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후지마사히로 사장.이토추 홈페이지
오카후지마사히로 사장. 사진 이토추 홈페이지

‘연필부터 로켓까지’ ‘무엇이든 판다’는 일본 종합상사의 수출 경쟁력을 일컬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일본 경제 성장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종합상사는 ‘미쓰비시(三菱), 미쓰이(三井), 스미토모(住友)’ 등 세 개 기업이 수십 년간 업계 부동(不動)의 ‘빅(big) 3’ 지위를 유지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이토추(伊藤中) 상사가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면서 업계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3위 스미토모와 2위 미쓰이를 하나씩 제친 이토추는 2020년 6월 2일 시가 총액 3조7649억엔(약 30조5738억원)을 기록해 1위 미쓰비시(3조6964억엔)를 처음으로 앞지르면서 업계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2021년 3월엔 최종 이익, 주가, 시가 총액 등 세 개 분야에서 미쓰비시를 누르고 3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미쓰비시와 이토추의 엎치락뒤치락하는 1·2위 다툼은 계속되는 중이다. 일본 현지에선 이토추의 가파른 상승세를 ‘하극상(下剋上)’이라 부르며 주목하고 있다.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이하 닛케이)’는 최근 3대 재벌계 종합상사에 대적한 이토추의 하극상 전략에 대해 낱낱이 분석했다.


1│상류(上流)로 갈 수 없다면 하류를 점령하라

1980년대 버블 경제 시대 부동산·금융 등 여러 분야에 문어발식으로 손을 댔던 이토추는 거품이 꺼지면서 회사의 존폐 위기까지 겪었다. 스스로를 ‘청소부’라고 불렀던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사장이 1998년 1000여 개에 달하던 자회사를 459개 자회사와 202개 계열사로 대폭 줄이는 수술을 시행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2000년대 들어서도 멕시코만 석유, 미국 셰일가스 개발 등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막대한 손해를 입고 손을 뗐다. 직원들 사기가 떨어져 회사 내부에도 패배감이 드리워졌다. 이런 분위기가 쇄신된 것은 현 오카후지 마사히로(岡藤正廣) 사장이 2010년 취임하면서부터다.

오카후지 사장은 자원·에너지 비즈니스에선 자금력이 큰 재벌계 빅 3와 경쟁해 이길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자원 비즈니스는 외부 환경에 의해 가격이 급변동하는 위험까지 안고 있었다. 오카후지 사장은 대신 ‘비(非)자원 비즈니스 넘버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1858년 이토 추베이(伊藤中兵衛)가 설립한 이토추는 원래 섬유 상사로 시작했다. 회사 DNA를 살려 해외 브랜드 독점 수입 판매, 브랜드 인수 등 독자적 제품 개발과 판매로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갔다. 그 외 각종 생활소비재 분야를 집중 공략해 경쟁 업체들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강한 분야에서 수익을 확대해 벌어들이고(稼ぐ·카세구), 경쟁력 없는 무의미한 분야에 쓸 비용을 절감하며(削る·케주루), 손실을 방지한다(防ぐ·후세구)는 ‘카케후’ 전략이다.

오카후지 사장은 ‘닛케이’와 인터뷰에서 “종합상사는 이를 테면 강 상류와 하류를 모두 아우르는 회사다. 자원 조달 같은 (큰) 비즈니스를 상류, 밀가루 등 생활소비재를 하류로 친다면, 빅 3는 상류에서 활약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하류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2│공격적인 군(群) 전략으로 디지털 전환 대비

이토추는 3월 28일 신제품 ‘툴리스(TULLY’S) 커피: 맛차가 맛있는 맛차 라테’를 발매하면서 ‘푸드 데이터(FOODATA)’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푸드 데이터는 미각 실험 데이터와 소셜미디어(SNS) 등 소비자 반응, 판매량 등을 종합 분석하는 이토추의 개발 프로그램이다. 온·오프라인의 데이터를 수집·종합해 제품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따른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 데이터 분석뿐 아니라 이토추는 IT 시스템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월엔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이토추상사 도쿄 본사’를 오픈, 이토추 입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아바타를 이용해 메타버스 속 회사를 견학하고 현직 사원들 및 입사 내정자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 전환(DT·Digital Transformation) 부문에서의 경쟁력은 이토추가 경쟁자들을 이긴 비결 중 하나다. 이토추는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크고 작은 정보·통신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합병했다. 군소 업체를 산하에 두는 이른바 ‘군(群) 전략’이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전략으로 유명하다. 

