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적용한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출시했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적용한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출시했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와 기아가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적용한 ‘아이오닉 5’ ‘EV6’를 각각 출시하면서 미국 테슬라가 독주해온 국내 전기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각 지자체가 전기차를 구매할 때 지원하는 보조금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비싼 전기차를 구매할 때 정부 보조금이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인데, 본격적인 전기차 판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보조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전기차 보조금은 절반 가까이 소진됐다. 중앙 정부가 지원하는 국고 보조금 최고 800만원과 지자체 지원금을 합하면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구매할 때 1000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올해 환경부의 전기승용차 보급 목표는 7만5000대로, 국비 예산은 100% 확보됐다. 문제는 지자체 지원금이다. 지자체가 올해 전기승용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물량은 4만5814대로, 국비와 지방비를 함께 지원받을 수 있는 차량이 환경부 보급 목표의 60%에 불과하다.

지자체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이미 지자체 지원금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환경부의 ‘저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올해 총 5367대의 전기승용차에 국고 보조금 800만원과 지자체 지원금 최대 4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법인이나 기관에 2027대, 우선순위(배출가스 5등급 차량 폐차 후 대체 구매자이거나 취약계층, 다자녀, 생애 최초 차량 구매자 등)에 506대, 일반 개인에 2834대다. 당초 5067대가 지원 대상이었는데, 지난달 개인택시 300대가 추가됐다.

서울시는 접수 순서에 따라 심사를 마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인데, 법인기관의 경우 이미 2916대가 접수돼 신청이 마감된 상태고, 일반 물량 역시 2650대가 접수돼 지원 여유가 200대가 채 남지 않았다. 우선순위의 경우 261대가 접수됐다.

한 해 절반이 지나기도 전에 고갈되는 보조금 때문에 세금으로 해외 기업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던 소비자들이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출고가 지연되는 아이오닉 5나, 하반기에나 출시될 EV6를 기다리기보다 테슬라 전기차 구매로 방향을 트는 사례가 속속 나온다. 서울 마포구에 살고 있는 직장인 이씨는 “아이오닉 5를 구매할 생각이었지만 생산이 지연된다는 뉴스가 계속 나와 테슬라 모델3를 구매했다”며 “보조금이 떨어질까 봐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꽤 많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테슬라의 판매 대수는 1~2월 각각 18대, 20대에 그쳤지만 보조금 지급이 시작된 3월에는 3194대로 급증했다. 올해 1~3월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승용차는 6220대였는데, 이 중 3231대가 테슬라였다.

정부가 올해부터 6000만원 이상의 고가 차량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테슬라 모델3 가격은 5000만원대다. 테슬라는 또 올해 출시한 모델Y의 최저 가격을 5999만원으로 책정하면서 상당수 물량이 보조금을 적용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지난해에도 1만1829대가 팔려 보조금 싹쓸이 논란이 있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국내 보조금 지급이 공정성을 위해 선착순이라는 방식을 도입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연초에 전부 몰아주는 것보다는 일정 기간 보조금 총량을 나눠 집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분기나 월별로 보조금을 나눠서 집행하면 연말 전기차 구매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이른바 ‘보조금 절벽’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를 충전하는 모습. 사진 BMW
전기차를 충전하는 모습. 사진 BMW

美·獨 보조금 규모 확대, 지급 기한도 연장

국내에서 선착순으로 지급되는 탓에 보조금 논란이 해마다 반복되는 사이 주요 선진국은 보조금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자국 업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시장에서 친환경차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133.5% 증가한 129만 대를 기록했다. 전기차 보조금을 증액하고 전기차 인프라 구축 예산을 확대하는 등 유럽 각국에서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친 결과다.

미국은 전기차 내수 판매량이 20만 대를 초과한 업체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다가 이를 60만 대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은 보조금을 증액하는 것과 더불어 지급 기한을 2020년에서 2025년 말로 연장했다.

독일은 2018년 6만유로(약 8100만원) 이하 차량에 대해 4000유로(약 54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는데, 2019년부터는 4만유로(약 5400만원) 이하 차량과 4만~6만5000유로(약 8800만원) 차량으로 지급 대상을 세분화하고 각각 6000유로(약 810만원), 5000유로(약 67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지난해부터는 보조금 액수를 더 높여 4만유로(약 5400만원) 이하 차량에 대해서는 9000유로(약 1200만원), 4만~6만5000유로 차량에 대해서는 7500유로(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 기업을 지원하고 국내 고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보조금 정책을 손질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연방정부가 물품을 조달할 때 미국산을 우선으로 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44만 대의 공용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했다. 다만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여야 하며, 미국산 부품이 적어도 절반은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현대차는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도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거나 세금을 깎아준다. 현대차가 지난 2019년 중국 현지에서 코나 일렉트릭(EV)을 출시하며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배터리 수주전에서도 중국 CATL이 물량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은 “미국과 중국이 자국산 우선주의 정책을 펴는 게 특별한 경우로 보이지만, 이런 움직임이 보편화되면 한국도 한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연선옥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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