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산전 충북 증평공장에 제작 중인 전동차들이 놓여 있다. 사진 우진산전
우진산전 충북 증평공장에 제작 중인 전동차들이 놓여 있다. 사진 우진산전

제12호 태풍 ‘오마이스’가 북상하며 전국에 비를 뿌렸던 8월 23일. 철도차량을 만드는 우진산전의 충청북도 증평공장에선 서울지하철 5호선과 7호선에 투입될 전동차 제작이 한창이었다. 한쪽에선 객실 내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바닥 면에 흡음재를 넣고 있었고, 반대편에선 천장과 벽면, 바닥을 용접하고 있었다.

전동차 한 량(칸)의 길이는 19.5m. 1분당 400㎜씩 자동 용접기가 움직였다. 직원이 그 뒤를 따르며 용접 상태를 확인했다. 우진산전은 용접 품질을 위해 공장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주고 있었다. 이날도 비가 와 바깥 습도는 100%였지만, 내부 습도는 60%를 밑돌았다. 김인호 증평공장 생산총괄담당 이사는 “아주 작은 부분들이 모여 최종 제품의 품질을 결정한다”며 “공정마다 품질 검사를 진행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지하철 1·5·7호선, 부산지하철 1호선 전동차 잇따라 수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한국철도통계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국내 도시철도 5883칸 가운데 1018칸이 ‘사용 내구연한’ 25년이 지났다. 6칸 중 1칸꼴로 폐차를 앞뒀다는 뜻이다. 철도차량 제작 업체들은 철도차량 교체 주기가 도래하면서 매출 성장은 물론 트랙 레코드(실적)를 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진산전도 잇따라 수주고를 올리며 충북 괴산공장과 증평공장을 바쁘게 돌리고 있다. 우진산전의 괴산공장에선 전자장비부품(전장품)을, 증평공장에선 철도차량 완성차를 제작한다. 우진산전은 연말까지 연간 전동차 생산량을 300칸으로 끌어올리고, 매출도 2025년까지 세 배가량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차체 조립이 끝나면 ‘도색’과 내부 바닥재 등을 마감하는 ‘선행작업’, 좌석과 전장품을 설치하는 ‘의장작업’이 이어진다. 이어 차량 바퀴까지 달면 출퇴근길에 만나는 익숙한 지하철의 모습이 된다. 증평공장에서 완성된 전동차는 우진산전의 철도차량 종합시험센터(TTC)로 옮겨 시운전 등을 진행한 뒤 연결된 철로를 따라 서울로 향한다. 전체 생산 과정이 한 달가량된다.

우진산전은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서울지하철 5호선과 7호선 336칸을 2019년에 수주해 제작하고 있다. 현재 10편성(80칸)을 인도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도급사 납품이 차질을 빚어 전체 일정이 지연됐지만, 하반기 안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또 지난해 코레일과 계약을 체결한 서울지하철 1호선과 일산선 490칸 제작도 시작했다. 2022년부터는 부산지하철 1호선 200칸도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진산전의 계약 잔액은 2019년 말 4493억원에서 최근 9898억원으로 늘었다. 김정현 우진산전 사장은 “수주 확대에 맞춰 생산 능력도 키우고 있다”며 “연초 월 16칸 생산에서 현재 26칸으로 끌어 올렸는데 연말까지 31칸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로 만든 서울지하철 전동차가 8월 20일 우진산전 철도차량 종합시험센터(TTC)에서 서울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 우진산전
새로 만든 서울지하철 전동차가 8월 20일 우진산전 철도차량 종합시험센터(TTC)에서 서울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 우진산전

전력변환장치 세계 최고 수준⋯핵심 전장품 60% 자체 조달

서울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던 1974년에 설립된 우진산전은 국내 철도차량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왔다. 저항차용 주저항기를 시작으로 철도차량 전장품을 국산화하며 기술력을 쌓았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철도차량 완성차 제작에 나섰고,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네 번째로 무인운전 경전철 개발에도 성공했다.

특히 전력변환장치인 컨버터와 인버터 시스템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 업체들도 우진산전의 제품을 찾는다. 우진산전은 철도차량 핵심 전장품 가운데 60% 이상을 자체 생산·조달하고 있다. 이날 괴산공장에서도 우진산전 직원들이 인쇄회로기판(PCB)부터 TCMS(철도차량 전장품 제어장치) 등을 직접 제작하고 있었다.

정영태 우진산전 괴산공장 공장장(상무)은 “철도차량은 한 번 만들어지면 25년은 사용하므로 품질 관리가 중요하다”며 “외부 제품을 사용하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원인 규명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데다, 불량률도 낮추기 위해 핵심 부품을 자체 제작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술력은 우진산전의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우진산전이 덤핑수주 없이 계약을 따낼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우진산전은 창사 후 47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내실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8월 23일 우진산전 괴산공장에서 직원이 인버터·컨버터 제품을 만들고 있다. 사진 권오은 기자
8월 23일 우진산전 괴산공장에서 직원이 인버터·컨버터 제품을 만들고 있다. 사진 권오은 기자

전기버스·ESS 사업도 2025년까지 2배 성장 목표

우진산전은 지난해 매출 2566억원, 영업이익 71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보다 매출은 110.6%, 영업이익은 43.9% 성장했다. 올해는 매출 4350억원, 영업이익 190억원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5년에는 중전철과 경전철, 전장품 사업을 중심으로 매출 72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정했다.

우진산전은 성장과 동시에 생산을 관리하기 위해 증평공장에 ‘디지털 트윈’ 시스템을 도입했다. 증평공장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폐쇄회로(CC)TV가 촬영하면 AI(인공지능)가 작업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공정별로 지연 정도나 생산 실적을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할 수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도 준비하고 있다. 우진산전은 이르면 오는 10월 수소 전동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 전기버스 ‘아폴로’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을 키우고 있다. 특히 ESS 사업은 철도용뿐만 아니라 국내외 산업용 제품 실적도 쌓아가고 있다. 우진산전은 지난해 ESS 사업에서 253억원, 전기버스에서 369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2025년까지 각각 두 배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2년 상반기를 목표로 Pre-IPO(상장 전 지분투자)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우진산전 지분은 지주회사 우진이 100%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