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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1995년 ‘화통’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사업을 시작한 지 26년 만에 휴대전화 사업에서 손을 뗀다. 애플의 ‘아이폰3GS’가 국내 처음 출시됐던 2009년만 하더라도 삼성전자와 비슷한 후발 주자의 위치였지만, 불과 10여 년 사이에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강자로 올라선 반면 LG전자는 당시의 열세를 뒤엎지 못했다. 모토롤라와 노키아, RIM(리서치인모션)의 블랙베리처럼 거대한 시장 변화(메가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사라지는 또 하나의 비운의 휴대전화 브랜드가 되는 셈이다.

LG전자는 4월 5일 이사회를 열어 7월 13일 자로 MC사업본부(휴대전화 사업) 생산과 판매를 종료한다고 공시했다. 고가 스마트폰 시장에선 애플과 삼성전자가 확고한 위치를 다졌고, 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선 중국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사업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LG전자는 2015년 2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냈다. 이 기간 누적 영업적자만 5조원에 달한다.

LG전자 휴대전화 사업의 패착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LG전자는 노키아와 모토롤라, 삼성전자, 소니 에릭슨의 뒤를 이어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휴대전화 회사였다. ‘초콜릿폰(2005년)’과 ‘프라다폰(2007년)’의 대성공으로 2008년과 2009년 각각 1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LG전자가 성공의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이 휴대전화 시장의 지형은 대조정을 시작했다. 애플은 2007년 글로벌 시장에 아이폰을 처음 선보였고, 2009년 한국에 아이폰3GS를 출시했다. 윈도 기반의 ‘옴니아2’로 이에 대항하던 삼성전자는 2010년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갤럭시S’ 시리즈를 급하게 선보였다. 하지만 LG전자는 2009년에도 ‘뉴초콜릿폰’과 ‘프라다폰2’ 등 피처폰을 앞세웠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LG전자는 피처폰의 성공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전체 휴대전화 시장이 이동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장의 이동 그 자체를 애써 부정하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LG전자가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조언에 따라 아이폰을 ‘찻잔 속 태풍’으로 평가절하하며 허송세월한 것도 피처폰 사업부서가 현 지위를 이어나가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었다고 위 교수는 평했다.

LG전자는 2010년 스마트폰 ‘옵티머스’ 시리즈를 선보이지만, 부품 조달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제품 성능과 최적화 부족 등의 문제까지 발생하며 소비자의 호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후에도 LG전자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지난해 출시한 ‘윙’은 2개의 디스플레이가 있고, 그중 하나는 ‘T’ 자 모양으로 회전하는데, 기존에 없던 제품이란 평을 받았다. 올해 1월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박람회(CES 2021)에선 롤러블(화면을 말 수 있는) 폰까지 선보였다. 하지만 소비자를 위한 혁신이라기보다는 특이 디자인에 승부를 걸었다는 지적을 받으며 별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윙은 100만원이 넘는 출시가에도 중급기에 탑재되는 퀄컴 ‘스냅드래곤 765G’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로 써 소비자에게 실망을 안겼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LG전자는 적극성이 떨어져 모토롤라, 노키아, 블랙베리처럼 실기(失期)한 것”이라며 “다른 회사 같으면 조 단위 적자를 내는 사업을 일찌감치 구조조정했겠지만, 모바일 기술이 가전 등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등 계열사와 이해관계 등 때문에 의사 결정이 많이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LG전자가 26년 만에 휴대폰 사업에서 손을 뗀다. 사진 연합뉴스
LG전자가 26년 만에 휴대폰 사업에서 손을 뗀다. 사진 연합뉴스

모토롤라·노키아·RIM의 공통점 ‘혁신 외면’

잘나가던 휴대전화 브랜드가 순식간에 망가진 건 LG전자뿐만은 아니다. 모토롤라의 경우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 1위를 지켰지만, 1998년 노키아에 이 자리를 내줬다. ‘레이저’ 같은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면서도 여기에 집착한 나머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7년만 해도 23.5%를 기록했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012년 1.9%로 추락했다. 결국 2011년 8월 모토롤라에서 휴대전화 사업을 담당하는 모토롤라 모빌리티는 구글에 125억달러(약 14조원)에 매각됐고, 2014년 1월에는 중국 레노버에 29억1000만달러(약 3조2600억원)에 팔리게 됐다.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 당시 컨설팅 업체 로아컨설팅은 “모토롤라는 레이저 이후 시장을 이끌 만한 제품을 개발하지 못했는데, 이는 모토롤라가 뚜렷하게 잘 만드는 제품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분석했다. 3세대 이동통신(3G)으로의 전환이 늦었고,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제작이 늦었다는 점도 몰락한 이유 중의 하나로 꼽힌다.

노키아와 블랙베리 역시 시장 변화를 놓치고, 혁신하지 못한 데서 문제가 비롯됐다. 노키아의 영업이익은 1995년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에서 1999년 40억달러(약 4조4800억원)로 급증했고, 2003년 회사 역사상 최고의 히트작인 ‘노키아 1100’은 글로벌 시장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하지만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노키아는 급속하게 쇠락했고, 2013년 9월 노키아의 모바일 사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되기에 이른다.

노키아의 실패에는 구식 조직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팀 부오리 핀란드 알토대 교수와 퀴 후이 인시아드 싱가포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노키아 경영진은 노키아의 운영체제인 심비안이 열등하다는 걸 인정하기 두려워했고, 애플의 운영체제 iOS에 대응하지 못할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블랙베리를 만든 RIM은 터치스크린의 장점을 무시하고, 디자인을 개선하지 못하면서 소비자로부터 멀어졌다. 메시징 앱 와츠앱이나 애플 i메시지 같은 편리한 서비스가 있음에도 블랙베리메신저(BBM)를 고집하고, 안드로이드와 애플과 경쟁을 두려워해 기존 시장을 지키는 데만 집중한 것도 몰락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RIM은 2013년 8월 회사 매각에 나섰지만, 인수 회사가 나타나지 않았고 2016년 9월 휴대전화 사업 전면 철수를 선언했다. 이후 중국 TCL과 제휴해 제품을 판매하다 지난해 2월 휴대전화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6개월 뒤인 작년 8월 미국 텍사스 기반의 스타트업 온워드모빌리티가 블랙베리 라이선스를 취득해 5G 스마트폰을 출시하겠다고 밝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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