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린의 윤현상 미국 변호사가 6월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미국 방산 업체와 한국 정부 간 소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법무법인 린의 윤현상 미국 변호사가 6월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미국 방산 업체와 한국 정부 간 소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분단국가인 한국은 매년 무기 구입비로만 20조원을 쓰는 글로벌 방위산업(방산) 시장의 ‘큰손’이다. 하지만 글로벌 방산 업체들은 한국을 ‘큰손’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방산 업체가 오히려 절대 ‘갑’이기 때문이다. 불량 무기를 납품하고도 뒤처리는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한국이 늘 당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3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는 뜻깊은 판결이 나왔다. 한국 방위사업청이 미국 방산 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것이다. 이번 승소로 돌려받게 된 돈은 100만달러(약 11억원)였다. 큰돈은 아니지만 허공으로 사라질 뻔한 국민의 세금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방위사업청을 대신해 미국까지 가서 돈을 받아온 건 현지의 대형로펌이 아닌 한국의 ‘법무법인 린’이었다.

20년 전 불량 무기…소송에만 십수 년

한국 방위사업청은 1999년과 2000년에 미국 방산 업체인 파라곤시스템, 얼라이드테크시스템스와 무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두 곳이지만, 두 회사 모두 존 안(JOHN AHN)이라는 사람이 최대주주로 있었다. 한 사람이 지배하고 있는 사실상 같은 회사였던 셈이다. 존 안은 무기 판매 계약을 하면서 보증을 섰다. 계약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직접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문제는 오래가지 않아 터졌다. 미국에서 건너온 무기가 불량품이었다. 방위사업청은 불량 무기를 판매한 방산 업체를 상대로 중재 판정을 얻고, 두 회사의 최대주주인 존 안을 상대로는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불량 무기를 다시 가져가고 무기 대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이었다.

한국 법원에서는 2015년 7월 방위사업청이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이들 방산 업체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에도 무기 대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뤘다. 이들은 계약서상에 ‘동시이행’ 조건을 내세웠다. 무기 구매 계약을 할 때는 보통 불량 등 문제가 생기면 대금 반환과 무기 반환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동시이행’ 조건을 계약서에 넣는다.

방산 업체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불량 무기 회수를 늦추면 무기 대금 반환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한 뒤 미국 법원으로 갔다. 무기 대금 반환이 늦어지고 있으니 보증을 선 방산 업체 최대주주가 직접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2016년 11월 시작된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 1심은 무려 3년을 끌었다. 그런데 3년 만에 나온 판결이 이상했다. 방위사업청이 받아야 할 돈이 200만달러(약 22억원)인데 그중 절반만 인정한 것이다.


美 대형로펌 사실상 패소…린 뒤집기 성공

방위사업청이 방산 업체 최대주주인 존 안에게 받아야 할 돈은 200만달러였다. 미국 방산 업체가 한국 법원 판결 이후에도 무기 대금을 반환하지 않으면서 생긴 지연손해금이다.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소송촉진법)’은 판결 선고 시 금전 채무 불이행에 따른 지연손해금 산정 기준을 정하고 있다. 연 20%의 법정이율을 적용하면 방위사업청이 돌려받을 돈이 200만달러였다.

그런데 미국 캘리포니아 1심 법원은 2019년 9월 판결하면서 200만달러가 아닌 100만달러만 인정했다. 존 안이 한국 법원에서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못했고, 20%의 법정이율은 미국 법률에 비해 과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에서 이뤄진 계약인 만큼 한국 법을 적용하는 게 당연했지만, 방위사업청이 선임한 현지 대형로펌은 이 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현지 법원은 한국 정부가 이자율을 부과한 게 아니라 페널티 형식의 벌금을 부과한 게 아닌가 의심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게 법무법인 린이다. 린의 국제분쟁팀은 항소심 재판에서 ‘20% 이자율’이 벌금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이를 위해 과거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한국 기업과 미국 현지 기업이 진행한 재판 판례를 찾아내기도 했다. 오래전 캘리포니아 법원이 한국 법률의 ‘20% 이자율’을 인정한 판례를 찾아내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린의 전략은 적중했고, 결국 미국 법원도 한국 정부가 받아야 할 돈이 200만달러라고 인정했다.

이번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린의 윤현상 미국 변호사는 “해외 방산 업체들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갑질하는 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미국 현지 파트너 로펌에도 ‘이 돈이 내 돈이라는 생각을 가져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현지 로펌들과 몇 년씩 파트너십

보통 로펌이 해외에서 소송할 때는 현지 로펌과 단발성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무법인 린은 파트너십을 맺고 몇 년씩 한곳의 로펌과만 계약하기 때문에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이번에 미국 방산 업체를 상대로 한 소송을 승소로 이끈 파트너도 몇 년째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현지 로펌이었다.

윤 변호사는 “현지에서 우리를 대신해 재판을 잘 수행해줄 로펌을 찾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낫다”며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면서 현지 로펌도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고, 하나의 로펌처럼 팀워크를 맞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이번 재판뿐 아니라 통영함을 둘러싼 한국 정부와 미국 방산 업체 간 소송도 맡고 있다.

법무법인 린은 중소형 부티크 포럼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6대 로펌을 바짝 추격하는 중형로펌으로 성장했다. 특히 린의 국제분쟁팀은 대형로펌과 현장 경험을 갖춘 외국 변호사들로 ‘작지만 강한 팀’을 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린의 국제분쟁팀에는 윤 변호사 외에도 김앤장 출신의 김성수 미국 변호사와 임혜경 미국 변호사 등이 있다.

이종현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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