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옥집 풍경. 사진 김윤수 기자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옥집 풍경. 사진 김윤수 기자

4월 18일 서울 서촌. 기자가 찾은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 이모씨는 평일 오전인데도 전화 받기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의 질문에 잠시 전화를 끊은 그는 “건물, 토지를 찾는 매수 문의가 지난주에만 수십 건이 있었다”며 “지난 3월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이 발표된 후부터 이미 매물이 급감한 반면 매수 문의는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왕산에서 서촌,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개방된 청와대, 경복궁, 북촌, 2027년 ‘이건희기증관’이 들어설 송현동까지 이어지는 역사·문화 관광벨트가 조성될 거란 기대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규제에 묶여 있는 서촌도 개발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퍼져 매수 문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이씨의 전언이다. 그는 “4월 12일 서울시가 도심 건축물 높이 해제 얘기도 했으니 앞으로 사람들의 기대가 더 커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도심 건축물 높이 제한을 풀 수 있다고 밝히자, 서촌 일대에서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곳은 서울 도심 내 다른 지역과 달리 대통령 집무실 이전 후에도 개발 가능성을 섣불리 전망할 수 없는 지역이다. 주변 경복궁과 인왕산 경관 보전(保全)을 위해 각종 개발 규제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의 발표가 나오면서 이 지역의 일부 규제 완화와 개발 가능성이 생겼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앞서 4월 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 청와대를 개방하면 청와대 주변에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핵심 도심 공간을 녹지생태 축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며 “녹지생태 도심 개념이 새로운 프로젝트가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도심의) 높이 제한을 풀고 용적률을 최대한 구현하면 공공에 기여하는 부분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 땅을 다 녹지와 나무숲으로 만들겠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될 것”이라고 했다. 

4월 18일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거리.  길가로 저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김윤수 기자
4월 18일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거리. 길가로 저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사진 김윤수 기자

주목할 부분은 도심의 건축물 높이와 용적률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점이다. 현재 건축물 높이가 15~20m로 제한된 청와대 주변 지역의 개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오 시장이 도심 개발 계획을 공식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촌은 도심 중에서도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대표적인 지역인 만큼 특히 기대를 불러 모은다. 오 시장은 ‘생태녹지 축’에 대해 구체적으로 ‘북악산→청와대→광화문광장→서울역→용산→한강’으로 이어지는 한 축과 ‘경복궁→창덕궁→종묘→한강’으로 이어지는 다른 한 축을 언급했다. 서촌은 첫 번째 축을 지나는 지역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개발 계획으로 서촌이 특히 수혜를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우선적으로 개발될 지역은 건축물을 더 높게 지을 여력이 되는 지역, 즉 종 상향(種 上向, 1·2종 일반 주거 지역을 2·3종으로 높이는 일) 이슈가 있고 용적률을 높일 수 있는 지역이 될 것”이라며 “사대문 안 도심 지역에선 서촌 등 청와대 인근 지역이 이 조건을 가장 충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청와대 인근 중에서도 한옥 수가 비교적 많고 보전 상태가 좋은 북촌보단 서촌이 보전 이슈의 영향을 덜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한옥 보전 이슈가 있긴 하지만, 이 지역 전체를 개발하는 게 아니더라도 경복궁역 인근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같은 주요 상권 위주로 부분적인 개발이 가능할 걸로 본다”고 덧붙였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개발 가치를 따져볼 때 도심 안에서 서촌이 우선 개발 지역으로 가장 유력하다”며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역세권이 형성돼 있고 주변 관광과 등산 인구를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에 개발 시 미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중층이나 고층 건물을 지으면 한강 못지않은 경복궁 조망권이 형성돼 주변 환경과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촌은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신교동, 궁정동, 옥인동, 통인동, 창성동, 누상동, 누하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동서남북 모두에 문화재나 멋진 자연경관이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 경복궁, 서쪽으로 인왕산, 남쪽으로 사직로(독립문에서 경복궁사거리까지 이어지는 대로)를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 북악산과 가깝다. 게다가 서촌엔 66~99㎡(20~30평) 규모의 한옥 600채 정도로 이뤄진 한옥마을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화재와 자연경관 보호를 위한 여러 개발 규제가 겹겹이 적용된다. 한옥마을 보호를 위한 ‘한옥보전구역’, 경복궁 경관 보전을 위한 ‘문화재보호구역’, 인왕산 경관 보전을 위한 ‘자연경관지구’ 등이다. 서촌에서도 동네에 따라 적용되는 규제의 수와 정도가 다른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지역은 건축물 높이 12~20m 제한을 받고 있다. 층수로는 3~5층 정도다.

규제를 받다 보니 주변 지역에 비해 가치도 눌려 있는 편이다. 사직로를 기준으로 북쪽(서촌)과 남쪽을 비교하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토지·건물 정보제공 업체 ‘밸류맵’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2월 사직로 북쪽,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상권인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의 한 3층짜리 상업용 건물(내자동 63-2)은 9년간 시세가 161% 오른 18억원에 매매 거래됐다. 비슷한 시기인 지난 3월, 같은 내자동이지만 사직로 남쪽에 있는 5층짜리 상업용 건물(내자동 175)은 비슷한 기간(10년간) 261% 오른 35억원에 거래됐다. 사직로 남쪽의 시세 상승 폭이 북쪽보다 더 큰 것이다.

오랫동안 개발 계획에서 소외돼온 만큼 규제 완화 기대감이 주목받는 건데, 일각에서는 서촌 개발을 두고 부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지역 특수성이 있는 만큼 개발이 쉽지 않을 거란 전망과 개발하더라도 주변 문화재와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규제 완화 가능성 자체도 크다고 보지 않는데, 개발이 이뤄진다고 해도 문화재가 출토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리스크(위험)도 있는 지역”이라며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개발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지역이 (개발되지 않고) 고착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도시 경관과 역사적 유산의 가치를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개발하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며 “서촌에서도 입지별로 사정이 많이 다를 테니 개발한다면 서울시가 지구 단위 계획을 세밀하게 짜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윤수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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