까.’ 의심의 목소리를 보내자 최 대표는 테이블의 장단점을 설명했다.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실제와 눈으로만 확인해야 하는 3D 이미지와는 다르겠죠. 그러나 시체는 아무리 잘 관리해도 변형되거나 변색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실제 살아 있는 인체와 차이가 있어 실습 후 실전에 돌입했을 때 어려움을 느낄 수 있죠. 반면 테이블은 완벽한 상태의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기능별, 부위별, 조직별로 구분해 면밀하게 구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혈관이 뼈나 근육 사이를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나토마지는 영상소프트웨어 개발회사로 출발해 영상 유도수술 장비, 인체모형제품, 가상해부대 테이블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전 세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스탠퍼드 의과대학과 영국의 임피리얼 칼리지 의과대학에서는 교수와 학생들이 테이블을 이용해 해부학 수업을 한다. 곧 하버드대학 안에 있는 매스 제너럴 병원에도 테이블이 들어갈 예정이며, 국내 유수 의과대학에서도 시스템 도입을 협의 중이다. 지난 2월에는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TED 콘퍼런스에서 아나토마지 테이블 기술을 직접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테이블이 교육뿐 아니라 의학 연구 분야에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도록 연구 중입니다. 각종 질병 사례를 탑재해 가상으로 신체의 변화를 관찰할 수도 있고, 수술에 들어가기 전 계획을 짜거나 이후 리뷰를 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큽니다.”

약력  1968년생.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카네기멜론대학교 기계공학전공 석·박사. 2004~현재 아나토마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