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노조(Alphabet Workers Union) 조합원들이 줌(Zoom) 화상회의를 통해 연대의 뜻을 보이고 있다. 사진 알파벳 노조
알파벳 노조(Alphabet Workers Union) 조합원들이 줌(Zoom) 화상회의를 통해 연대의 뜻을 보이고 있다. 사진 알파벳 노조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인 유튜브가 (미국 의사당 무력 점거) 폭동을 초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 알파벳이 개발하는 기술이 세상에 가져올 변화와 결과에 대해 책임을 다하겠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 경영진의 언급이 아니다. 미국 빅테크(Big Tech·거대 기술 기업) 기업 중 처음으로 노조를 공식화한 알파벳의 노조위원장이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의 한 대목이다.

알파벳 노조는 올해 초 200여 명으로 출범했지만 한 달도 안 돼 조합원 수가 세 배가 넘는 700명 이상으로 늘었다. 아직 알파벳 그룹 직원 13만여 명의 약 0.53%에 불과하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빅테크 노조 불모지’인 미국의 노사 환경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기업은 전체적으로도 노조 가입률이 저조하다. 2019년 미국 기업의 노조 가입자는 1320만 명으로 가입률이 11.2%에 그쳤다. 같은 기간 영국 노조 가입률(23.5%)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과 복지가 제공되는 빅테크 기업일수록 노조의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다. 여론 또한 빅테크 기업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노조 설립을 달갑게 보지만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의 빅테크 기업 노조는 블루칼라 노동자 중심으로 설립됐었다. 실리콘밸리의 페이스북, 시스코, 제넨텍 등에 고용된 보안 직원들과 페이스북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각각 비공식 노조를 만들어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맞섰다. ‘실리콘밸리 라이징(Silicon Valley Rising)’ ‘테크 기업 노동자 연대(Tech Workers Coalition)’가 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의 조직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초심이 흔들리는 사례가 부각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장기화로 근로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빅테크 경영자들은 개발자 등 화이트칼라까지 가세한 노조 결성이라는 새로운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파벳 노조 설립을 공식화한 건 노조위원장인 파룰 카울과 부위원장 추이 쇼가 1월 4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구글을 만든 것은 우리다. 그러나 지금의 구글은 우리가 일하고 싶은 회사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내면서다.

알파벳 노조 대변인 앤드류 드와는 ‘이코노미조선’과 1월 12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노조 필요성의 방점을 임금 인상 같은 복지 증진보다는 가치 중시에 찍었다. 그는 “2018년의 구글 파업과 인공지능(AI) 편향성을 지적해 부당하게 해고된 팀닛 게브루 박사를 위한 투쟁 모두 구글의 유의미한 변화를 위한 것이었다”며 “알파벳 노조는 민주적인 조직이고, 많은 직원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구글과 알파벳 직원들은 2018년 11월에 일어난 ‘구글 파업(Google Walkout)’ 이후 비밀리에 노조 결성을 추진해 왔다. 구글 파업은 NYT가  2018년 11월에 보도한 특종에 힘입어 일어났다. 2014년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개발자 앤디 루빈이 성추문에 휘말려 구글을 떠났고, 심지어 퇴사 때 구글로부터 9000만달러를 받았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알파벳 노조는 수익 창출보다는 공공의 이익에 가치를 두고, 정규직·계약직·파견직·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직원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구글 설립 때 만든 ‘악이 되지 말라(Don’t be Evil)’는 모토를 따라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기업이 되자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선출에 불복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미 의회 점거 사태 책임의 일부를 유튜브가 져야 한다는 자성론도 그 맥락에서 나왔다.