이토추의 호리우치 마사토(堀內眞人) 정보·통신 부문장 대행은 ‘닛케이’에 “소프트뱅크의 군 전략이 (다방면에서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토추의 군 전략은 디지털 전환을 희망하는 고객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3월 기준 이토추가 디지털 전환을 위해 인수합병한 기업(정보·통신·금융·보험)에서 난 이익은 1000억엔(약 9490억원)에 달한다.


3│아침형 근무로 야근 문화 없애

오카후지 사장이 사장 자리에 올랐을 2010년 무렵 이토추도 다른 종합상사들처럼 야근 문화가 당연시되던 회사였다. 하지만 전후(戰後) 세대의 ‘헝그리 정신’이 없는 젊은 사원들에게 ‘남들보다 몇 배 더 일하라’는 과거의 모토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엘리트 사원들의 사직이 이어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오카후지 사장은 오후 8시 이후 근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오전 8시 출근을 권장하는 ‘아침형 근무 체제’를 도입했다. 그래도 굳어진 근무 습관이 달라지지 않자, 아침 근무에 1.5배 특근 수당을 지급하고 조식을 제공해 뿌리 깊은 야근 문화를 바꿔나갔다. 업무 효율화를 위해 회의 시간도 40% 단축하고, 회의 자료 두께도 절반으로 줄였다. 아침형 근무가 자리 잡은 2014년 5월부터는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려는 직원을 태우기 위해 밤마다 본사 건물 앞에 길게 늘어섰던 택시 행렬이 사라졌다.

지금도 이토추의 변신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중 하나가 ‘훼미리마트의 미디어화’다. 이토추가 자회사로 갖고 있는 일본 대표 편의점 프랜차이즈 훼미리마트의 매장마다 계산대 위에 세 개의 대형 전광판을 설치해 이토추 기업·제품 광고와 함께 엔터테인먼트·뉴스도 제공해 제3의 미디어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광고와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를 함께 노리기 위한 전략이다.

오카후지 사장은 ‘닛케이’ 인터뷰에서 이토추의 끊임없는 변신 노력에 대해 “달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오래 감상하려고 하면 구름에 가리고, 꽃이 아름다워 바라보고 있으면 바람에 꽃잎이 날려버린다. 이처럼 모든 게 영원하지 않다. 우리의 현재 상승세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거목은 비나 바람 때문에 쓰러지는 게 아니라, 심지가 썩어서 쓰러지는 것”이라면서 “지금은 자만심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plus point

일본 종합상사에 투자해 대박 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워런 버핏. 사진 트위터
워런 버핏. 사진 트위터

세계 주식시장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으로 휘청거렸던 2020년 8월 31일 워런 버핏(Warren Buffett)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회장은 “지난 12개월 동안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을 5%씩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쓰비시, 이토추, 미쓰이, 스미토모, 마루베니 등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을 5.02~5.06%씩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버핏이 일본 상장사에 투자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버핏의 이례적 결정은 전 세계 투자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원자재 가락이 하락하던 시기였고, 이토추를 제외하면 자원이 주된 수익원인 일본 종합상사의 수익과 주가는 모두 부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버핏이 투자한 지 불과 1년 8개월 만에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세로 전환하면서 버핏은 역시 ‘투자의 귀재’라는 사실을 재입증했다. 2020년 8월 말 640~2724엔이었던 5대 종합상사 주가는 2022년 4월 말 기준 1396~4304엔으로 껑충 뛰었다. 5대 종합상사 투자분의 평가 금액은 1조1369억엔(약 10조8090억원)으로, 6700억엔(약 6조3620억원)을 투자한 버핏은 1년 8개월 만에 거의 두 배를 벌어들였다.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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