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강원도 횡성에 있는 스키장 웰리힐리파크에서 한국GM의 중형 픽업트럭 쉐보레 콜로라도가 오프로드를 달리고 있다. 사진 한국GM
8월 26일 강원도 횡성에 있는 스키장 웰리힐리파크에서 한국GM의 중형 픽업트럭 쉐보레 콜로라도가 오프로드를 달리고 있다. 사진 한국GM

8월 26일 오후 강원도 횡성에 있는 스키장 웰리힐리파크. 한국GM이 미국에서 수입해 국내 판매를 개시한 중형 픽업트럭인 쉐보레 ‘콜로라도’의 오프로드 시승을 위해 찾은 이곳에는 약 60㎝ 높이의 흙 언덕과 깊은 웅덩이가 반복되는 ‘범피코스’가 있었다.

액셀을 살짝 밟고 울퉁불퉁한 언덕을 올랐다. 차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왼쪽 바퀴가 헛돌았지만, 차는 균형을 잃지 않았다. 차의 무게를 온전히 버텨내는 차체의 단단함이 인상적이었다.

언덕을 디딘 바퀴가 힘을 내며 난코스를 뒤뚱뒤뚱 탈출했다. 오프로드에 특화된 디퍼런셜 록(differential lock·차동 제어장치)이 작동한 것이다. 험난한 지형을 넘는데도 큰 충격이 전해지지 않았다. 서스펜션(suspension·자동차 충격흡수장치)이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트럭인데도 마치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처럼 서스펜션 세팅이 잘된 것 같았다.

콜로라도는 30도 경사인 언덕에서 액셀을 밟는 대로 솟구쳤다. 엔진에서는 고급 세단에서나 들을 수 있는 ‘스르릉’거리는 배기음 소리가 났다. 험상궂은 외관과 달리 정숙했다. 작은 차에서 느껴지는 경쾌함과 큰 차를 탈 때의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최고 312마력을 내는 배기량 3.6ℓ(리터) V형 6기통 직분사 엔진에 대한 첫인상이다.

콜로라도는 픽업트럭 시장 경쟁이 가장 치열한 미국에서 2014년 출시된 이후 누적 45만 대 이상 팔린 효자 모델이다. 콜로라도 수입사인 한국GM은 국내 시장 흥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콜로라도 흥행에 회사의 명운을 걸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카허 카젬(Kaher Kazem) 한국GM 사장은 “콜로라도는 정통 픽업트럭만이 가질 수 있는 브랜드 정체성과 상품성을 바탕으로 국내 픽업트럭 마니아층의 잠재 수요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꽃피는 픽업 시장, 앞다퉈 출시 준비

“픽업트럭이 과연 한국에서 통할까.” 이런 의문도 있지만 이미 픽업트럭 시장은 열린 상태다. 지난해 4만 대가 팔렸다.

픽업트럭의 본고장인 미국의 포드가 중형 픽업트럭인 ‘레인저’를 올해 하반기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지프는 정통 험로주행차 ‘랭글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중형 픽업트럭 ‘올 뉴 글래디에이터’를 내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 중에서는 쌍용자동차가 최근 2020년식 ‘렉스턴 스포츠’를 출시하며 굳히기에 나섰고, 현대·기아자동차는 2022년을 목표로 픽업트럭을 개발하고 있다.

픽업트럭은 북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량이다. 미국 판매 순위에서 1~3위를 꿰차고 있다. 미국의 개척 문화를 상징하는 자동차로도 불린다. 소형 트럭(총중량 3.5t 이하)의 범주에 해당하지만, 승차감이나 실내의 고급스러움은 승용차에 버금가도록 만들어진다.

한국 픽업트럭 시장을 주도하는 건 단연 쌍용차다. 쌍용차는 2002년 ‘무쏘 스포츠’부터 ‘액티언 스포츠’ ‘코란도 스포츠’ ‘렉스턴 스포츠’로 이어지는 모델을 선보이며 사실상 독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픽업트럭은 4만2021대로, 2017년(2만2912대)보다 83.4% 증가했다. 이 중 쌍용자동차 ‘렉스턴 스포츠’ 브랜드의 판매량이 4만1717대로 99.2%에 달한다.