2018년 11월 1일, 안드로이드 개발자 앤디 루빈의 성추문이 보도된 뒤 세계 2만 명의 구글과 알파벳 직원들이 파업했다. 사진 블룸버그
2018년 11월 1일, 안드로이드 개발자 앤디 루빈의 성추문이 보도된 뒤 세계 2만 명의 구글과 알파벳 직원들이 파업했다. 사진 블룸버그

‘빅테크 노조’ 도미노? 아마존도 움직임

최근 미국의 또 다른 빅테크이자 이커머스 기업인 아마존 내에서도 노조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미국 앨라배마주 아마존 물류창고의 계약직·정규직 직원 6000여 명이 2월 8일부터 3월 29일까지 우편으로 노조 가입 여부를 투표할 예정이다. 아마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노조 결성 투표여서 관심이 쏠린다.

아마존의 노조 설립 행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미국 델라웨어주의 한 물류창고에서 노조 결성을 두고 진행한 소규모 투표에서 반대표가 쏟아진 탓에 노조 설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NYT 보도에 따르면, 투표를 행사했던 아마존 직원들은 매니저와 반노조 성격을 띠는 컨설턴트로부터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코로나19도 빅테크 기업의 노조 결성을 부추겼다. 코로나19 이후 아마존 트래픽이 20% 가까이 늘어나면서 많은 업무를 처리하게 된 노동자의 처우 개선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근무 환경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무료 코로나19 검사 키트와 의료 혜택, 마스크를 제공하고, 최저시급을 미국 최저임금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기준 2만 명이 넘는 아마존 직원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이에 지난해 11월 전 세계 아마존 노동자는 물류창고발 코로나19 감염과 산재, 경직된 근로 스케줄에 불만을 제기하며 대규모 파업을 예고하기도 했었다.

비공식 단체 아마존 국제 연대(AWI)는 아마존의 불합리함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의 소통 창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AWI는 유럽연합(EU) 27개국 중 6개국과 미국의 아마존 물류창고 직원들이 2015년 공동 설립한 비공식 단체다. 1500명에 달하는 회원들은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모여 나라마다 다른 근무 환경 및 임금을 어떻게 개선할지 등을 협의한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주로 아마존이 내놓은 임시 안전 수칙과 임금 개편책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갔다.

팬데믹 장기화는 빅테크는 물론 기존 전통 업종에서도 젊은층의 노조 가입을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1월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이지 저널(Saje Journal)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지난해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한 1월부터 5월까지 조합원 9만2000명이 영국의 가장 큰 노조인 유니슨(Unison)에 가입했다”며 “팬데믹으로 노동자가 뿔뿔이 흩어질수록 팀 결속력은 더욱 강해진다”고 전했다.


Plus Point

‘뭉쳐야 산다’…근로 환경 개선 나선 韓 IT·게임 업체 노조들

미국 첨단 정보기술(IT) 업계에 알파벳 노조가 있다면, 한국에는 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네이버 노조가 있다. 현재까지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에 공식적으로 등록돼 있는 IT·게임 업체 노조는 총 네 개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이 2018년 4월 스타트를 끊은 뒤 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가 순서대로 노조 설립에 동참했다. 1월 11일 기준 넥슨의 총조합원은 1541명. 직원의 4분의 1이 노조에 가입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로 설립 2~3년째인 첨단 IT·게임 업체 노조들은 근무 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기 시작한 2018년, 게임 업체 사이에서는 야근과 밤샘 근무를 반복하는 ‘크런치모드’와 시간외근로에 대한 수당을 일괄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없애자는 지적이 이어졌다. 넥슨은 게임 업계의 해묵은 과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그 결과 2019년 1월 넥슨 자회사 네오플의 노사는 국내 게임 업계 최초로 단체협약을 합의해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이 합의는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펄어비스의 포괄임금제 폐지에 영향을 미친 것.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은 네이버 계열사 중 하나인 라인업의 분사를 두고 발생한 부당함에 맞서 투쟁 중이다. 본래 게임 개발 부서였지만 신규 사업을 추진하면서 직원 고용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은 직원 고용 안정을 위해 1차 본교섭을 완료하고, 단협 요구안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