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뿌리이면서 기술개발의 원천이다. 하지만 이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간부문에서 중소기업인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포럼이 등장했다. ‘중소기업 창조경제 국민포럼’이 그것이다. 지난 3월30일 포럼대표를 맡고 있는 허범도 회장을 한국산업개발연구원에서 만나 중소기업의 역할과 포럼이 할 일 등에 대해 들어봤다.

실질적 대안 제시해 정부 정책에 반영
중소기업 살리면 경제가 살고 사회도 통합

- 허범도 회장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허범도 회장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닻을 올렸어요. 큰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죠.”

허범도 중소기업 창조경제 국민포럼 대표(회장)는 “한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봄이 태동하는 것처럼 포럼 창립은 중소기업에게 희망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24일 출범한 중소기업 창조경제 국민포럼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주역인 중소기업인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새로운 산업패러다임의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이 포럼의 설립은 1960년대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을 일으킨 주역 중 한 명이자 독일 경제학박사 1호인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이 주도했다.

포럼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이희범·윤진식 전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을 비롯해 안병만 전 교육부 장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정책고문으로 참여했다. 또 서교일 순천향대 총장, 박삼규 전 공업진흥청장, 손욱 전 삼성인력개발원장, 강병중 넥센 회장, 윤은기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이경재 삼진엘앤디 회장이 고문으로 함께 일하게 된다.

포럼대표를 맡은 허 회장은 1975년 지방의 부군수실 새마을사업을 담당하는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에 들어섰다. 이후 해운항만청을 거쳐 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인 상공부에서 인생의 전부를 보냈다. 통상·산업·무역·자원분야에서 청춘을 불태운 셈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들으며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죠. 이제는 중소기업을 살려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다시 뛰어들게 됐어요.”

허 회장은 1996년 신설된 중소기업청에서 10년간 전국의 중소기업인들과 현장에서 씨름하며 동고동락했다. 그는 중소기업 문제는 현장에서 보고, 확인하며, 그 해답을 찾았다. 철저한 ‘현장중심주의자’였다. 당시 그가 내세운 원칙은 ‘1일 1공장 방문’이었다. 10년 동안 그가 찾은 공장만 2000여곳에 달한다. 그를 ‘발로 뛰는 중소기업 전도사’로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허 회장이 백영훈 원장과 중소기업 살리기에 의기투합한 것은 지난해 늦가을이었다. “지난해 11월 어느 날인가 그랬어요. 백 원장이 제 손을 꼭 잡고 자신이 국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그런데 자기는 늙었으니 저보고 앞장서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여태껏 한 일이 바로 이 일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며 마지막 정열을 불태워 보자더군요.”

국민소득 5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서민경제의 미시적인 발전이 기반이 돼야 한다는 백 원장의 말에 그는 가슴깊이 동감했다. 중소기업의 심부름꾼이 돼서 업계의 가려움을 긁어 새로운 중소기업 바람을 일으켜 보겠다는 열정이 샘솟았다.

“3~4개월 동안 학계와 산업계, 금융계 등의 중소기업 전문가의 뜻을 모아 포럼을 출범하게 됐어요. 대해(大海)에 나가 고기를 잡기 위해선 그물과 같은 도구도 있어야 하고, 유능한 뱃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사실 아직도 준비할 게 많아요.”

포럼이 중소기업을 위한 명실상부한 주춧돌이 되기를 허 회장은 간절히 바랐다.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중소기업인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해야죠. 바둑을 둘 때도 훈수를 두는 사람이 더 잘 본다고 하잖아요. 객관적인 눈을 통해 현실에 맞는 적확(的確)한 대안을 제시해 정부가 공급자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중소기업 맞춤형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 허범도 회장은 “중소기업이 살아나면 한국경제도 원활하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 허범도 회장은 “중소기업이 살아나면 한국경제도 원활하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일자리 창출 원천”
포럼은 중소기업분과, 농업분과, 지방경제분과로 구성된다. 분과를 거친 안건은 3개월마다 한 번씩 열리는 총회에 보고된다. 이렇게 논의된 정책대안 등은 국회나 정부의 관련 부처에 전달돼 실제 중소기업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허 회장의 생각이다. 포럼은 올해를 중소기업 발전의 새로운 원년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허 회장이 포럼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한국경제에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역할이 그만큼 지대(至大)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21세기는 ‘팍스 아시아(Pax Asia)’ 시대입니다. 그 주도국은 한국이 돼야 하고, 그 중심에 우리나라 기술형 중소기업이 있어야 합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산업발전의 원동력은 정부와 대기업 위주의 압축성장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새시대의 원동력은 중소기업과 폭넓은 서민경제의 부활입니다.”

10년 동안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중소기업인들과 토론하며 배운 것이 그의 중소기업 철학의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의 답변은 쉼 없이 이어졌다.

