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사장이 1월 1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2020년 과학기술인· 정보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참석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구현모 KT 사장이 1월 1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2020년 과학기술인· 정보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참석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2년 만에 등판한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는 KT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은 시작부터 난관을 만났다. 이동통신 3사 간의 5세대 이동통신(5G) 경쟁, 비대해진 몸집 줄이기, 회사 인식 개선 등 경영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KT의 주가는 유가증권시장 상장 이후 3월 18일 처음으로 2만원 선이 붕괴됐다. ‘골수 KT맨’으로 그룹 내 전략가로 꼽히는 구 사장이 혹독한 경영 환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

증권가에서는 그동안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던 KT의 CEO 자리를 내부 인사 출신인 구 사장이 맡게 됐다는 점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KT는 2002년 민영화된 사기업이지만, 국민연금 외에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지배구조 특성상 정권의 입맛에 따라 사령탑이 바뀌었다. 외풍으로 선임된 CEO는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했다. 임원진을 낙하산 인사로 채우는가 하면, 말년에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KT는 지난해 차기 CEO 선임 과정에서부터 낙하산 논란 타파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지배구조위원회를 통해 총 37명의 사내․외 회장 후보자군을 구성했고 심사를 통해 후보를 9명으로 압축했다. 후보자 9명 가운데 7명이 KT에 재직 중이거나 재직 경험이 있는 인사였다. KT는 구 사장을 차기 CEO로 낙점한 이후 ‘회장’이라는 직함이 국민기업 KT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대표이사 사장’으로 명칭을 바꿨고 연봉도 이전보다 낮췄다.

구 사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한국전기통신공사(KT의 전신)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기까지 33년 동안 KT에서만 일해온 골수 KT맨이다. 경영전략, 사업구조 등 전략 관련 부서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구 사장은 ‘전략통’으로 통한다. 황창규 회장 체제에서 비서실장, 경영지원총괄부사장,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기업의 전반적인 프로세스도 몸에 익혔다.

구 사장의 가장 큰 장점은 ‘강한 추진력’이다. 특히 개인고객본부장을 맡았던 시절 4세대 이동통신(LTE) 서비스를 성공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2011년 말 당시 KT는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 비해 LTE 시장 진출이 6개월이나 뒤처진 상황이었다. 초기 가입자 모집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우려에 긴급 경영진 회의가 소집됐다. 이 자리에서 구 사장은 “당장 전담부서를 구성해야 한다”며 명단을 발표했다.

구 사장은 “후발주자는 속도전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밀어붙인 끝에 한 달 만에 LTE 서비스를 내놓는 데 성공했다. 구 사장은 또 ‘타사의 LTE 서비스는 비싼 요금제에 비해 데이터·통화 제공량이 적다’는 고객의 불만에서 착안해 ‘KT 휴대전화 고객끼리 무료 통화’와 ‘데이터 안심요금제’를 내놓기도 했다. 이는 LTE 후발주자인 KT가 시장에 무사히 안착하는 데 기여했다.

새롭게 KT 사령탑을 맡은 구 사장에 대한 기업 내부의 여론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전국KT대리점협회는 “구 후보가 오랜 시간 쌓아 온 유통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상생, 동반 성장의 철학으로 앞으로 KT를 이끌어 갈 CEO가 될 것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직 개편서 드러난 ‘고객 중심 경영’

구현모 사장이 내세운 경영 철학은 ‘고객 중심 경영’이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황창규 전 회장이 다진 기술적 토대를 고객이 실감할 수 있도록 현장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구 사장은 1월 13일 “우리 안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빠르고 민첩하게 제공할 수 있는 조직으로 개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월 16일 단행된 조직 개편과 인사에서도 전면적인 변화보다 기존 바탕의 계승·발전을 추구하는 경영 방침이 드러난다.

구 사장은 소비자 고객(B2C)의 니즈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영업과 상품·서비스 개발을 담당하던 커스터머&미디어부문과 마케팅부문을 ‘커스터머부문’으로 통합했다. 신설된 커스터머부문은 5G·기가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유무선 사업과 인터넷TV(IPTV)·가상현실(VR) 등 미디어플랫폼 사업을 총괄한다.

기업고객(B2B)과 글로벌고객(B2G)을 담당하던 기업사업부문과 글로벌사업부문은 ‘기업부문’으로 재편했다. 전국 11개 지역고객본부와 6개 네트워크운용본부를 6개 광역본부로 합쳐 고객 서비스와 기술 지원의 유기성을 높였다. KT CEO 선임 과정에서 구 사장과 경쟁하기도 했던 박윤영 기업부문장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확대된 기업부문을 총괄한다.

디지털 혁신을 전담할 조직도 신설했다. AI/DX융합사업부문은 5G 통신 서비스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을 통합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맡는다. 핵심인재 육성, 고객발 자기혁신, 사회적 가치라는 3대 핵심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CEO 직속조직인 ‘미래가치TF’도 신설됐다. 구 사장은 매년 상·하반기 실시하던 정기 공채 제도를 폐지하고, 부서별 수시 인턴제 채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KT는 지나치게 방대한 인력으로 지적받아왔는데, 이를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일시에 감축하기보다는 신규 채용 규모를 줄여 자연 감소하는 방식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산적한 경영 과제 해결해야

높은 그룹 이해도와 전략, 강한 추진력을 갖춘 구 사장도 최근의 경영 환경을 쉽사리 타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단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KT를 지켜내야 한다. 그러면서 유·무선 통신 시장에 차별화된 전략을 제시해 ‘만년 2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KT는 미래 수익원으로 꼽히는 5G 가입자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지난해 통신사별 5G 가입자 수는 SK텔레콤이 208만4388명(44.6%)으로 1위를 차지했고, KT는 141만9338명(30.4%)으로 2위에 그쳤다. 2011년 LTE 도입에 한발 늦었던 KT는 초기 가입자 모집 경쟁에서 뒤처진 것이 10년 동안 경쟁 열위로 지속된 뼈아픈 전례가 있다. 이를 만회하고자 5G 기술 도입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첫 달 시장 점유율 40%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경쟁사가 즉각 응수에 나서며 점유율이 내려앉았다. 구 사장은 ‘뒷심 부족’으로 SK텔레콤에 빼앗긴 5G 시장 주도권을 되찾아와야 하는 상황이다.

KT는 확고한 1위 사업자 위치를 유지해 온 IPTV 분야에서도 시장 지배력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은 티브로드를, LG유플러스는 CJ헬로비전을 각각 인수해 몸집을 불렸기 때문이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넷플릭스는 한국 유료 이용자 200만 명을 돌파했고 2021년에는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진출이 예정되는 상황. KT는 자사 OTT 서비스인 ‘시즌’으로 국내 시장을 제패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이 전략마저 틀어졌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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