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혁 박사가 인하대 재학 시절 개발한 로켓 모형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상혁 박사가 인하대 재학 시절 개발한 로켓 모형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7월7일 인천시 남구 인하대학교 공대 한 강의실. 최상혁(71)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 박사가 강의를 하고 있다. 열정적이다. 최 박사는 강의실 곳곳을 누비며 학생들과 소통했다. 강의 주제는 ‘미래 융합기술의 필요성’. 앞으로 다가오는 융합기술 시대를 맞아 진정한 기술자가 되기 위해선 전공 외에도 다양한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최 박사는 기술자·과학자가 지녀야 할 마인드도 설명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좇아가려고만 합니다. 리더십을 가지고 스스로 미래 기술의 방향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틀려도 좋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연구, 기술개발에 자신감을 갖고 전진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기술적 리더십입니다.”

강의가 끝난 후 최 박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수업은 어땠나요?” 기자가 물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학생들과 친구처럼 대화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최 박사는 최근 청소년, 대학생에게 관심이 많다. 그는 “선배로서 후배를 가르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진 설명이다. “청소년은 미래 주역입니다. 그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나사에 몸담고 있으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최 박사가 시간을 쪼개 강단에 서는 이유다.

최 박사는 1980년 나사에 들어갔다. 미국 오리건주립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직후였다. “나사로부터 센서를 개발하는 미팅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나사 연구원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렀습니다. 중간에 제가 몇 개의 의견을 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친구가 이 정도인데, 우리와 함께 일하면 그 능력이 대단하겠군요.’ 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렇게 최 박사는 나사에 입성했다. 이후 35년이 흘렀다. 그는 현재 나사 랭글리연구소(Langley Research Center)에서 일하고 있다. 랭글리연구소는 나사에서 가장 오래된 연구소다. 민간·군용 비행기를 개발할 때 무조건 이 연구소를 거친다. 특히 랭글리연구소는 우주 탐사에 필요한 새로운 물질, 센서, 시스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 중 최 박사는 새로운 물질 개발을 맡고 있다. “특이하고 묘한 기능을 가진 물질을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전력시스템에 들어가는 우주 탐사용입니다. 화성 등을 탐사하는 로봇과 우주인이 사는 우주센터에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는 물질을 개발하는 것이죠.”

NASA 35년, 고등 책임연구위원 ‘최상혁’ 
최 박사는 나사 내에서 고등 책임연구위원에 속한다. 기업으로 치면 임원급이다. 현재 그는 고위험 전략관리위원회, 아이디어 생성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개발할 수 있는 직책이다. 최 박사의 설명이다. “1980년 나사에 들어왔을 때 존경받는 책임연구위원들이 많았습니다. 일반 연구원 대부분이 그들을 따르며 그들처럼 되길 원했죠. 그리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그 연구원들은 성장했고, 현재 나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나사가 최고가 될 수 있고,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그에게 로켓 등 한국의 우주기술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최 박사는 신중하게 답했다. “한국은 ‘할 수 있는 것’과 ‘실제로 한 것’ 사이의 차이가 큽니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자신감과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또 정치적인 부분이 작용했습니다. 대략 이런 것이죠. ‘북한이 하니깐 우리도 한다.’ ‘미국에 요청했는데 싫다고 해서 못했다.’ ‘러시아 기술을 가져와서 한 것이다.’ 한국 과학자는 실력이 뛰어납니다. 정치·사회적으로 힘을 실어주면 능력이 배로 뛸 것입니다.”

그는 또 “굳이 로켓 개발을 먼저 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우주 센터, 우주 탐색 기술 등 다른 분야 기술을 쌓으면서 동시에 로켓 기술을 개발하는 게 좋습니다. ‘로켓이 중요해. 그러니깐 꼭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보다 장기적으로 보는 것이죠.”

- 최상혁 박사는 “우주 분야에서 개발된 기술은 단순히 우주선, 로켓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타(他)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 최상혁 박사는 “우주 분야에서 개발된 기술은 단순히 우주선, 로켓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타(他)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잠재력 터뜨리려면 100배 노력해야
최 박사는 우주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주 분야에서 개발된 기술은 단순히 우주선, 로켓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타(他)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엄청납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센서를 개발하면 그 기술이 의료 분야에 활용됩니다. 물론 기술 이전과 그 효과가 순식간에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3~5년, 아니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고 투자해야 합니다. 최근 선진국이 너나할 것 없이 우주산업에 뛰어드는 이유입니다.”

우주연구의 메카인 나사에 들어간 점, 어렸을 때의 꿈인 ‘과학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점은 최 박사가 한국 청소년들에게 ‘롤 모델’이 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최근 한국 젊은이들은 꿈이 없다. 있다고 해도 단순히 바라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리고 포기하기 일쑤다. 계속해서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와 끈기. 최 박사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다.

최 박사는 어린 시절 로켓을 연구하는 과학자를 꿈꿨다. “집 앞에 미군 부대가 있었습니다. 몰래 부대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중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이후 로켓 과학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최 박사는 꿈을 펼치기 위해 인하대(기계공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로켓 발사 실험 도중 발사체가 폭발해 오른쪽 손을 잃은 것이다. 정밀한 실험을 해야 하는 과학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과학자 ‘최상혁’이 될 수 있었다.

최 박사는 또 다른 꿈이 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의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로서 나사에서 많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과학자의 길은 계속 갈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작은 꿈’이 하나 생겼습니다. 앞으로 국가(한국)에 더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는 “나사에 인턴으로 들어오는 미국 대학생을 볼 때마다 부럽다”며 “그 학생들은 나사에서 연구하는 방법 등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간다. 그럴 때마다 한국 학생들이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나사 대학생 인턴에 외국인은 신청할 수 없다.

인터뷰는 최 박사가 한국 청소년에게 하는 조언으로 마무리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일류 대학을 못 갔다고 삶을 포기합니다. 반대로 생각해보죠. 그만큼 잠재력이 큰 것입니다. 이제부터 노력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오늘 잘 못한 것을 후회하지 말고 내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해야 합니다. 현재 능력을 펼치고 있는 이들보다 100배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노력할 수 있는 길은 사회 전체, 부모들이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들은 성인이 아니라 아직은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이기 때문이죠.”  ‘100배의 노력’. 최상혁 박사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 아닐까.

 

▒ 최상혁 박사는…
1944년생. 1968년 인하대(기계공학)를 졸업했다. 이후 1년 6개월 동안 인천 송도고등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쳤고, 원자력연구소 연구원(2년), 인하대 정밀기계공학과 강사(2년)로 일했다. 1980년 미국 오리건주립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들어갔다. 이후 35년간 나사에서 근무 중이다.

인천 =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사진 이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