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솔터 ABG CEO는 최근 업황 침체나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된 브룩스브러더스, 포에버21 등의 의류 브랜드를 인수했다. 사진 ABG
제이미 솔터 ABG CEO는 최근 업황 침체나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된 브룩스브러더스, 포에버21 등의 의류 브랜드를 인수했다. 사진 ABG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 몰락하거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해 파산 위기에 처한 브랜드만 골라가며 인수하는 회사가 있다. 미국의 브랜드 개발·유통 기업 어센틱 브랜즈 그룹(ABG)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메릴린 먼로 등 유명인의 초상권을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포에버21, 브룩스브러더스, JC페니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브랜드를 최근 1~2년 사이에 모두 인수해 탄탄한 브랜드 진용을 갖췄다. 오프라인 기반의 유통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대체될 것이란 전망에도 ABG는 오프라인 브랜드 경쟁력을 앞세워 올해 여름 뉴욕증시에서 기업공개(IPO)에 나선다. 이미 시장에서 한 차례 실패한 ‘언더독’을 이끌고 투자자와 소비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ABG는 올해 여름 100억달러(약 11조3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목표로 IPO에 나선다. 100억달러는 의류 유통 업계에서 상징적인 숫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착용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약 97억달러)와 미국 백화점 체인인 콜스(약 88억달러), 미국 패션의 자존심 랠프로런(약 91억달러) 등의 시가 총액(현지시각 6월 1일 기준)을 웃돈다. 앞서 미국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019년 ABG에 8억7500만달러(약 9887억원)를 투자했을 때 기업 가치를 40억달러(약 4조5200억원)로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IPO를 위한 서류는 7월 초 SEC(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며, 7월 말 주식 거래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ABG의 올해 1분기 매출은 29억2000만달러(약 3조2996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9% 증가했다.

ABG의 경영 방식은 독특하다. 재무적으로 탄탄한 회사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파산보호신청 단계까지 이른 ‘위기의 회사’를 주로 인수한다. 포트폴리오에 낯익은 브랜드가 많은 이유다. 미국 백화점 체인인 바니스뉴욕과 미국 대통령들이 즐겨 입는다는 브룩스브러더스, 미국의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업체) 브랜드 포에버21, 1990년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노티카, 중저가 여성 구두 브랜드 나인웨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백화점 체인인 JC페니의 경우 2020년 5월 파산보호신청 이후 11월에 ABG에 인수됐고, 브룩스브러더스는 2020년 7월 파산보호신청을 한 지 한 달 만에 ABG에 팔렸다. 현재 ABG가 보유한 브랜드는 30개가 넘는다.


업계 온라인 사활 걸 때 오프라인 경쟁력 주목한 ABG

ABG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이미 솔터는 구조조정 전문 회사인 힐코 컨슈머 캐피털(이하 힐코)의 CEO를 지내다 ABG를 설립했다. 힐코에 있을 때도 경영난을 겪는 브랜드를 공격적으로 매입해 제조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회사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을 주로 맡았다. ABG에서의 사업 방식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졌고, 일시적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된 브랜드는 모두 그의 인수 타깃이 됐다.

2013년 인수한 여성 패션 브랜드 쥬시쿠튀르가 그런 사례다. 2008년 6억5000만달러(약 7345억원)였던 쥬시쿠튀르의 매출은 2012년 4억9860만달러(약 5634억원)를 기록했고 2013년 상반기 매출은 전년보다 10.7% 감소하며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솔터 CEO는 과감하게 이 브랜드를 인수했다. 실적 악화로 가치가 떨어졌을 때 브랜드를 사들여 재정비하면 과거의 브랜드 파워를 회복할 수 있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쥬시쿠튀르는 최근 미국 백화점 체인 콜스와 프랑스 패션 업체 베트멍과 협업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회복하고 있다. 미국 매체 인사이더는 지난해 “애슬레저 시장의 복병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애슬레저는 운동(애슬레틱·athletic)과 여가(레저·leisure)를 합친 말이다. ABG는 최근 아디다스가 매물로 내놓은 스포츠 브랜드 리복 입찰에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통 업계가 온라인에 집중할 때 오프라인 기반의 경영을 펼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ABG는 미국에서 가장 큰 상장 쇼핑몰인 사이먼 프로퍼티 그룹(이하 사이먼)과 브룩필드 프로퍼티 파트너스(이하 브룩필드)와 협력하고 있다. ABG와 사이먼, 브룩필드는 2016년 미국의 캐주얼 의류 브랜드 에어로포스테일을 인수했다. 당시 지식재산권(IP)뿐 아니라 ABG 역사상 처음으로 운영 사업까지 인수해 화제가 됐다.

포에버21 역시 ABG와 사이먼, 브룩필드가 힘을 합쳐 인수한 사례다. ABG와 사이먼은 지난해 스파크 그룹이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에디바우어를 사기도 했다.

솔터 CEO가 오프라인 쇼핑몰과 협력하는 이유는 그의 인터뷰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미국 경제 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오프라인) 쇼핑몰에 기반한 소매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벽돌과 박격포가 소매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온라인 시대에도 오프라인 매장과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도 그는 “미국에 매장이 있다면 전 세계에 더 많은 매장과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게다가 매장을 확보하면 전자상거래 전략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솔터 CEO는 유명인, 스포츠 스타와 초상권 계약을 통해 이를 브랜드에 활용하는 일에도 능숙했다. ABG를 설립한 뒤 2010년 9월 가장 먼저 사들인 브랜드가 격투기 단체인 UFC(얼티미트 파이팅 챔피언십)의 후원 브랜드인 의류 업체 탭아웃과 실버스타캐스팅이었고, 이듬해인 2011년 1월 할리우드 배우 메릴린 먼로의 초상권을 얻기도 했다. 2015년 12월에는 미 NBA 농구 선수였던 샤킬 오닐과 초상권, 마케팅 계약을 했고, 2016년 NBA 농구 선수 출신인 줄리어스 어빙과도 라이선싱 계약을 맺었다. 이들을 포함해 ABG가 라이선싱 계약을 한 유명인만 해도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 호주 골프 선수 그렉 노먼, 멕시코 가수 탈리아 등이 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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