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인형을 앞세운 마텔은 올해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사진 마텔
바비 인형을 앞세운 마텔은 올해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사진 마텔

디지털 시대에 고전하던 미국 완구 업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완구 업계는 아이들의 새로운 장난감으로 부상한 스마트폰·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세계 최대 완구 전문점 체인인 미국 토이저러스는 디지털이라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파산했고, 마텔 등 다른 업체들도 매출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초 발생한 코로나19가 시장 판도를 바꿨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늘면서 부모들은 스마트폰으로 보는 동영상이 아닌, 아이들이 직접 가지고 놀 수 있는 전통적인 장난감으로 눈을 돌렸다. 업계에선 ‘코로나 반전’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도 “마텔 등 미국 완구 업계가 코로나19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집콕’ 길어지자 전통 장난감 판매 증가

미국 시장조사 업체 NPD그룹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 완구 업계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약 16%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3분기도 좋은 성과를 냈다. 마텔의 3분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 증가한 16억3170만달러(약 1조8500억원)를 기록했다. 특히 회사 대표 브랜드 바비 인형 매출이 5억3220만달러(약 603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4억1280만달러)보다 29% 늘었다. 바비 인형의 분기별 매출이 전년 대비 30% 가까이 증가한 것은 20년 만이다. ‘트랜스포머’ 장난감으로 유명한 미국 완구 업체 해즈브로(Hasbro)도 3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 증가했다.

업계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판매 기간인 크리스마스가 포함된 연말 홀리데이 쇼핑 시즌 매출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코어사이트 리서치는 올해 미국 홀리데이 시즌 장난감 판매는 전년 대비 5~1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텔의 이논 크레이즈 최고경영자(CEO)는 이 기간 공급을 우려할 정도다. 크레이즈 CEO는 10월 22일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다가오는 연휴에 소비자의 폭발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연말 휴가 계획이나 외부 활동을 취소하면서 이른바 가정들의 ‘여유 자금’이 늘어난 것도 업계가 이번 홀리데이 기간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여유 자금 중 일부는 장난감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완구 업계도 장난감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거나 온라인 판매를 강화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단순히 전통적인 장난감만을 판매한다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텔이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 10월 마텔은 증강현실(AR)을 접목한 어린이 도서 애플리케이션(앱) 북풀(Bookful)과 협력해 바비, 장난감 기차 브랜드 ‘토마스와 친구들’ 등 인기 캐릭터를 스마트폰을 통해 3차원(3D)으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AR 바비 도서의 경우 ‘의사가 되는 바비’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바비’ ‘체조선수가 되는 바비’ 등의 스토리를 담았다. 마텔은 아이들이 잠재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다양한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토마스와 친구들은 ‘바쁜 토마스’ ‘런던을 방문하다’ ‘구조대’ 등을 제목으로 하는 AR 도서를 선보인다.

지난해 기준 11세 미국 어린이 중 약 53%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마텔의 전략으로 해석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쇼핑이나 가족 단위의 야외 활동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마텔은 이번 홀리데이 시즌에 맞춰 디지털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완구 업체 키드크래프트는 최근 아마존 스마트 음성 어시스턴트 알렉사와 연동한 ‘알렉사 스마트 놀이용 주방’을 선보였다. 사진 키드크래프트
미국 완구 업체 키드크래프트는 최근 아마존 스마트 음성 어시스턴트 알렉사와 연동한 ‘알렉사 스마트 놀이용 주방’을 선보였다. 사진 키드크래프트

아이와 대화하며 놀아주는 ‘스마트 토이’

마텔은 소셜미디어(SNS)를 이용한 디지털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최근 마텔의 유아용품·장난감 브랜드 ‘피셔프라이스’는 인스타그램에 ‘가상 장난감 박물관’이라는 페이지를 열었다. 피셔프라이스 대표 제품인 유아 모빌은 물론 과거 선보였던 추억의 장난감 등 100여 종을 이 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다. 마텔은 해당 장난감 브랜드를 활용해 만든 의류, 액세서리, 생활용품 등도 자사 온라인몰을 통해 판매에 나서고 있다.

전통적인 장난감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토이’도 등장했다. 2~5세 아이를 둔 가정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는 인형의 집 및 놀이용 주방 전문 장난감 브랜드 키드크래프트(KidKraft)는 최근 아마존의 스마트 음성 어시스턴트 알렉사와 연동한 ‘알렉사 스마트 놀이용 주방’을 출시했다. 기존 놀이용 주방 장난감에 설치된 알렉사가 아이들과 대화하며 주방 놀이를 지도하는 게 특징이다.

앞서 마텔은 AI 기능을 탑재, 아이들과 대화가 가능한 ‘헬로 바비’를 선보였고, 일본 완구 업체 메가하우스는 가상현실(VR) 헤드셋, 센서, 매트로 구성된 ‘드래곤볼Z VR 세트’를 선보이며 만화 속 세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김선영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스마트 기기를 접하는 아이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완구 업계에 ‘테크 열풍’이 또다시 불고 있다”며 “완구 업계가 전통적인 장난감과 함께 이 장난감에 AI, VR 등의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토이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Plus Point

오로라월드·손오공·영실업 국내 완구 3인방은 ‘변신 중’

5월 5일 어린이날 동대문 문구완구거리는 부모들과 함께 온 어린이들로 북적거렸다. 사진 조선일보 DB
5월 5일 어린이날 동대문 문구완구거리는 부모들과 함께 온 어린이들로 북적거렸다. 사진 조선일보 DB

오로라월드·손오공·영실업 등 국내 완구 3인방은 코로나19를 전후로 변신 중이다. 오로라월드는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해외 사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주요 브랜드는 갈라고 원숭이, 사막여우 등 멸종 위기 동물을 캐릭터화한 인형 ‘유후와 친구들’이다. 장난감 ‘신비아파트’는 국내에서 인기가 많다. 오로라월드는 코로나19 직후 비상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자체 온라인몰 ‘토이플러스’ 판매 확대와 신비아파트 등 주요 브랜드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토이’도 개발 중이다.

미국 마텔이 최대 주주(지분율 9.77%)로 있는 손오공은 종합 완구 유통 업체로 성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마텔의 바비 인형, 피셔프라이스와 일본의 투모로우 베이비 브랜드 등을 판매하고 있다. 손오공 관계자는 “뛰어난 품질의, 한국 소비자에게 맞는 글로벌 장난감 브랜드를 국내에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변신 자동차 로봇 ‘또봇’ 등으로 유명한 영실업은 올해 8월 교육출판 업체 미래엔에 매각, 새로운 성장을 준비 중이다. 10월 초에는 심정훈 해즈브로 한국·일본 총괄지사장을 새 대표로 영입했다. 심 대표는 “경쟁력 있는 제품과 콘텐츠의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을 통해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완구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