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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분 남음, 조리 5분, 2900원, ○○베이커리 영등포점’

2021년 12월 14일 오전 9시, 배달의민족(배민) 일반인 배달 중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배민 커넥트’에 접속하자 화면에 이런 알람이 떴다. 현재 위치에서 ○○베이커리 영등포점에서 음식을 픽업해 고객 집에 도착하기까지 26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식당에서 준비가 끝나려면 5분이 남았다는 뜻이다. 2900원은 배달 수수료다. 위치를 아는 곳이라 픽업은 수월했지만 배달지까지는 초행이어서 헤맸다. 걸어서 배달하는 터라 조바심이 생겨 걸음을 재촉했다.

배달 내내 스몸비(스마트폰 좀비)였다. 앱에서 내비게이션과 예정 소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간을 초과한다고 페널티(벌칙)가 있는 건 아니지만 혹시 마주칠지도 모르는 고객이 면전에 대고 불만을 표시할까봐 겁이 났다. 한 번은 영등포역을 가로질러 가라는 내비게이션 안내를 이해하지 못해 주위를 돌다가 15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음식을 가져가는 고객의 눈총에 뒤통수가 따가웠다.

4시간 동안 앱은 쉼 없이 울려대며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다고 알렸다. 배달지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고, 배달음식이 무겁거나 금방 불지 않을 만한 건수를 골라 5건을 수락했다. 낙지덮밥 1인분, 김밥과 라면 세트, 베트남쌀국수·분짜·짜조, 빵과 커피, 차슈덮밥과 국물 있는 면 등 12만7000원어치를 배달했다. 식당과 고객을 연결하는 역할이지만 소통은 일절 없었다. 커넥터 입장에선 편했지만 식당이 커넥터나 라이더의 잘못을 전부 떠안게 돼 플랫폼을 비롯한 모두에게 을(乙)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배달료는 1만7000원이었으나, 통장에는 세금과 보험료를 떼고 1만원이 입금됐다. 시간이 날 때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앱을 잘 보고 걷기만 하는 일이라 어렵지 않았지만 4시간 동안 3.2㎞(약 1만5000보)를 걷고 달랑 1만원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니 적게 느껴졌다. 시급이 2500원인 셈이다.


국민 100명 중 1명은 이제 배달 기사

배민 커넥트는 2019년 하반기 신설됐다. 배달을 받던 고객들이 배달에 직접 동원되는 이른바 전 국민 배달 기사 시대의 시작이었다. 배민은 이를 ‘크라우드 소싱’이라고 부른다. ‘군중(crowd)’과 ‘아웃소싱(outsourcing·외부 자원 동원)’의 합성어다. 기업 외부의 군중을 수익 활동에 끌어들여 이익을 낸 뒤 일부를 참여자들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다.

일반인은 스마트폰만 갖고 있으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음식을 배달하고 그에 상응하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비슷한 시기 배달 중개 모바일 앱 시장에 진출한 쿠팡이츠도 크라우드 소싱을 시작했다. 배민이 장악한 시장에 후발주자로 참여하면서 묶음 배달이 아닌 한 집만 가는 ‘단건배달’을 꺼내 들었는데 배달 기사를 모두 크라우드 소싱으로 충당했다.

이들 배달 앱은 현재 약 70만 명(중복 포함) 크라우드 소싱 배달 기사를 보유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배민 커넥트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2020년 7월 20만 명을 넘어선 이후 꾸준히 20만 명대로 유지되고 있다. 같은 해 4월 처음으로 10만 명을 기록한 이후 3개월 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쿠팡이츠의 일반인 배달 중개 앱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 MAU는 50만 명 수준이다. 우리나라 인구 100명 중 1명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배달원으로 일하는 셈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전 국민 배달 시대를 열었다. 크라우드 소싱 배달 자체가 배달 수요를 배달 기사 공급이 못 따라가면서 출발했는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로 배달 수요는 그야말로 폭증했다. 배민 한 곳에서만 2020년 연간 배달 건수가 6억8300만 건을 기록했다. 2019년(약 4억만 건) 대비 70% 넘게 늘었다.

배민과 쿠팡이츠는 프로모션을 거듭하며 일반 배달 기사를 모집했다. 건당 약 3500원 정도 수수료에 거리 할증, 날씨 할증, 배달 처리 할증 등을 붙이며 남는 시간을 배달에 쓰게 만들었다. 덕분에 코로나19 속 거리로 밀려난 이들은 배달 기사를 자청했다. 본업 외 부업으로 추가 수익을 찾는 이들의 수요도 배달 앱이 모두 빨아들였다는 평가다.


“연봉 1억원은 불가능”⋯배달 기사 절반 사고 경험

하지만 배달 업계는 아직도 배달 기사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르바이트 등 부업으로 배달 업무에 뛰어든 이들이 대부분인 탓에 점심시간이나 늦은 밤 야식 수요 등 정작 배달 주문이 많을 땐 이에 대응할 배달 기사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전업 배달 기사들이 이용하는 기사 앱 ‘부릉’ MAU는 2020년말 1만 명에서 2021년 12월 1만2000명으로 제자리걸음했다.

외식 업계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젊은층들이 식당 아르바이트 대신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배달로 관심을 옮기고 있어서다. 배달 기사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하루에도 수십 건의 수익 인증이 올라오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설렁탕집을 운영하는 김일선(55)씨는 “월급을 200만원 넘게 준다고 해도 사람이 구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달로 1억원을 벌었다는 수익 인증은 신화가 됐다. 배민과 쿠팡이츠는 시시각각의 노동 강도에 맞춰서 사람을 사용할 방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배달 주문 증감에 맞춰 가격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하루 47만원 돈을 벌어야 가능한 연봉”이라며 “눈 내린 빙판길을 달리거나, 신호를 무시하고 쉼 없이 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고는 늘고 서비스 품질은 낮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전업·부업 배달 기사 5626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인 47%가 배달 중 교통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응답자의 86%가 음식점(4189명)이나 고객(3772명), 지역 배달대행 업체(1690명), 배달 플랫폼 업체(1558명·이상 중복 응답) 등으로부터 배달 재촉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현승·배동주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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