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한양대 공대 겸임교수 한양대 학사, 일본 교토대 박사, 전 일본 교토대 조교수, 전 현대자동차 자동차산업연구소 부장
박정규 한양대 공대 겸임교수
한양대 학사, 일본 교토대 박사, 전 일본 교토대 조교수, 전 현대자동차 자동차산업연구소 부장

아키텍처(architecture)란 용어가 있다. ‘건축’이란 뜻이지만 어원을 살펴보면, ‘archi’는 ‘최상’을 ‘tecture’는 ‘기술자’를 뜻한다. 즉, 원래 의미는 ‘기술자 위의 기술자’이다. 직업이 아니라 지위를 가리킨다. 그럼 왜 건축이란 의미를 가지게 됐을까? 그리스에서는 국가적인 대사업이 있을 경우 아키텍처를 뽑았다. 역병이 돌 경우 최고의 의사가 아키텍처가 됐고, 대규모 토목공사가 있을 경우 최고의 건축가가 아키텍처가 됐다. 국가적인 토목 사업이 빈번했기에 건축가가 ‘아키텍처’라는 용어를 독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 아키텍처란 용어는 원래의 의미를 회복하고 있다.

2012년부터 자동차에도 아키텍처란 용어가 도입됐다. 과거 자동차 산업에서는 엔진, 새시와 같은 유형의 부품을 플랫폼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플랫폼의 상위 단계에 무형의 설계 사상이라는 의미의 아키텍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제품군 전체를 관통하는 설계 사상을 만들어 다양한 제품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기 위함이다. 이제 아키텍처는 ‘기술 전체를 포괄하는 상위 기술’이라는 원래의 의미로 되돌아 갔다.

설계사상이란 의미의 아키텍처는 산업·제품 분석시에도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고객은 제조기업이 만든 제품의 기능상의 편익을 구입한다. 그리고, 제조기업은 기능을 만족시키는 부품을 개발해 공장에서 조립한다. 이때 기능과 부품 간의 관계를 설계 사상(아키텍처)에 따라 크게 모듈형과 통합형(조합형)으로 구분한다(그림 1 참조).

모듈형 제품의 대표주자는 PC이다. PC 본체, 모니터, 프린터를 제각각 구입해서 연결해도 전체 시스템을 구성하는데 문제가 없다. 기능과 부품 간 일대일의 관계를 가진다. 부품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만 표준화돼 있다면 엔지니어의 강한 개성을 자유롭게 발휘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승용차는 다르다. 승용차의 핸들링을 좋게 하기 위해 서스펜션을 강하게 한다. 그러나 서스펜션이 너무 강해지면 승차감이 나빠진다. 기능과 부품 간에는 다(多)대다의 관계가 형성되기에 상충되는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엔지니어 간의 긴밀한 협조가 요구된다. 본인이 담당하는 기능만을 주장하는 독선적인 설계자는 제품을 망칠 수 있다. 부품은 제품 전체를 위해 통합돼야 한다. 따라서, 부품은 서로 튜닝(tuning)되어야 하며 설계자간의 의견도 조율(tuning)이 필요하다.

승용차, 픽업 트럭, 오토바이, 자전거라는 4가지 제품을 살펴보자(그림2 참조). 통상적인 표준산업 분류에 따른다면 이륜차(오토바이-자전거)와 사륜차(승용차-픽업트럭)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을 설계한 설계자의 머리 속 논리 구조에 따르면 ‘승용차-오토바이’를 통합형 제품으로, 그리고 ‘픽업트럭-자전거’를 모듈형 제품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토바이의 엔진 개발자를 생각해 보자. 그는 오토바이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엔진의 동력 성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엔진이 외부에 노출되기에 미적으로 뛰어난 엔진을 만들어야 한다. 즉, 하나의 부품이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승용차와 오토바이는 기능과 부품이 서로 다대다의 관계를 갖는 통합형 제품이다.

반면, 픽업 트럭의 차체 구조 설계만 살펴본다면 승용차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픽업 트럭은 하단에 프레임이 있어 전체 무게를 지탱한다. 상단에 운전자가 들어가는 캐빈(cabin)을 별도로 설계하고 2개의 부품을 조립하면 하나의 픽업 트럭이 완성된다.

부품과 기능 간의 관계가 일대일이다. 자전거와 비슷한 개념의 제품이다. 이렇게 픽업트럭과 자전거는 통상적으로 사륜차, 이륜차로 다르지만, 설계자의 사고구조상으로는 모듈형으로 동일하다.

모든 제품을 모듈형과 통합형이라는 양극단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모듈형에 가까운 제품, 통합형에 가까운 제품은 존재한다. 비교적 전자제품은 모듈형에, 승용차는 통합형 제품에 가깝다.

모듈형 제품과 통합형 제품을 만드는 제조기업의 기업문화는 많이 다르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모듈형에 일본이 통합형에 가까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 미국 자동차 메이커가 여전히 픽업 트럭에서 강세를 유지하는 한편,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가 엔진과 모터를 동시에 가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강한 것은 국가별로 문화에 따라 우세한 제품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을 살펴보면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모듈형과 통합형 제품의 대표 기업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천재 한 명이 수십만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라고 했다. S급 인재 발굴,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뛰어난 엔지니어들의 역할 분담 등으로 삼성전자는 단숨에 전자 산업을 평정했다. 모듈형 기업의 성장 전략이다.

반면, 이 논리를 통합형 기업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통합형 산업에는 ‘절차탁마’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구성원 전체가 공통의 목표를 향해 서로 간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상호 절충하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동차 산업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통합형 제품인 자동차에 엔진이 없어지고 배터리와 모터 그리고 모듈적 성격이 강한 소프트웨어 및 각종 정보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이들 모두가 기존 자동차 아키텍처(설계 사상)와 상이하다.

앞으로의 전기차는 ‘통합형 조직 역량을 갖춘 기존 메이커의 전기차’와 ‘모듈형 조직 역량을 갖춘 IT기업의 전기차’로 대별(大別)될 것이다.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지만 메이커들은 고통스럽다.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라

2017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모델3’를 양산하면서 공장의 완전 자동화를 포기하고 대규모로 인력을 투입했다. 그리고 본인도 직접 공장의 간이 침대에서 숙식하며 생산 문제를 해결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성장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자동차라는 통합형 제품 생산을 학습해 가는 과정이다.

한편, 테슬라는 올 6월에 세계에서 5번째로 강력한 슈퍼 컴퓨터를 공개했다. 이 컴퓨터는 전 세계 100만여대의 테슬라 전기차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여 학습한다. 연말까지 더 빠른 성능의 도조(Dojo,道場)컴퓨터가 개발될 예정이다.

슈퍼 컴퓨터 이름이 절차탁마하며 기예를 닦는 도장(道場)의 일본식 발음인 도조(Dojo)이다. 머리 좋은 실리콘 IT가이(gyu)가 도장에서 무예를 닦고 있는 형국이다. 경영전략의 논조로 표현하면 “가장 자신 있는 아키텍처의 강점을 살리면서 취약한 아키텍처의 조직 능력을 보완하라”라는 아키텍처 양면전략을 실현하고 있다.

‘슈퍼 컴퓨터’와 ‘야전침대’는 이 양면 전략의 상징이다. 그래서인지 테슬라는 작년 50만 대, 올 1분기 20만 대를 생산했다. 올해 생산 목표는100만 대다. 그렇다면 기존 메이커는 이런 테슬라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답은 동일하다.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