그는 “중소기업이 국가경제의 근간이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들 가운데 99%, 일자리로는 88%를 차지한다. 그래서 ‘9988’이라고 한다”며 “중소기업을 살리는 것이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서민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수출역군이기도 하다. 전체 해외수출의 18%에 불과한 중소기업의 수출비중을 2020년까지 40%로 높여야 현재 답보상태에 놓인 국민소득 2만8000달러 시대의 돌파구를 열 수 있다. 허 회장은 해외 신시장 개척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는 수출인큐베이터 확대 등 수출 관련 지원의 선택과 집중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중소기업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취업을 못한 젊은이들이 풀이 죽어 있으니 사회에 활력이 없어요. 취업을 못하니 결혼을 못하고 그러니 아이를 낳을 수 있나요.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지금처럼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의 해외인력으로 충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사회의 활력을 불어넣고, 결혼과 출산 증대를 위해서는 청년들의 일자리 마련을 제도적으로 확충해야 합니다. 젊은이들 보고 중동으로 가라고 할 게 아니라 그들이 중소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죠.”

그는 복지 패러다임을 바꿔 멀리 보는 생산적 복지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시처방전 성격의 소비형 복지가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생산형 복지에 힘써야 한다는 얘기다. 소비적 복지에 몰입하면 복지의 구멍은 더 커진다. 반면 생산형 복지는 현재 투입되는 복지예산의 절반 정도면 충분하다.

“중소기업이 잘 되면 사회가 통합됩니다. 자, 보세요. 중소기업을 육성하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갑니다. 경제가 잘 굴러가면 투자가 일어나고, 세금이 많이 걷힙니다. 그러면 다시 경제가 원활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중소기업의 본질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중소기업 기피현상도 없어질 겁니다.”

그동안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냈다. 각종 지원제도는 우리 중소기업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1970~90년대 우리나라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강하게 펼쳤어요. 모두 대기업 위주였어요. 이건 부인할 수 없는 팩트입니다. 중소기업도 실질적으로는 기여를 했지만 크게 부각이 되지 못했죠. 대기업이 수출을 많이 해 수출탑을 수상하는 반면, 그 기업에 부품을 공급한 중소기업은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았잖아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을 받아야 했죠.”

이러한 관행은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중소기업이라고 하면 열악한 근무환경에다 연봉도 대기업에 비해 훨씬 적다고 지레짐작한다.

그가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있을 때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현장투어를 예로 들었다. “중소기업에 처음 가보는 대학생이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모두 놀랍니다. 유수 대학의 박사 출신도 많거든요. 일하는 환경도 좋고, 월급도 많고. 그래도 그의 부모나 친구들은 중소기업에 가지 말라고 말립니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데 정부가 앞장 서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알량한 체면 때문에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대졸 취업희망자들이 자신 있게 중소기업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허 회장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이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중소기업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냉철한 시각에서 중소기업 정책의 돌파구를 열겠다는 것이다.

“정말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중소기업들은 자금, 기술, 인력 등에서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중소기업 숫자만큼 해야 할 일이 있는 셈이죠. 맨투맨으로 붙어서 하나하나씩 해나갈 생각입니다.”

기술·생산·마케팅 연계해야 최고 시너지 낼 수 있어
허 회장은 중소기업을 위한 통쾌한 경영지침도 밝혔다. “국경 없는 무역환경에서 먼저 갖춰야 할 것이 차별화된 기술(Technology)이고, 그 기술을 활용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품의 생산(Production), 그리고 기업의 궁극적 목적인 이윤을 달성시키는 마케팅(Marketing)을 연계해야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를 ‘TPM 법칙’이라고 불렀다. TPM 법칙이야말로 격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중소기업이 생존해 나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프로세스이자 전략이고, 정책이자 동시에 법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T)을 1000m의 산, 생산(P)을 2000m의 산, 마케팅(M)을 3000m의 산에 비유했다. 그리고 TPM의 각 산에 1:2:3의 시간배분을 하며 효율적으로 시간관리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품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중소기업들이 기술력과 생산력을 갖추고 있지만 시장에서 소비자들과 만나기까지 숱한 애로사항과 직면합니다. 기술, 생산, 설비, 인력, 자금, 마케팅, 조직운영 등 하나의 기업이 출범한 후 시장에서 소비자들과 만나 생존의 사이클로 접어들 때까지 넘어야 할 산이 수없이 많은 거죠. 기술력과 생산력을 갖췄더라도 국내외 시장에서 소비자들과 만나 상품화에 성공, 성장할 수 있는 경우는 전체 창업 기업의 5%에 불과합니다.”

달리 말하면 기술의 산을 넘는 기업은 전체의 90%에 달하지만 생산의 산을 넘는 기업은 40~50%에 불과하다. 마케팅의 산까지 넘는 기업은 한 자릿수에 머물러 5~10%에 그친다는 얘기다. 그가 힘줘 말했다. “기업의 목표인 이윤창출은 바로 마케팅의 산을 넘으면서 이뤄지지만, 마케팅의 산이 가장 높고 가파릅니다. 기술 개발과 제품생산에 성공했지만 마케팅의 산을 넘는 기업이 10% 미만에 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거죠. 기술, 생산, 마케팅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성공적인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 환경이란 3요소가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 허범도 회장은…
1950년 경남 고성 생, 1973년 부산대 경영학과 졸, 1975년 행정고시(17회) 합격, 1985년 국무총리실 국무회의 담당관, 1996년 부산지방중소기업청장, 2000년 중소기업청 차장, 2005년 산업자원부 차관보, 2006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2008~09년 제18대 국회의원, 2010년 부산대 산학협력단 석좌교수, 2010~12년 부산광역시 정무특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