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 연합뉴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 연합뉴스

서울 고덕동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 ‘고덕그라시움’에서 요즘 전용면적(이하 전용) 59㎡와 84㎡ 매물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4932가구에 이르는 매머드급 단지이지만, 곧바로 입주할 수 있는 매물은 10가구 안팎이라는 게 인근 공인중개 업체 관계자의 얘기다. 1만5000가구의 새 아파트촌이 형성된 고덕동과 상일동 전체로 반경을 넓혀도 입주 가능한 매물을 찾긴 쉽지 않고, 설령 찾는다고 하더라도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다. 고덕그라시움 전용 84㎡ 호가는 최근 19억원 안팎이다. 이 아파트 전용 84㎡는 지난 1월 18억원에 매매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는데, 이보다 1억원을 더 줘야 입주 가능한 집을 살 수 있는 셈이다.

서울과 수도권 주택 시장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됐던 6월이 다가왔다. 6월 1일은 부동산 보유세인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과세 기준일이다. 애초 보유세 부담을 견디지 못한 다주택자들이 6월 이전에 주택 처분에 나서며 주택 시장이 타격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6월 1일부터 3주택자와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종부세율은 1.2~6%로 기존(0.5~3.2%)보다 두 배 오르고,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이하 양도세)도 기본세율에 20~30%포인트가 중과세된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가 현실화되는 셈이지만, 최근 주택 시장 분위기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주택 시장 상승을 유발할 만한 요인이 여전히 많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한다. 매년 집값이 수억원씩 오르면서 다주택자들은 보유세 부담이 커져도 집을 보유하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이 지연되며 주택 수급은 균형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규제 완화를 추진하며 주택 시장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커지고 있다. 6월 이후 주택 시장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코노미조선’은 향후 주택 시장에 영향을 미칠 세 가지 요인을 분석했다.


1│거래 위축? 그래도 집값 올랐다

올해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은 빙하기였다. 올해 초부터 5월 16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만6717건으로, 지난해 1~5월(2만7854건)보다 66% 줄었다. 6월 이후에는 지금보다 거래가 위축될 전망이다.

현재 서울에선 삼성·청담·대치·잠실동 일대와 종로·노원·동작구 등의 공공재개발 후보지 24곳, 양천·성동구 등의 주요 재건축 단지 등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이곳에서는 일정 면적 이상의 주택·토지·상가 등을 매매할 때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해, 실거주자가 아니면 매매가 어렵다.

6월부터 조정대상지역에서 집을 파는 다주택자의 양도세율이 확대된 것도 거래를 동결시키는 요인이다. 조정대상지역 3주택자의 경우 최고 75%의 세율이 부과된다. 지방소득세까지 더하면 양도세율은 82.5%에 달한다. 조정대상지역 3주택자가 집 한 채를 팔아 5억원의 양도차익을 거뒀다면, 양도세만 대략 3억원 이상을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거래가 위축되면 보통 호가가 떨어지고 실거래가도 내리지만, 집값에는 큰 영향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급감했지만, 매매가는 지난해 말 대비 5월 10일 현재 1.48% 상승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량과 매매가 변동률을 봐도 딱히 연관성이 없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거래를 틀어막았지만, 주택 매수 수요는 넘쳐 집주인이 제시한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하반기에는 거래 위축이 불가피하겠지만, 양도세와 종부세 완화 기대감이 있는 데다 설령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음 대선 주자가 이를 손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집값이 내려가진 않을 것”이라며 “다만, 금리 상승과 집값 급등에 따른 피로감으로 상반기보단 상승 폭이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2│대선 앞둔 규제 완화 기대감

집값 급등과 세제 부담 확대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주택 시장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최근 정부, 여당의 행보도 주택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재산세와 종부세, 양도세 등 부동산 세제를 놓고 다양한 개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종부세 완화의 경우 지금까지 정부, 여당의 스탠스(태도)를 바꿀 수 없다는 주장 때문에 파격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지만, 1주택자의 재산세 감면 범위는 공시가 6억원 이하에서 9억원 이하로 확대되는 방안이 유력하다.

내년 대선(3월 9일)과 지방선거(6월 1일)를 앞두고 주택 시장 규제 완화는 계속 언급될 가능성이 크다. 공시가율 인상으로 재산세와 종부세가 큰 폭으로 뛰고 있는 데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담보인정비율(LTV) 규제 등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무주택자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부터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않도록 하는 DSR 규제가 시행돼 주택담보대출 여건은 더욱 나빠진다. 여당에서 실수요자 LTV를 90%까지 완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2017년 이후 주택 시장에 대한 정부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은 만큼 큰 변화는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업계 한 전문가는 “지난 4년간 정부의 태도는 한결같았다”며 “정책이 바뀌어야 시장도 바뀔 텐데, 조정대상지역 1주택자도 양도세 비과세를 위해 2년 실거주 요건을 다는 정부가 획기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이번에도 정책 무용론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매년 주택 시장에는 변곡점이 될 만한 사건이 있었지만, 막상 이전의 흐름을 바꾸진 못했다. 가령 정부는 2019년 12월 17일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10년 이상 보유한 조정대상지역 주택을 팔면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를 배제한다고 밝혔다. 일시적으로 퇴로를 열어준 것이었지만,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기보다 증여를 택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2만3675건으로, 전년보다 89.2% 증가했다.

2017년 8·2 대책 당시에도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년(2018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살지 않는 집은 파시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2018년 주택 시장은 이례적인 과열 현상을 보였다. 민간 조사기관인 KB국민은행 기준으로 2018년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13.56% 오르며 전년 상승률(5.28%)을 두 배 넘게 웃돌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6월 이후에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보현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정부는 다주택자의 매물 출회를 유도해 시장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기조였는데, 다주택자의 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서울과 수도권에 입주할 새 아파트 물량도 뻔해 수급 불균형에 따른 주택 시장의 가격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