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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주 이내의 영아들은 결핵성 수막염이나 폐결핵이 발병하기 쉽다. 그래서 결핵예방백신(BCG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 영유아들이 맞는 BCG백신은 크게 두 가지다. 흔히 ‘불 주사’로 불리는 주사형(피내용) 백신과 도장 찍듯 눌러서 접종하는 도장형(경피용) 백신이다. 도장형 백신은 흉터가 덜 남아 비싼 편에 속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에 따라 정부는 주사형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NIP) 대상으로 지정해 무료 예방접종을 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백신 대란’이 벌어졌다. 전국 보건소에서 주사형 백신이 바닥난 것이다. 주사형 백신은 덴마크에서 전량 수입됐는데, 공급사인 SSI에서 차질이 생긴 게 원인이었다. 영유아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도장형 백신을 맞혀야 했다. 무료인 주사형 백신과 달리, 도장형 백신은 백신 가격 4만3000원에 접종 비용 2만7000원까지 들어 불만이 쇄도했다.

결국, 정부는 2017년 10월부터 8개월간 임시로 도장형 백신 무료 예방접종 사업을 시행했다. 이때 일본 JBL로부터 기존 도장형 백신만을 수입하던 한국백신이 해당 사업에 포함됐다. 4만3000원이었던 도장형 백신과 2358원이었던 주사형 백신 간 단가 차이가 약 18배에 달했던 탓에 정부는 추가로 140억원의 예산을 들여야 했다.

당시 백신 대란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2019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도장형 백신을 국내에 유통했던 한국백신 법인과 대표 등을 공정거래법 위반과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과징금 9억9000만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백신이 주력 판매 제품이었던 도장형 백신 판매량이 급감하자, 의도적으로 주사형 물량을 수입하지 않으면서 도장형 판매로 인한 독점적 이득을 챙겼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당시 부장판사 김선일)는 2월 15일 한국백신과 임원 2명에게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부당한 출고조절 행위를 했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을 이끈 건 법무법인 율촌이었다.


공정위·검찰 “한국백신, 영유아 건강 볼모로 폭리”

검찰과 공정위는 한국백신을 ‘영유아 건강을 볼모로 사익을 추구한 기업’으로 판단했다. 한국백신이 도장형 백신 판매를 늘리기 위한 ‘부당한 출고조절’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근거는 공정위의 조사 결과였다. 당초 한국백신은 2015년 9월부터 약 1년간 일본산 BCG백신(도장형)을 국내에 독점 수입·공급했다. 1년 뒤 주사형 백신을 만들던 덴마크 SSI에서 차질이 생기기 시작하자 당시 질병관리본부(질본)는 기존에 도장형 백신만 수입하던 한국백신에 일본 JBL의 주사형 백신 수입 허가도 내줬다. 한국백신은 2016년 주사형 백신 2만1900세트(최대 43만8000명 접종 분량)를 국내에 공급했다. 

문제는 2017년 질본이 한국백신에 주사형 2만 세트 수입을 추가로 요청했는데도, 한국백신이 이에 응하지 않으며 발생했다. 한국백신은 질본이 주사형 백신 2만 세트를 요청하면서도 전량 구매를 확답하지 않자, 백신 유통기한 경과 가능성을 우려해 수입하지 않았다. 공정위와 검찰은 이를 두고 한국백신이 주력 제품인 도장형 백신 판매를 늘리기 위해 부당하게 주사형 공급을 중단했다고 판단했다. 질본과 협의를 하지 않은 채 한국백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이유에서다.


율촌 “코카콜라 수입 업체에 펩시 수입 부탁한 것”

율촌은 ‘부당한 출고조절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즉 한국백신이 의도적으로 출고를 조절하지 않았고, 출고조절이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합리적인 경영 판단에 따른 조치이기 때문에 ‘부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율촌은 질본의 ‘확정적 공급 요청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백신은 국가방역사업에 협조해달라는 질본의 요청으로 2016년 JBL로부터 한 차례 주사형 백신을 수입했다. 도장형 백신을 주로 수입해왔던 한국백신은 ‘경쟁 상품’인 주사형 백신 수입을 요청받고, 국내에 공급한 셈이다. 

율촌의 이재근(사법연수원 28기) 변호사는 “코카콜라 수입 업체에 펩시를 수입해달라는 요청과도 같다”며 “2016년에 한 차례 들어줬지만 2017년에도 반드시 수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당시 질본이 확정적으로 수입을 요청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율촌은 이 상황에 대해 ‘경영상 판단’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질본의 명시적 요청이 없는 상황에서 사기업이 경쟁 상품을 수입한 뒤 법률적 의무까지 부담한 게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질본이 한국백신에 수입을 요청한 주사형 백신은 보건소에만 공급하는 ‘관수용’이었다. 주사형 백신을 수입한 뒤 질본이 구매하지 않으면 전량 폐기해야만 했다. 그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으로 전가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우선 수입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율촌은 백신 부족 사태의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질본이 대체재를 구할 수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질본은 인도, 러시아 등 다른 BCG 제조사에 접촉조차 하지 않았다. 율촌은 이를 토대로 질본이 공급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수입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 “부당 출고조절 아냐”…질본 과실 인정

1심은 율촌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질본이 공식 절차를 거친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공식적으로 요청하거나 구두·유선상으로 수입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질본 또는 실무자들은 심지어 일부러 수입에 관해 확정적 언급을 회피했다”고 덧붙였다.

출고조절 또한 인정되지 않았다. 질본이 요구한 수량만큼의 주사형 백신을 구입해 줄 것이란 보장이 없었고, 한국백신이 백신 수입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입량을 조절하려고 했던 것만으로는 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한국백신만으로는 해외에서 생산되는 BCG 백신의 생산량 자체를 조작할 수 없다”며 “한국백신이 백신에 관한 주문을 취소하면서 국내 유입 백신의 양을 조절했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출고조절 관련 법리가 거의 없음에도 무죄를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소송엔 이재근·표정률(38기) 변호사 외에도 박현아(40기), 이정윤(45기), 박영석(49기) 변호사가 함께했다.

김지환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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