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 화양 대표 청주대 국문학, 사진관 운영(1994~2012년), 화양 설립(2013년)
이한상 화양 대표
청주대 국문학, 사진관 운영(1994~2012년), 화양 설립(2013년)

올해 우리술품평회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풍정사계 춘’은 전통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누룩술로 잘 알려진 약주다. 국내산 쌀과 물 그리고 양조장 대표가 직접 만든 전통 누룩으로 빚었다. 제조사인 화양 양조장의 이한상 대표도 “이번 대통령상 수상은 누룩술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풍정사계 춘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 만찬주로도 선정됐을 정도로 품질을 진작에 인정받은 술이다.

풍정사계 춘은 예로부터 물맛 좋기로 유명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의 풍정마을에서 빚는다. 풍정은 ‘단풍나무 우물’이란 뜻이다. ‘풍정사계’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계절별로 맛과 향이 다른 네 가지 술에 춘(약주), 하(과하주), 추(탁주), 동(증류주) 이름을 붙였다. 브랜드 네이밍이 전통주 중에서 가장 잘된 사례라는 칭찬도 많이 받는다. 이번에 대통령상을 받은 풍정사계 춘은 봄술, 약주로 풍정사계 네 가지 술 중 가장 먼저 만든 술이며, 다른 술들의 모태가 되는 술이다.

풍정사계 술은 춘하추동 구분 없이 한마디로 누룩술이다. 누룩 비중이 쌀 함유량의 10%에 달한다. 국내 전통술 중 누룩을 가장 많이 쓰는 술 중 하나다.

하지만 누룩술은 최근의 전통술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새로 전통술 양조에 뛰어든 신세대 양조인들은 누룩취(누룩에서 나는 역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누룩 함유량을 줄이거나 아예 넣지 않고, 개량 누룩인 입국 사용을 늘리고 있다. 입국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누룩으로 원산지가 일본이다.

양조인들이 누룩을 꺼리는 이유는 주 소비층인 젊은이들이 누룩취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누룩을 덜 넣으면 누룩 냄새가 덜 나게 된다. 하지만 전통 누룩에 비해 입국은 발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별도로 효모를 보충해 발효를 활성화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 누룩 대신 입국 사용을 늘리는 양조 트렌드를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양조인이 풍정사계를 빚는 이한상 대표다. 그는 “내 누룩이 없으면 내 술이 없다”라고 말한다. 명색이 전통주를 빚는다면, 내가 직접 만드는 누룩으로 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왼쪽부터 춘(약주), 하(과하주), 추(탁주), 동(증류주). 이 중 봄술인 풍정사계 춘이 올해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았다. 사진 화양
왼쪽부터 춘(약주), 하(과하주), 추(탁주), 동(증류주). 이 중 봄술인 풍정사계 춘이 올해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았다. 사진 화양

전통술에 있어 누룩의 의미는
“누룩은 단순한 발효제가 아니다. 전통술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술맛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원료인 쌀 덕분이기보다는 다양한 미생물이 들어 있는 누룩을 쓰기 때문이다. 누룩이 없어지는 순간, 우리 술이 사라진다. 전통주 양조인이라면 누구나 누룩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정신을 비롯해 문화적인 것이 다 누룩에 들어가 있다. 다만 누룩을 좀 더 편하게, 쉽게 만들고 과학화해 품질을 균일하게 만드는 노력은 얼마든지 해야 한다. 하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누룩을 만들지 않고 대체품(입국)으로 술을 빚는다는 것은 우리 혼을 없애는 것과 똑같다.”

‘누룩 예찬론자인 이한상 대표는 본인의 누룩을 갖는 데 10년이 걸렸다. 술 공부를 시작한 해는 2006년, 풍정사계 춘을 세상에 내놓은 게 2015년이다. 그사이에 주류 면허를 반납하기도 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고향인 청주에서 사진관을 10여 년간 운영하다가 전통술 빚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풍정사계에 사용하는 누룩은 어떤 것인가
“풍정사계 술에 들어가는 누룩은 밀 90%, 녹두 10%로 만든다. 이를 ‘향온곡’이라 말한다. 향온곡으로 빚는 풍정사계 술(춘)은 다른 약주에 비해 황금빛을 띤다. 예민한 사람은 향온곡으로 만든 술(풍정사계 춘)을 맛보고 녹두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잘 만든 화이트와인 색상과 비슷하다.”

메주 쑤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룩은 손이나 발로 디뎌야 형태를 잡을 수 있다. 사람의 손발이 닿아야 하니 힘이 들 수밖에 없어 누룩을 대량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한상 대표가 고안한 것이 누룩 틀이다. 유압기를 이용해 기계의 힘으로 눌러 누룩 형태를 쉽게 만드는 장비다. 누룩 틀은 이 대표 혼자 만든 것은 아니고, 그와 함께 누룩 공부를 하는 모임에서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한상 대표는 “누룩 틀 덕분에 요즘엔 일 년 치 누룩을 3~4일이면 형태를 만들 수 있다”라며 “발로 디뎌 누룩 형태를 만들 때는 거의 한 달이 걸리던 고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누룩 틀을 이용해 누룩을 대량생산하고 있나
“아직 누룩술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많지 않아, 누룩 생산량을 크게 늘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해서 수요와 상관없이 공급만 늘릴 수는 없다. 사실 지금 양조장 운영을 가족이 도맡고 있다. 우선 우리 부부가 대부분을 하고 자식들도 일부 돕고 있다. 가족 경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술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과 타협하려면 착한 가격대의 술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자니 지금보다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재료를 쓸 수밖에 없고, 발효와 숙성 기간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할 역할은 ‘누룩술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누룩술을 많이 팔기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그러려면 내 욕심만큼 좋은 술을 만들기 어렵다.”

누룩 만드는 데 왕도가 있나
“두 가지만 잘 기억하면 된다. 우선 누룩 제조 과정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누룩을 만들 때는 매일 누룩 일지를 썼다. 누룩을 몇 번 디뎠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누룩을 한 번 디뎠더라도 누룩을 뜨는 과정 전부를 본인이 느꼈는가가 더 중요하다. 또 하나는 내가 만드는 누룩을 평가하고 지도해줄 사람을 고르는 게 좋다. 나 같은 경우는 한국전통주연구소의 박록담 소장님을 누룩 멘토로 선택했다. 그래서 새로운 누룩을 만들었을 때는 꼭 그 누룩을 가져가서 보여드리고, 평가받고, 평가받은 내용을 다음 누룩 만들 때 반영했다.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내 누룩을 만들 수 있었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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