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9월 2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슬라 프리몬트 공장에서 열린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야외에서 진행됐다. 사진 유튜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9월 2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슬라 프리몬트 공장에서 열린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야외에서 진행됐다. 사진 유튜브

“에너지 용량은 5배, 출력은 6배, 주행 거리는 16% 늘어난 차세대 배터리 ‘4680’을 3년 내 양산하겠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머스크는 9월 2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슬라 프리몬트 공장에서 열린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테슬라는 최고의 전기차는 물론 최고의 배터리도 만들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테슬라 배터리 데이 행사는 이 회사가 새로 개발한 배터리 기술과 생산 계획 등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전 세계 자동차·배터리 업계 및 자본시장 관계자의 이목이 쏠렸다. 이날 유튜브 라이브 동영상 접속자는 27만 명에 달했다. 머스크가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자 무대 앞 주차장에서 테슬라 모델 3를 타고 있던 240여 명의 주주가 경적을 울리며 환영했다. 이날 행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야외에서 열렸고, 주주들은 모두 차에 탑승해 머스크를 지켜봤다.

머스크는 “현재 수준보다 훨씬 저렴한 전기차를 내놓기 위해서는 배터리 단가를 낮춰야 한다”라며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들은 (에너지 용량이) 작고 비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테슬라의 새로운 배터리는 더 강력하고 오래가며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머스크가 ‘4680’으로 명명한 새 배터리는 원통형으로, 기존 배터리보다 에너지 용량은 5배, 출력은 6배, 주행 거리는 16% 개선된 수준이다. ‘4680’은 지름 46㎜, 높이 80㎜, 즉 배터리 규격을 의미한다.

머스크는 “테슬라는 자동차 제조 기술 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뤘다”라며 “올해 중국 공장 신·증설 등의 영향으로 테슬라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30~40%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테슬라의 지난해 판매량은 36만7500대였다. 머스크의 예상대로라면 올해 판매량은 47만7750~51만4500대 수준이 될 전망이다.

머스크는 배터리 혁신을 통해 3년 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전기차 가격을 2만5000달러(약 2900만원)까지 낮출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배터리를 현재의 절반 가격으로 생산하고, 이를 통해 누구나 살 수 있는 저렴한 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5000만~7000만원 수준인 테슬라 모델 3 가격을 2022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의미다. 머스크는 “배터리 공정 혁신으로 배터리 가격을 지금보다 56%까지 낮출 수 있다”라며 “배터리 셀을 자동차의 차체와 통합하는 새로운 기술로 원가를 다시 한번 떨어뜨리겠다”라고도 했다.

이처럼 이날 행사의 핵심은 공정 혁신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장기적으로 싼 배터리를 활용한 저렴한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 발표 가능성이 점쳐졌던 배터리 내재화(완전 자체 생산)나 전고체 배터리(리튬이온이 이동하는 전해질을 고체로 만든 차세대 배터리), 주행 수명 100만㏕(약 160만㎞) 배터리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특히 주행 수명 100만㏕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수명이 사실상 내연기관 차량과 맞먹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공개한 차세대 배터리 ‘4680’의 외관. 사진 유튜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공개한 차세대 배터리 ‘4680’의 외관. 사진 유튜브

한국 배터리 제조사에는 당장 큰 위협 없어

다른 내용도 구체적인 기술 소개가 아닌 청사진 제시에 그쳐 시장에선 실망감이 일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베터리 데이 행사 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테슬라의 시가 총액은 500억달러(약 58조원) 증발했다. 미국 투자은행(IB) 로스캐피털파트너스의 크레이그 어윈 애널리스트는 “머스크의 배터리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했다.

한국 증권가에서도 기술적으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을 위협할 내용은 없었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발표된 내용은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됐었고, 신기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라며 “테슬라의 장기 비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했던 이벤트가 소멸한 셈”이라고 했다. 한국투자증권도 보고서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가 우려했던 테슬라의 배터리 자체 생산 가능성은 아직 작아 당분간은 LG화학 등 기존 파트너사와 협력관계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머스크가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양산하겠다고 밝힌 점은 한국 배터리 업체들에 중장기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최근 50억달러(약 5조8200억원) 유상증자를 단행해 배터리 개발을 위한 자금을 마련한 바 있다.


완성차 업계,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 전망

배터리 데이 행사가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 미친 영향도 미미했다. 배터리 데이 행사 종료 후 개장한 국내 증시에서 현대차 주가(종가 기준)는 17만9000원으로 전일과 같았다. 기아차는 4만6000원으로 전일 대비 0.65% 하락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머스크가 저렴한 전기차 양산 계획을 언급한 만큼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가격 경쟁력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관련 업계는 현재 대당 1000만~1500만원 수준인 각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이 2022~2023년 축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테슬라도 이에 맞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한 것”이라며 “선도 업체가 가격 절감에 성공하면 다른 완성차 업체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완성차 업계가 여태껏 일정 부분 함께 파이를 키우며 느슨한 관계를 이어 왔다면, 배터리 데이 이후에는 BYD·닛산·르노·폴크스바겐 등 기업들이 각 사의 차기 신모델을 중심으로 가격 격차를 벌려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머스크는 배터리 관련 발표 직전에 완전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계획도 언급했다. 그는 “자율주행에 대한 알고리즘이 한계에 부딪혔는데, 8개의 카메라로 3차원(3D) 영상을 통한 분석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등의 노력으로 안전성을 크게 높였다”라며 “베타 서비스이긴 하지만,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를 다음 달 공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