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 증류주협회 회장 서울대 농화학과, 현 오미나라 대표,  전 디아지오코리아 전 부사장 사진 박순욱 기자
이종기 증류주협회 회장 서울대 농화학과, 현 오미나라 대표, 전 디아지오코리아 전 부사장 사진 박순욱 기자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증류주, 즉 소주는 조선을 거치면서 ‘고급술의 대명사’로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농산물로 술 빚기를 금지하면서 외국산 주정에 물 탄 희석식 소주가 전통 소주의 자리를 차지해버렸습니다.”

이종기 증류주협회 회장은 “증류주와 관련된 사람들이 힘을 합쳐, 증류주 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잃어버린 ‘소주=고급술’의 명성을 되찾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결성된 증류주협회가 회원 모집에 적극 나서는 등 정중동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 가입 자격을 ‘증류주 생산업체’로 규정한 정관을 고쳐, 증류주 연구기관, 학계, 유통업계, 증류주에 관심 있는 개인에게까지 문호(회원 가입)를 개방할 방침이다. 2020년 3월에 발기 총회를 가진 증류주협회는 코로나19 영향으로 2년여 동안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증류주 전문가다. 40년 넘게 주류업계 현역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숱하게 증류주를 만들어왔다. 윈저, 골든블루 등 국내 위스키 브랜드는 물론 오미자 증류주 ‘고운달’, 사과 증류주 ‘문경바람’,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를 만들었다. 경북 문경에 있는 지역특산주 양조장 ‘오미나라’ 대표도 맡고 있다. 샴페인 공법으로 2년 이상을 숙성시켜 만든 ‘오미로제 결’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때 만찬 식전주로 선정됐다. 이 회장은 오미나라 양조장에서 기자를 만나, “지역특산주 원료 조달 지역 확대, 지역특산주인 일반 증류주의 종량세 전환 등 앞으로 협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오미나라에서 만든 증류주 ‘고운달’과 ‘문경바람’이 소형 증류기 앞에 나란히 진열돼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오미나라에서 만든 증류주 ‘고운달’과 ‘문경바람’이 소형 증류기 앞에 나란히 진열돼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증류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은 몇 개가 되나.
“최소한 수백 개에 이를 것으로 본다. 정확한 통계를 알지 못한다. 특히, 최근 5년 사이에 굉장히 많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2년 전 증류주협회 발기 총회 때 회원 수는 25개에 불과했다. 협회의 시급한 현안이, 회원 수를 최소한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회원이 일단 50개가 넘어서면 그다음부터는 좀 쉽게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쯤 되면 농림축산식품부에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할 작정이다. 

우선 정관부터 일부 수정할 방침이다. 처음 정관을 만들 때, ‘한국 농산물로 증류주를 생산하는 업체’만 가입하도록 했다. 증류주 생산자에게만 회원 자격을 준 것은 확장성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증류주협회가 발전하려면, 증류주를 연구하는 기관이나 단체, 학계도 필요하고, 또 술을 보급하는 유통업체들에도 문호를 개방해서 그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증류주는 현재 우리나라의 어떤 주종보다도 향후 발전성이 높은 술이다.”

지역특산주의 원료 조달 지역을 확대해달라는 건의도 할 것인가.
“그렇다. 지역특산주 원료 조달 지역을 현행 기초자치단체에서 광역자치단체로 확대해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다.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지역특산주는 양조장이 위치한 관할 기초자치단체와 인접 지역에서만 주원료를 조달하게 돼 있다. 가령,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양조장은 같은 경기도 내 파주나 양평의 농산물을 술 원료로 쓰지 못한다. 그런데, 농산물은 기후 리스크가 매년 있다. 가령, 사과는 화상병이 퍼지면 해당 지역 사과 수확량은 급격히 줄어든다. 그런데 해당 지역의 사과 수확이 안 좋아도 지역특산주 규정상, 다른 지역산 사과는 쓸 수가 없다. 또, 양조 능력은 있는데, 해당 지역 안에는 술 원료가 없고, 다소 떨어진 군에는 원료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도 원료를 조달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특산주 원료 조달 지역 범위를 광역자치단체로 확대했으면 좋겠다.”

현재 전통주로 분류되는 증류주는 종가세를 적용받아, 세금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당연히 종량세 전환이 바람직하다. 외국산 원료를 쓰는 막걸리, 맥주는 세금 비중이 낮은 종량세로 바꿔주고 국산 농산물을 100% 쓰는 지역특산주 증류주는 여전히 종가세를 적용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수입쌀로 만든 막걸리, 외국산인 맥아와 홉으로 만든 맥주가 국내 농산물 소비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나.
“정부는 증류주를 종량세로 바꾸면 위스키 같은 외국 술도 같은 혜택을 줘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에도 지역특산주, 민속주 같은 전통주에는 예외적인 세금 혜택 조항이 있다. 우리의 주장은 희석식 소주를 포함한 증류주 전체를 종량세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고, 주세법상 전통주로 분류되는 증류주만 우선 종량세로 바꿔 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희석식 소주, 외국산 술들은 여전히 종가세 적용을 받아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주세율 감면이 적용되는 전통주 출고량을 제한하는 주세법 시행령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은.
“현행 주세법 시행령에는 ‘전통주로서 일반 증류주의 경우 연간 100kL(킬로리터)까지 출고할 경우, 주세를 50% 감면한다’고 돼 있다. 주세를 50% 깎아준다는 것은 양조장 입장에서는 엄청난 혜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양조장이 연간 판매량을 100kL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연간 출고량은 100kL로 제한하면서 알코올 농도 기준은 아예 누락돼 있다는 점이다. 금을 예로 들어보자. 같은 금 한 돈이라도, 14K 한 돈과 24K 한 돈은 전혀 가치가 다르지 않나? 순도가 다르기 때문에 값어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술도 마찬가지다. 알코올 도수 40도 술과 20도 술은 다른 술이다. 그런데도, 주세법에 술 판매량을 제한하면서 그 기준이 되는 알코올 도수를 표기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국은 우리와 다르다. 미국은 2017년에 제정된 소규모 증류소 감세법안에 판매량, 알코올 농도 둘 다 표시(10만 프루프 갤런)돼 있다. 프루프는 알코올 농도 50%를 의미한다. 우리 식으로 표시하면, 알코올 농도 100% 기준, 18만9270L다. 그래서 우리 주세법에도 주세 감면 혜택을 주는 증류주 출고량 제한을 ‘100kL(알코올 농도 100% 기준)’으로 수정했으면 한다. 양(100kL)은 물론 알코올 도수 기준(100%)까지 표기함으로써, 증류주 생산업체들이 자율적으로 다양한 도수의 증류주를 만들도록 하자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판매량이 종전보다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