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크롤링(crawling)은 불법일까 아닐까. 크롤링은 검색 엔진 로봇을 이용해 웹이나 애플리케이션(앱)의 내용을 그대로 긁어온 뒤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행위다. 통상 산업계 후발 주자가 선두 기업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시도한다. 그러나 데이터의 가치가 높아진 지금도 ‘크롤링은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2016년 국내 숙박 플랫폼 선두 업체인 ‘야놀자’와 경쟁 업체인 ‘여기어때’ 사이에 크롤링 문제가 불거졌다. 야놀자 앱에 통상적인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트래픽 이상의 비정상적인 접속이 이뤄진 것이다. 야놀자는 대량 호출 신호를 감지하고 해당 IP(컴퓨터 주소)를 차단했지만, 여기어때는 서버 전원을 차단한 뒤 다시 켜는 방식으로 IP를 변경해 데이터를 추출했다.

결국 야놀자는 다수의 ‘불법 크롤링’ 사건에서 승소한 정보기술(IT) 전문 로펌 법무법인 민후에 도움을 요청했다. 민후는 기업의 핵심 자산인 데이터를 무단으로 크롤링하는 것은 데이터베이스(DB)권을 침해한다는 판결을 받아낸 최초의 로펌이다.

민후는 야놀자를 대리해 여기어때 창업자인 심명섭 전 대표를 고소하고, 민사 소송도 동시에 진행했다. 당시 여기어때 측의 형사 변호인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민사 소송의 법률대리인은 법무법인 지평이 나섰다. 10여 명의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민후는 대형 로펌과 싸움을 시작했다. 야놀자를 대리한 김경환(사법연수원 36기) 대표변호사와 원준성(47기) 변호사는 “김앤장과 지평을 상대로 한 법적 다툼은 간단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법무법인 민후는 야놀자를 대리해 경쟁 업체인 여기어때를 상대로 ‘무단 크롤링’ 위법성을 확인하고 최고 손해배상액을 받아냈다. 크롤링은 검색 엔진 로봇을 이용해 웹이나 앱의 내용을 그대로 긁어온 뒤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행위다. 사진 야놀자
법무법인 민후는 야놀자를 대리해 경쟁 업체인 여기어때를 상대로 ‘무단 크롤링’ 위법성을 확인하고 최고 손해배상액을 받아냈다. 크롤링은 검색 엔진 로봇을 이용해 웹이나 앱의 내용을 그대로 긁어온 뒤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행위다. 사진 야놀자

검찰 불법성 인정…법원도 “부당한 경쟁 행위” 지적

검찰 수사 결과, 여기어때는 2015년부터 야놀자의 웹과 앱에 접속해 제휴 숙박업소 목록, 주소 정보, 가격 정보 등을 확인하고 이를 내부적으로 공유했다. 더구나 이듬해 1월 여기어때 직원은 야놀자 앱의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서버 모듈과 해당 서버의 인터넷 주소(URL) 등 정보를 호출하는 명령 구문을 알아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여기어때 직원들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제휴 숙박업소 업체명, 주소, 방 이름, 원래 금액, 할인 금액, 입실·퇴실 시간 등을 무단으로 복제했다. 결국 검찰은 심 전 대표와 직원 4명 등의 행위가 불법적이라고 보고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위드이노베이션(현 여기어때컴퍼니)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민사 소송에서도 여기어때의 불법적인 크롤링 행위가 모두 인정됐다. 재판부는 “당시 대표이사 주도로 직원들이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지속적으로 야놀자의 정보를 무단 복제했다”며 “야놀자의 고소에 의한 수사 개시로 인해 중단될 때까지 약 9개월간 대량의 정보에 접근했다”고 지적했다.

원 변호사는 “다른 사건은 데이터를 복제해서 자신의 사이트에 그대로 등록하는 ‘데드카피’ 형식이라면 여기어때는 복제는 똑같이 하되 자신의 영업 전략을 수립하는 데 사용했다”며 “사실상 해킹에 가깝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변론 과정에서 지평은 “이 같은 정보 수집 방식이 매우 일반적으로 당연히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1시간마다 크롤링을 할 때 자신들의 서버를 쓰는 게 발각될 위험이 있다고 여겨 프로그램을 아마존 웹서비스 클라우드로 이전해 설치했다”라며 “이는 자신들의 행위가 드러날 경우 문제가 된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지평은 “직원 1명이 수작업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다소 간편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고도 항변했지만, 법원은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하기 위해 별도 프로그램까지 설치하고 당시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반복해 무단 복제 행위를 했다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민후, 법리적 승리 확신…쟁점은 손해배상 액수

불법 크롤링과 관련한 DB권 침해 여부에 대해 레퍼런스를 정립한 민후는 야놀자-여기어때 소송에서 처음부터 승소를 확신했다고 전했다. 민후는 2010년 전례가 없던 DB권 침해를 주장해 법원을 설득한 경험이 있다. 채용 정보 플랫폼인 잡코리아와 사람인의 소송이 대표적인 예다. 사람인이 2008년 잡코리아에 등록된 기업의 채용 공고를 크롤링하는 방식으로 무단 복제해 법적 분쟁이 시작됐는데, 민후가 대리한 잡코리아가 1·2·3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이처럼 법리적 측면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손해배상 액수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원 변호사는 “야놀자의 손해액을 키울 필요성이 있었다”며 “1억~2억원 수준으로 끝난다면 큰 이익을 누린 회사에 사실상 크롤링을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후는 DB권 침해 기간과 행위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특정한 뒤, 여기어때가 얼마나 반사 이익을 얻었는지 등을 수치화된 자료로 만들어 입증했다. 결국 민후는 크롤링 사건 역사상, 10억원이라는 최고 액수의 손해배상을 받아냈다.

김 변호사는 “당시 여기어때의 매출이 굉장히 올라가 야놀자를 추월했는데, 야놀자의 데이터 가치를 거의 다 빼앗아 간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데이터가 기업 성장과 발전에 현실적으로 크게 기여한다는 점을 입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온라인 숙박 예약 서비스에서는 영업 정보가 매우 중요한 무형 자산에 해당한다”며 “여기어때는 야놀자에 손해배상금 1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사람인이 잡코리아에 배상하게 된 4억5000만원의 두배가 넘는 금액이다. 해당 사건은 현재 항소심에서 계류 중이다.

한편 여기어때 창업자 심 전 대표 등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뒤 항소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민후는 1심까지 피해자(야놀자) 변호사로 활동했다.

김 변호사는 “(심 전 대표의 무죄 판결은) 잘못된 판결이다. 사회적 정의 관점에도 반하고, 법리에도 반한다”고 설명했다. 심 전 대표 등의 형사 재판은 현재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김종용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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