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 광운대 경영학 박사, 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 전 베이징 지부장, 전 동향분석실장, 전 경영관리본부장
최용민
광운대 경영학 박사, 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 전 베이징 지부장, 전 동향분석실장, 전 경영관리본부장

오늘날 중국을 있게 한 근현대사의 중요한 출발점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1921년에 출범하여 올해로 100년을 맞이한 공산당이 중국인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했다면, 현재의 국가 형태를 제대로 갖춘 ‘신(新)중국’은 1946년에 첫발을 내디뎠다. 신중국 탄생 후에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중국인은 세계 최고를 향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당시로선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나선다. 1950년대에 모든 인민이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이라는 깃발 아래 모여, 집에 있는 거의 모든 쇠붙이를 나라에 헌납한 것이 바로 그 도전이다.

이 운동으로 인해, 가난한 인민의 숟가락과 밥그릇 그리고 밥통은 물론 농촌의 필수품인 농기구조차도 정부의 철강 생산량 증대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지도층은 중국이 세계 최대 철강 생산량을 확보해야만 당시 전 세계를 좌지우지한 영국과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모든 국민이 힘을 더해 원대한 꿈에 도전한 것이다.

1949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약 16만t으로, 미국의 철강 생산량의 448분의 1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힘겨운 싸움이었다. 당시 철은 강대국과 산업 경쟁력의 상징으로, 마치 오늘날 반도체의 위상과 비슷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달라져, 중국은 미국과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 이를 두고 최근 그리스 역사학자 이름을 딴 ‘투키디데스(Thucydides) 함정’이 자주 회자된다.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지중해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싸운 아테네와 스파르타 싸움 구도에 최근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를 투영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무대에서 미국과 중국을 가리키는 G2(주요 2개국)가 아닌 최고의 자리인 ‘G1(글로벌 넘버원)’을 차지하기 위해 격하게 싸운다는 역사적 교훈이 거론된다. 그러나 글로벌 무역과 통상전쟁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총성 없는 전쟁을 이미 시작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매년 6% 전후의 높은 경제 성장률에 힘입어 교역액 1위를 넘어 경제 규모 1위를 향해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중국에 미국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반덤핑(국제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하여 국내 판매 가격이나 생산비보다 싼 가격으로 상품을 수출한 것에 대하여 수입국에서 덤핑한 부분만큼 과세를 부과하는 일)’과 지식재산권 등을 협상 테이블 위에 두고 밀고 당기기를 일삼던 상황에서, 미국이 2018년 중국에 대규모 관세 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이는 경제전쟁의 서막을 알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7월 6일부터 340억달러(약 37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최고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초유의 조치를 실행에 옮겼다. 전문가들조차 전략적인 엄포로 끝날 것이라며 이를 평가절하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이어 추가로 세 차례의 조치가 뒤를 따르면서 총 3351억달러(약 368조원)어치의 중국산 상품이 미국의 높은 관세장벽에 영향을 받았다. 이는 수출로 경제 성장하며 일자리를 만들어온 중국 지도부를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 여파로 2019년에 중국산 제품의 미국으로의 수입액은 16%가 줄어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지난해 1월에 미국과 중국 간에 가까스로 합의가 이뤄지면서 서로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포성은 멈추지 않았다. 합의에 대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양국 간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미국은 견제구를 계속 날리면서 전선을 확대해왔다.


무역충돌 바이든 시대에도 점입가경

미국의 중국산에 대한 관세 부과는 2라운드를 위한 전초전에 불과하였다. 지난해 9월 중국의 대표선수이자 미래 산업을 상징하는 중국 제조업체 화웨이는 사실상 반도체를 수입할 수 없게 되었다.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납품 시 미국의 허락을 받으라는 조치가 글로벌 무역업계를 강타한 것이다. 산업의 쌀이자 디지털 시대의 핵심부품을 차단하여 제2의 대약진운동을 무산시키려는 포석으로 풀이되었다. 여기에다 디지털 시대의 상징인 모바일 메신저 위챗과 동영상 공유 애플리케이션 틱톡에 대한 견제조치까지 거론되면서 일부 중국 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양상이다.

올해 초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지만, 양국 간 무역충돌은 점입가경으로 흘러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조치를 통해 반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교부 대변인의 입을 빌려 엄포를 놓는 수준이 아니라 법적 조치를 통해 미국은 물론 제3국 기업도 당황하게 하는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중국을 최대 무역 파트너로 삼고 있는 다수 한국 기업 역시 그 영향권에 있다는 것이다.

올해 1월 초에 발표된 ‘외국법률 및 조치의 부당한 역외적용 저지방법’에 따라 중국 정부는 외국의 법률 및 조치가 중국 영토 내에 부당하게 적용될 경우 해당 법률 준수 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상무부 명령의 실행에 들어갔다. 한마디로 미국의 조치를 따른다는 이유로 중국 기업에 피해를 준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셈이다. 이 명령에 근거하여 중국은 외국법의 부당한 적용에 대해 국가 대 국가 차원의 보복조치를 할 수 있고, 또한 해당 외국법의 이행으로 손해를 입은 중국 기업도 이를 이행한 주체에 중국 내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추가 관세, 수출통제, 중국의 대미 투자 견제 등 미국이 자국법을 근거로 취한 견제조치에 대한 대응 성격으로 해석된다.

이런 중국의 반격은 사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은 2020년 9월 상무부 차원의 ‘신뢰할 수 없는 주체 명단에 대한 규정’을 통해 국가 이익에 피해를 끼치는 외국기업에 중국과의 수출입 제한 등 보복을 가할 수 있게 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수출통제법’을 시행하며 중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에 해를 끼치는 국가에 대해 수출 통제와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1월 18일부터는 ‘외국인투자안전심사방법’을 통해 외국인 투자가 중국의 안보와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건별로 심사해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이를 사전에 해소토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투자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중국에 주재하는 외국투자기업 입장에서는 소위 ‘준법 리스크’가 될 만한 조치 4건이 최근 잇달아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미국의 대중국 강경책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 중국의 역공도 날카로워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그 어느 경우에도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중국몽(中國夢)이 흔들리는 것을 중국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기존에는 미국의 조치를 유의하면서 중국에서 거래해야 했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상정하고 비즈니스를 진행해야 한다. 15년 내에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1950년대 중국의 대약진운동은 미국에 대한 반격을 통해 더욱 거친 형태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