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 사업은 해당 지역의 무주택 거주민이 조합을 설립해 토지를 매입하고 아파트를 건설하는 주택 매매 방식이다. 쉽게 말해 ‘아파트 공동구매’라고 할 수 있다. 시행사나 건설사 대신 주택 수요자가 시행 주체가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다는 것도 지역주택조합이 가진 큰 매력 중 하나다.

그러나 지역주택조합은 장점만큼이나 위험성과 부정적 이미지도 강하다. 토지를 목표치(95% 이상)만큼 매입하기가 어려워 도중에 무산될 위험이 크다. 건축 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일도 다반사다. 관련법이나 제도가 완전히 갖춰지지 못했다는 점도 지역주택조합의 사업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장애 요소다. 주택법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세부 조항에는 여전히 빈틈이나 모호한 부분이 많다.

‘스카이59(가칭)’도 관련법의 해석 문제가 건설 무산 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스카이59는 경기 의정부 녹양역세권에 들어설 59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다. 2017년 조합원을 모집할 때부터 의정부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주목받았지만, 토지주와 조합 간 소송전이 장장 5년간 계속됐다.

2022년 7월, 대법원은 스카이59 지역주택조합원들이 토지주 원흥주택건설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냈다. 스카이59를 좌초위기에서 살린 구원투수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송우철(사법연수원 16기)·범현(연수원 30기)·최기훈(연수원 41기) 변호사였다. 송 변호사는 23년 넘게 판사로 재직한 베테랑이며, 범 변호사는 2001년 태평양에 입사한 이래 건설·부동산 분야에서 활약해왔다. 최 변호사 역시 지난 10년간 건설 및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경력을 쌓았다.

태평양은 1심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조합을 대리해 2심부터 뛰어들었다. 2심 각하와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쳐 2022년 2월 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어 7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함으로써 기나긴 법적 분쟁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토지 매도인 “고층부 일반 분양해야” 소유권 이전 거부

지역주택조합원은 주택을 보유하지 않은 동일 시·군 거주자여야 한다. 조합원 사이의 구심점이 없다 보니, 통상 시행대행사가 추진위원회를 꾸려 토지를 물색한 뒤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나서 조합원을 모집한다. 토지조차 없는 단계에서는 돈을 내고 조합에 가입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추진위를 구성하는 조합장과 이사 및 감사는 시행대행사 측에서 선임하는 것이 관례다. 추진위는 토지 매매 대금 일부를 계약금으로 지급한 뒤, 조합원을 모아 잔금을 치른다. 토지의 소유권은 이때 조합 측에 이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카이59 지역주택조합에는 이례적으로 원 토지주 원흥주택건설이 참여했다. 시행대행사뿐 아니라 토지 매도인까지 추진위에 들어가 아파트 건설을 추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갈등이 시작됐다. 원흥주택건설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원흥주택건설은 스카이59의 저층부를 조합원에게 분양하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은 고층부를 일반 분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야 사업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원흥주택건설은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추진위와 이미 합의를 끝냈다고 주장했지만, 추진위는 그런 합의를 한 적이 없다며 반박했다. 결국 원흥주택건설은 추진위가 합의를 위반했다며 토지 소유권 이전을 거부했다. 추진위는 이미 조합원 1000명을 모아놨고 그들로부터 돈까지 받은 뒤였다. 이에 원흥주택건설을 상대로 소유권 이전 등기 및 토지 사용 승낙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토지 매매 대금만 2114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소송전이 시작된 것이다.


‘추진위=조합’ 증명이 첫 단추…종중 유사 단체 관련법 유추 적용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소송을 각하했다.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을 모두 모아 창립총회를 열어야만 조합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는데, 창립총회가 소 제기 후에 개최됐기 때문에(추진위 상태에 머물렀기 때문에) 소송 당사자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태평양은 2심 재판부터 합류해 각하는 불합리하니 본안에 대해 판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승소를 위한 첫 단추는 원고의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자격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태평양은 과거 추진위가 체결했던 토지 매매 약정의 효력을 원고인 조합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핵심은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한 추진위와 창립총회를 통해 결성된 조합을 ‘같은 단체’로 볼 수 있느냐였다. 처음에는 추진위로 시작했지만, 조합원을 계속 받아 조직을 확대한 뒤 조합이라는 정체성을 새로 얻은 것이며, 따라서 두 단체를 동일한 단체로 봐야 한다는 게 태평양 측 주장이었다.

2심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지역주택조합의 추진위는 조합과 별개의 단체이며 행위가 승계되려면 3자(추진위·매도인·조합)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즉, 별도의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추진위와 조합은 다른 단체이며, 추진위가 체결했던 토지 매매 약정의 효력을 조합이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태평양은 포기하지 않고 항소해 종중 유사 단체 관련 법률을 준용했다. 종중 유사 단체란 공동 선조의 후손 중 특정 지역 거주자나 특정한 범위에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조직체다.

최 변호사는 “종중도 어느 날 갑자기 모여서 ‘우리 오늘부터 종중 하자’고 합의해 결성되는 조직이 아니라 몇 명씩 모이다 차츰 구성원이 늘어나듯, 지역주택조합도 사업 특성상 소수(추진위)가 먼저 모인 뒤 점점 확대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유사 종중과 마찬가지로 지역주택조합도 당사자 능력을 갖춘 단체로 발전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그 과정에서 한 행위의 법적 효력을 전부 부인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대법원은 파기 환송을 결정했다. 원고 측 주장을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층부 일반 분양, 그렇게 중요한데 계약서엔 왜 안 썼나”

대법원의 파기 환송으로 기회를 얻은 태평양은 이제 토지 매매 계약 해제의 성립 불가를 입증해야 했다. 원흥주택건설은 “원고가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해제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계약금 지급과 토지 사용 승낙이 동시에 이행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태평양은 애초에 양측이 계약금 지급 자체를 합의한 적이 없으며, 원고가 필요로 하는 시점에 원흥주택건설이 토지 사용 승낙을 먼저 해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내용은 매매계약서에 기재돼 있었다.

태평양은 원흥주택건설 측 주장을 비틀었다. 애초에 원흥주택건설 쪽에서 토지 사용 승낙을 거부했기 때문에 계약금 지급과 ‘동시 이행’ 의무가 무효화됐다고 주장했다. 즉, 동시 이행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해제도 불가능하며, 따라서 토지 사용을 승낙할 의무가 있다고 재판부를 설득했다.

치열한 법리적 공방이 오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이 사건의 ‘최초의 원인’을 따지는 것이었다. 원고의 주장대로 양측이 고층부를 일반 분양하는 데 합의했느냐가 관건이었다.

범 변호사는 “피고가 ‘수익성을 위해 고층부의 일반 분양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 대목에서 태평양은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면 왜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승부에 쐐기를 박은 회심의 일격을 가한 범 변호사는 이번 승소와 관련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에서 추진위는 공식적 기구가 아닌 임의 단체임에도, 조합 설립 전까지 수많은 계약을 체결한다. 그 계약의 효력이 조합에까지 미치느냐 여부를 판단한 것은 이번 재판이 처음이었다. 이 판결이 주택법상 추진위를 제도화해 더 이상의 다툼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노자운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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