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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길을 사이에 두고 하나의 단지로 묶인 아파트 동들이 각각 따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을까. ‘분리 재건축’ 여부를 두고 3년째 소송을 벌인 서울 여의도동 광장아파트는 동을 분리해 따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5월 11일 2심 재판부가 원심을 깨고 분리 재건축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폭 25m의 여의나루길을 사이에 두고 나뉜 서울 여의도동 광장아파트.1·2동 측에서 3~11동을 바라본 모습. 사진 김민정 기자
폭 25m의 여의나루길을 사이에 두고 나뉜 서울 여의도동 광장아파트.1·2동 측에서 3~11동을 바라본 모습. 사진 김민정 기자

1978년 준공된 광장아파트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인 폭 25m의 여의나루길을 사이에 두고 1·2동과 3~11동을 분리해 재건축할 예정이다.

광장아파트가 처음부터 분리 재건축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2009년 7월 광장아파트 소유주들은 아파트 전체에 대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2017년 1월 영등포구청으로부터 승인받았다. 그러나 통합·분리 재건축 방식과 신탁 사업자 선정, 용적률 등을 두고 1·2동과 3~11동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아파트 전체 추진위원회는 해산됐다.

아파트 재건축에 대한 목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3~11동 소유주들은 2018년 6월 14일 국토부의 안전진단 결과 D등급으로 통과되자 재건축에 시동을 걸었다. 반면 1·2동은 2018년 6월 19일 안전진단에서 C등급 판정을 받아 재건축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사라졌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3월 5일부터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후 3~11동 소유주들은 1·2동과 분리해 사업 시행자로 한국자산신탁을 지정하면서 독자적으로 재건축을 진행해나갔다. 이에 1·2동 소유주들은 ‘함께 재건축해야 한다’면서 사업에 제동을 걸었고,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통합 재건축’을 주장한 1·2동 소유주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법무법인 광장이 항소심에서 피고 측 대리인으로 신규 선임되고, 재판부 판단이 뒤집히면서 분리 재건축을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태생부터 다른’ 두 단지…대법원 판례로 맞선 광장

두 단지는 안전진단 기준 통과를 두고 희비가 엇갈렸지만, 분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용적률부터 다르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광장아파트 3~11동은 용적률이 180%로, 1·2동(220%)에 비해 용적률이 낮다. 용적률이 낮을수록 사업성이 좋아 재건축하면 일반분양 물량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사업성이 높을수록 소유주들의 분담금 부담도 줄어든다.

항소심부터 소송에 참여한 광장 장찬익(사법연수원 23기) 변호사와 유동규(31기) 변호사, 문동효(46기) 변호사는 1·2동과 3~11동이 지어질 때부터 용적률과 사업계획 승인 시점 등이 달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분리 재건축의 적법성 여부는 아파트 ‘태생의 기준’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에 달려 있다. 광장아파트 시행사 삼익주택은 1977년 9월 분양 시 아파트 전체를 대상으로 동·호수를 추첨했다. 당시 삼익주택은 두 단지에 대한 분양공고를 동시에 냈다. 1·2동을 대리(법무법인 지평)한 변호인들은 아파트 태생의 기준을 분양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광장은 1·2동의 사업계획 승인 시점이 1977년 7월이고, 3~11동는 1977년 8월로 상이하다고 주장했다.

광장은 아파트 태생의 기준을 최초 행정청의 주택사업계획 승인 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로 맞섰다. 해당 판례는 이번 소송의 주축이 된 장찬익 변호사가 처음으로 이끌어 낸 판결이다. 장 변호사는 과거 주택건설촉진법 시절 재건축사업 시 분리 재건축 쟁점에서 ‘하나의 주택단지’ 개념과 관련해 대법원판결을 도출한 바 있다. 광장은 1·2동과 3~11동의 △사업계획 승인 시점 △준공 시점 △대지권 범위 △보존 등기 △대지권 등기 시점이 모두 상이한 점을 짚었다.

결국 2심의 서울고등법원 제11 행정부(배준현·이은혜·배정현 부장판사)는 “1·2동과 3~11동 아파트는 각각 독립적으로 도시정비법 제2조 제7호 가목에 따른 주택단지에 해당할 뿐”이라며 “두 단지가 동시에 분양 공고됐다거나 공동으로 관리돼 온 사정 등만으로는 이 사건 아파트가 하나의 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건설되거나 조성된 주택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주차장·놀이터 ‘공동 관리’ 주장 맞서 “등기부등본 전수조사”

소송의 쟁점은 광장아파트의 두 단지를 하나의 ‘주택단지’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도시정비법 제2조 제7호의 가목과 다목에 대한 해석이 1심과 2심 판결 결과를 갈랐다.

도시정비법 제2조 제7호 가목은 ‘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주택을 건설한 일단의 토지로 독립적인 정비 사업이 가능한 하나의 주택단지’로 규정한다. 다목은 ‘가목에 따른 일단의 토지 둘 이상이 공동으로 관리되고 있는 경우 그 전체 토지’를 하나의 주택단지로 본다는 규정이다.

앞서 1·2동 소유주들의 손을 들어준 1심의 서울행정법원 제11 행정부(박형순 부장판사)는 광장아파트를 두고 “사회·문화적, 즉 대외적으로도 하나의 주택단지로서 인식돼 왔다고 판단된다”고 봤다. 도시정비법 제2조 제7호 다목에 따라 광장아파트 두 단지가 하나의 주택단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통합 재건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었다. 도시정비법 제2조 제7호 체계상 ‘다목’이 ‘가목’에 우선한다고 보기 어려운, 동등한 지위를 가진 병렬적 조항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토지 등 소유자들의 의사에 따라 분리·통합 재건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봤다.

소송에서 1·2동 소유주들은 아파트 전체가 하나의 입주자대표회의를 구성해 ‘공동 관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차장이나 놀이터, 기계실, 전기실 등을 아파트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데, 재건축을 따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동 관리되는 사항들이 있는데 분리 재건축할 경우 1·2동 소유주들의 대지사용권 및 지분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광장 변호사들은 3~11동 등기부등본 전수조사에 나섰다. 3~11동 등기부등본 어디에도 1·2동의 권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1·2동 소유자들이 공용 부분에 대한 지분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집합건물법 규약상 공용 부분에 대한 등기가 돼야 하지만, 해당 취지의 등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여의도동 일대 재건축 사업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광장아파트는 이미 재건축 기준 연한인 30년을 훌쩍 넘겼다. 최근 서울시는 여의도 노후 단지들의 재건축을 위해 준주거지역 또는 상업지역으로의 종상향과 최고 50~60층에 이르는 고층 개발을 예고했다.

유동규 변호사는 “통합 재건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1심 판결 이후 아파트 조합들이 긴장했지만, 2심 판결로 공동 관리해온 아파트도 각 단지의 태생이 다르면 분리 재건축할 길이 열렸다”면서 “특히 신탁 방식을 선택한 여의도동 일대 재건축 사업이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