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진 조선일보 DB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진 조선일보 DB


항공사와 여행사는 사실상 ‘갑을’ 관계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장거리 노선 항공기 좌석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반면, 1000개가 넘는 여행사들은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권이 없으면 여행업이 굴러갈 수 없으니 여행사는 ‘을’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패키지여행을 구성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항공권’을 놓고 불거진 항공사·여행사 간의 갈등은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됐다. 여행사들이 항공권 판매를 대리하면서 챙기는 일정 수수료를 대한항공이 지급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대한항공의 결정은 전 세계 120개국, 약 290개 항공사가 가입된 국제 항공사 단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약관 변경이 배경이 됐다.

이후 여행사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여행사들은 영업상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타격을 입으면서 줄줄이 도산하게 됐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한국여행업협회는 칼을 뽑아 들었다. 협회는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손잡고 IATA를 상대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여행사 수수료를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조항’은 불공정하다고 심사를 청구했다. 한국여행업협회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인터파크 등 1140개 여행사 회원들이 가입한 단체다.

공정위는 여행사의 손을 들어줬다. 6월 30일 IATA에 시정명령을 부과한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IATA의 수수료 결정 조항에 제동을 건 최초 사례다. 한국 공정위의 조치에 전 세계 여행사들은 환호하는 분위기다.


여행사 줄줄이 문 닫아…“항공사의 일방적 ‘갑질 조항’ 고쳐야”

전 세계 항공사들이 뭉친 IATA는 여행사들을 상대로 항공권 대리점 계약을 맺으면서 항공사가 여행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기타 보수를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기존에는 IATA가 여행사에 9%의 고정 수수료율을 부과했었다. 항공사들이 판매 대리 수수료율을 일률적으로 정하면 카르텔에 해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별 항공사들은 ‘수수료 자율화’를 명목으로 여행사에 주던 수수료를 아예 폐지했다.

이로 인해 여행사들은 수수료 폐지 전과 동일한 일을 하고도 항공사로부터 ‘0원’을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항공권 판매 통합 정산 시스템(BSP)을 이용하는 국내 여행사 수는 10년 동안 1000여 개에서 599개로 급격히 감소했다. 이 시스템은 IATA 회원 항공사들이 IATA 대리점 여행사들과 개별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도 거래할 수 있도록 해줬다.

여행사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IATA 측(김앤장 법률사무소 대리)은 수수료 폐지 결정이 정당하다며 ‘여객 판매 대리점 계약 내용’을 제시했다. 여행사에 지급될 수수료를 항공사가 아닌, 항공권 구매자들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IATA 측은 수수료를 안 주는 대신, 인센티브를 지급하기 때문에 정당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본급과 성과급을 나눠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로 판매 장려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여행업협회를 대리한 대륙아주 변호사들은 기본급에 해당하는 발권 대행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기존에 지급해오던 인센티브를 준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갑질’이라고 맞섰다.

대륙아주 변호사들은 애초에 항공사와 여행사 간 맺어진 계약이 불공정하다고 강조했다. 항공사들이 발권 대행 수수료율을 여행사와 합의해 정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지영(39·사법연수원 40기) 대륙아주 변호사는 “약관 계약을 바꿀 때 항공사들이 참석하는 회의체에서 결정된다”면서 “항공사가 수수료를 포함한 약관 조항을 만장일치로 의결하는 과정에서 여행사에는 협의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IATA가 여행사들 동의 없이 임의대로 변경·수정한 약관도 양측이 서명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조항도 있어, 이는 약관법 제6·10조 등에 근거해 ‘불공정한 약관 조항’에 해당한다고 봤다.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조항들은 무효라고 주장한 것이다.

약관법 제6조 1항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해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은 무효이며, 약관법 10조 1항은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채무자의 행위)의 내용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은 무효라고 규정했다.

항공사와 여행사 간 거래 조건은 여객 판매 대리점 계약에 첨부된 ‘여행사 핸드북 결의’에 따라 정해진다. 구체적으로는 ‘항공사가 여행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등 기타 보수를 BSP를 사용하는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정한 규정’이 문제가 됐다.

대륙아주는 ‘여행사 핸드북 결의’ 약관 조항 총 10개를 들어 약관법 위반 적용 조문을 분석해 제시했다. 공정위는 IATA의 일방적 수수료 결정 조항 등이 ‘불공정하다’고 결론 내렸다.


1년간 만반의 준비한 대륙아주…“세계 최초로 IATA 상대로 조치”

공정위에 심사 청구를 준비하면서 대륙아주는 IATA에 시정명령이 내려질 경우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토를 거쳤다.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려도 IATA가 따를 이유가 없다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륙아주 변호사들은 계약서를 꼼꼼하게 검토해 ‘여객 판매 대리점은 개별 국가법에 우선하는 효력이 없으며, 특정 국가의 적용 가능한 법규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법규가 우선적으로 적용’된다는 조항을 무기로 삼았다. 또한 ‘여행사 핸드북 결의에 일부 언급된 지역 또는 국가에 적용되는 것으로 명기된 경우에는 해당 지역 또는 국가에만 적용된다’는 조항을 찾아냈다.

우리나라 정부가 IATA의 약관 조항이 법적으로 무효라고 인정하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해당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공정위도 해당 조항을 통해 실효성 있는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보고 조처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만 IATA의 수수료 폐지 조치에 반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EU)과 인도 등에서도 여행사들이 수수료 지급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IATA의 약관 조항을 문제 삼고 시정 조치를 한 것은 우리 정부가 최초다.

대륙아주 변호사들은 항공사와 여행사 거래 구조를 파악하고, 수수료 폐지 경과 등을 파헤치면서 사실관계를 캐내는 데 집중했다. 통상 신고서를 제출하면 상대측에서 반박이 들어와 재항변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대륙아주 변호사들은 신고서를 접수하면서 상대방이 주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본안 전 항변부터 약관법 위반에 해당하는 조항 등을 세밀하게 밝혀 제시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이승익(33·변호사시험 6회) 대륙아주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전 세계 최초로 국제 항공권 판매 대리를 둘러싼 불공정 사태를 시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선제적인 결정을 내린 만큼 다른 나라도 참고해 여행사 편에서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민정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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