픽업트럭은 쌍용차 부활의 발판이기도 했다. 쌍용차는 2009년 실적 악화로 법정관리에 들어가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연간 20만 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3만 대로 추락했다. 오프로드 전문 회사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현대차처럼 승용차에 도전하며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선 탓이었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대형 SUV와 SUT(SUV 스타일의 픽업트럭)인 ‘코란도 스포츠’였다. 쌍용차는 경쟁자들과 전력 차가 가장 적은 오프로드 차량에 역량을 쏟아붓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다.


레저 인구 증가로 픽업트럭 대중화 전망

픽업트럭이 국내에서 대중화의 시동을 걸게 된 데는 캠핑·여행 등을 즐기는 레저 인구의 증가가 한몫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완성차 5개사의 레저용 차(RV) 판매량이 30만 대를 돌파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픽업트럭은 SUV처럼 쓰면서도 부피가 큰 짐을 실을 수 있어, 이를 필요로 하는 수요층에 매력적이다.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SUV와 용도가 비슷한 중형 픽업트럭이 한국 시장 환경과 잘 맞는다”며 “일상적인 운행이 가능하면서도 공간 활용성이 우수한 차의 수요가 늘고 있다”고 했다.

픽업트럭은 세금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픽업트럭은 승용차가 아닌 화물차인 덕에 연간 자동차세가 저렴하다.

자동차세를 매길 때 승용차는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지만, 화물차는 적재중량에 맞춘다. 적재량이 1t 미만인 화물차는 연간 2만8500원의 세금만 내면 된다. 콜로라도의 배기량은 3649cc이기 때문에, 승용차 기준을 적용한다면 약 95만원을 내야 한다. 같은 배기량의 SUV에 비해 자동차세로만 연간 90만원 이상을 아낄 수 있다. 취·등록세 역시 찻값의 5%로 일반 승용차(7%)보다 저렴하다. 개별 소비세와 교육세가 면제되고,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면 부가세 10%도 환급받는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이후 미국 브랜드들이 한국 픽업트럭 시장을 본격적으로 겨냥하고 있다”며 “올해 국내 픽업트럭 시장 규모가 5만 대를 넘길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미국은 픽업트럭·SUV의 천국…한국도 미국처럼 될까?

미국은 픽업트럭의 천국이다. 세단보다 더 많이 팔린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드라이버’ 인터넷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는 포드의 F시리즈 픽업트럭으로 90만9330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어 GM의 픽업트럭 ‘쉐보레 실버라도(58만5581대)’, 피아트크라이슬러의 픽업트럭 ‘닷지 램(53만6980대)’순이었다.

픽업트럭은 ‘미국의 상징’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1975년 미국 정부가 자동차 환경 규제를 강화했을 때도 픽업트럭은 면제 혜택을 받았다. 1990년대 3만달러(약 3620만원) 이상 고급차에 대해 사치세를 부과했을 때도 픽업트럭은 예외였다.

미국 시장에서 픽업트럭이 패권을 잡게 된 것은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이전까지 픽업트럭은 주로 농장이나 작업 현장용으로 이용됐으나, 이제는 세단이나 쿠페 대신 가족용 차량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LMC오토모티브’는 “2022년 미국에서 팔리는 자동차의 50% 이상이 픽업트럭을 포함한 SUV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자동차 도시’인 디트로이트의 3대 자동차 회사인 포드·GM·피아트크라이슬러는 수익성 악화와 소비자의 관심 부족으로 최근 세단을 비롯한 소형차 생산을 포기하거나 줄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비자가 저유가에 대형 차량을 선호하고, 미국 경제가 금융 위기 충격으로부터 회복하면서 소형차를 외면하고 있다”며 “SUV와 픽업트럭 등 다목적 차량을 선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GM은 지난해 소형 차종인 ‘쉐보레 크루즈’ 단종을 발표했으며 ‘소닉(국내명 아베오)’의 미국 판매 중단도 계획하고 있다. 포드도 ‘포커스’와 1980년 생산을 중단했다가 2010년에 다시 출시했던 ‘피에스타’를 정리할 계획이다.

지난해 7월 별세한 세르조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 회장은 2016년 “소비자가 세단보다는 픽업트럭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중형 세단인) ‘크라이슬러 200’ 생산을 중지하겠다”며 “이 차종의 조립라인을 차세대 픽업트럭용으로 바꾸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