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9월 4~6일 서울 삼성동 Place1빌딩 내 CLUB1 PB센터 지하 1층 전시관에서 ‘하나 프라이빗아트 페어(Hana Private Art Fair)-대화의 순간(#2 The Moment of Dialogue)’을 개최했다. 사진 하나은행
하나은행이 9월 4~6일 서울 삼성동 Place1빌딩 내 CLUB1 PB센터 지하 1층 전시관에서 ‘하나 프라이빗아트 페어(Hana Private Art Fair)-대화의 순간(#2 The Moment of Dialogue)’을 개최했다. 사진 하나은행

하나은행이 예술품 투자에 관심을 가진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예술품에 투자하는 신탁 상품 개발에 이어 최근에는 서울 을지로에 보유 중인 ‘알짜 건물’ 한 동을 개조해 미술품 보관·전시 공간으로 만들며 ‘아트뱅킹(Art banking·예술과 은행의 합성어)’ 시장 선점에 나섰다.


을지로 소유 건물 통째로 ‘수장고’로 리모델링…예술품 투자 신탁 상품도 개발

하나은행은 이르면 10월 서울 을지로에 국내 은행 중 최초로 ‘개방형 수장고(收藏庫)’를 선보일 예정이다. 수장고는 값진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를 뜻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수장고 서비스에 대한 일종의 수수료를 받지만 이에 따른 직접적 이윤 창출보다는 고가의 예술품을 보유한 고객들의 자산 관리를 위해 이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개방형 수장고는 서울 을지로3가와 4가 사이에 있는 하나은행 소유의 건물에 들어선다. 하나은행은 영업지점으로 쓰던 이 건물을 통째로 개조해 수장고 외에도 개인 전시 공간과 미술품 투자 자문을 하는 전문 상담사와 직원 등이 상주하는 업무 공간 등을 둘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수장고 설립을 통해 앞으로 예술품과 연계된 은행 서비스, 이른바 아트뱅킹 사업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투자 자문과 거래 업무 대행 등 여러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김기석 하나은행 자산관리그룹 부행장은 이미 미술품 투자와 관련한 금융 상품 개발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나은행은 자산가들이 고가의 미술품에 공동으로 투자할 수 있는 ‘하나 파인아트(Fine Art) 신탁’ 출시를 준비 중이다. 미술품 신탁이란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큰 작품을 선정해 투자자를 모으고 운용해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다. 은행은 미술품을 신탁 재산으로 수탁하고, 투자자를 모집해 신탁수익증권(전자증권)을 발행하게 된다.

은행이 미술품 신탁 상품을 출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해외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하나은행의 투자 리스트에 올라온 상태다. 하나은행은 일본의 네오팝아티스트인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을 비롯한 복수의 미술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분할 판매할 계획이다. 신탁 기간이 끝나면 경매 등을 통해 작품 판매 수익을 배분한다. 

김기석 부행장은 “최근 ‘미술품 조각 투자’ 시장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감정가가 높은 미술품을 개인 투자자들이 ‘조각’ 단위로 매매하는 새로운 대체 투자 방식이다. 하나은행은 8월 미술품 조각 투자 플랫폼 기업인 ‘테사(TESSA)’와 업무 협약을 맺고, 아트뱅킹과 관련된 신규 사업을 발굴하기로 했다.

9월 4일~6일 서울 삼성동 하나은행 플레이스원(Place1)빌딩 내 클럽원(CLUB1) PB센터 지하 1층 전시관에서 아트 컬렉션에 관심 있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나 프라이빗 아트 페어(Hana Private Art Fair)’도 열었다. 이곳에서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 엔젤 오테로(Angel Otero), 이우환,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조지 콘도(George Condo),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등 국내외 미술 거장 10명과 권순영, 오연진, 스타스키 브리네스(Starsky Brines), 임현희, 장파, 지희킴 등 젊은 현대 미술 작가 11명의 작품 50여 점을 선보였다.

이 밖에도 최근 서울 압구정동 ‘압구정 상속증여전문PB센터’ 한 층을 영리치·문화 예술 공간으로 개조했다. 하나은행은 미술품 경매 기업 서울옥션과도 협업해 은행 PB 고객들을 위한 미술 전시회 개최, 유명 미술 작가와 만남,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아트 뱅킹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하나 프라이빗 아트 페어에 전시된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작품. 사진 하나은행
하나 프라이빗 아트 페어에 전시된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작품. 사진 하나은행

성장 한계 금융사들, ‘아트테크’에 눈 돌려

하나은행이 예술품 관련 금융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의 경영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하나은행을 포함한 1금융권 은행들은 경기 침체 우려와 정부의 규제 등 여러 경영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빠르게 냉각되면서,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주택담보대출 부문에서의 실적 악화 우려도 커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기에 민감한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성장 중인 예술품 관련 시장이 새로운 수익처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이다.

자산 시장이 커지면서 미술품 투자를 비롯한 ‘아트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진 영향도 크다. ‘아트테크’란 아트(Art)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미술품, 전시, 음악 저작권 등에 투자해 자산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시장에서는 다양한 미술품 투자 플랫폼 서비스도 생겨나고 있다. ‘소투’ ‘아트투게더’ ‘아트앤가이드’ ‘테사’ 등이 현재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시장에 진입해 있다. 플랫폼 기업이 공동 소유의 미술품을 수장고에 보관하며 재판매해 수익을 나누는 서비스다. 

실제 미술품 대체 투자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 오고 있다. 한국 씨티은행이 발간한 ‘2021 미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1985년부터 2020년까지 장기 투자 자산들의 연평균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현대 미술품이 사모펀드 다음으로 높은 11.5%의 수익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미술 시장(화랑·경매·아트페어)의 몸집도 커지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3000~4000억원 규모를 유지해온 한국 미술 시장은 지난해 9157억원 규모로 급성장해, ‘1조원 시대’ 개막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온라인을 통한 미술 작품 구매의 편의성을 습득한 컬렉터가 늘고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하면서 한국 미술품 경매 시장이 급성장한 영향이다. 이런 미술품 투자 열기가 올해도 국내 아트 페어 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미술 시장 분석업계의 진단이다.

특히 고연령층과 전통 부자들이 주로 부동산 투자를 통해 부(富)를 일군 반면 최근 젊은층은 예술품을 비롯한 여러 대체 투자 자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금융사들이 지금 예술품 관련 시장에 투자해 연령대가 낮은 소비자들을 붙드는 데 성공할 경우 장기적인 성장 발판을 새로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정보기술(IT) 업종 등에서 창업해 성공하거나 가상자산, 주식 투자로 자산을 쌓은 ‘영리치(Young Rich)’ 가운데 미술품 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많다”며 “하나은행 외에도 아트뱅킹에 대한 투자에 나설 금융사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