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정 성심여대 사회사업학과, 전 한국막걸리협회장 /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배혜정
성심여대 사회사업학과, 전 한국막걸리협회장 /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11월 17일 막을 내린 ‘2019 대한민국 우리 술 대축제’에서 경기도 화성의 배혜정도가에서 만든 ‘우곡생주’가 탁주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우리 술 대축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매년 11월에 공동주최하는 행사로 전통술 관련 최대 행사로 꼽힌다.

우곡생주의 앞글자인 ‘우곡(다시 태어나더라도 누룩 개발에 전념하겠다는 뜻)’은 평생을 누룩과 술 개발에 쏟은 고 배상면 회장(2013년 작고)의 호다. 이번에 탁주 부문 대상을 받은 우곡생주는 장녀인 배혜정 (주)배혜정도가 대표가 만든 술이다. 배혜정도가는 국내 막걸리 시장 고급화의 선두주자로, 우리 술 선진화에 앞장서 온 술도가의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는 양조장이다. 배혜정 대표의 오빠가 배중호 국순당 대표, 동생이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다.

올해 4월에 출시된 우곡생주는 이름에서 짐작 가듯이, 배상면 회장의 유작인 우곡주와 깊은 인연이 있다. “1998년에 아버지가 막걸리 사업을 제게 맡기셨어요. 오빠와 동생은 백세주(국순당 대표 상품)와 산사춘(배상면주가 대표 상품)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아버지가 직접 만든 탁주가 2009년에 나온 우곡주예요. 쌀의 단맛과 유산균의 신맛이 조화를 이룬 프리미엄 탁주입니다. 이번에 대상 받은 우곡생주는 아버지가 만든 우곡주를 바탕으로 좀 더 대중화한 술입니다.”

배 회장이 우곡주를 만든 것은 2009년. 그러나 알코올 도수 13도인 우곡주는 높은 도수와 가격(375㎖ 한 병에 1만4000원) 때문에 대중화는 이루지 못했다. 우곡주가 나온 지 꼭 10년 만인 올해, 배혜정 대표는 우곡생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대중화에 실패한 우곡주를 고려해 우곡생주는 도수도 10도로 낮추고 재료인 쌀도 일반쌀(우곡주는 유기농쌀 사용)을 쓰는 등 가격을 최대한 낮춰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려고 애를 썼다. 750㎖ 한 병에 6500원. 배혜정 대표는 막걸리를 만드는 배혜정도가 그리고 누룩 중심의 미생물 배양 사업을 하는 한국발효 두 곳의 대표를 맡고 있다.


배혜정도가 대표 상품. 사진 배혜정도가
배혜정도가 대표 상품. 사진 배혜정도가

이번에 상을 받은 우곡생주와 우곡주는 어떻게 다른가.
“올해 4월에 처음 나온 우곡생주는 감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쌀의 단맛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살균처리를 하지 않아 유통기한은 짧지만, 막걸리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쌀 함량이 물보다 많아 보디감(술을 입안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술의 질감, 농도)이 높다. 농도가 걸쭉해서 뻑뻑하다고 느낄 정도다. 우곡주는 아버지인 고 배상면 회장의 마지막 작품(2009년 출시)으로 쌀의 단맛과 유산균의 신맛이 조화를 이룬 프리미엄 탁주다. 살균 탁주로 1년간 유통할 수 있다. 반면에 우곡생주는 신맛이 도드라지지 않고 쌀의 단맛을 극대화한 술로, 두 제품은 맛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알코올 도수도 다르다. 우곡주는 13도, 우곡생주는 10도다.”

사업을 하기 전 평범한 주부였던 배혜정 대표는 현대건설 일본 지사장을 한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몇 년을 지냈다. 그리고 귀국 후인 1998년, 나이 마흔에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류 업계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였다. 배혜정 대표는 “막걸리에 대한 아버지의 애착은 유난했다”며 “막걸리 사업을 권하는 아버지 말씀에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 마흔에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우곡주는 품질·가격 면에서 사케, 와인, 위스키 못지않다. 시장 반응은.
“막걸리 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우곡주를 맛보면 ‘맛은 정말 좋다'는 반응이 많지만 가격 부문에서 갸우뚱하는 유통업체, 고객이 많은 게 사실이다. 대중성 있는 제품이 아닌 건 사실이다. 현재 시중에 가장 많이 팔리는 막걸리의 가격(병당 1000원), 맛(인공적 단맛과 탄산이 강한)에 길들여 있는 막걸리 소비자 입장에선 우곡주의 가격뿐 아니라 맛, 도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업 시작부터 고급화 전략을 편 이유는.
“대표 상품인 ‘부자 막걸리’는 국내 처음으로 유리병을 썼다. 처음부터 막걸리 고급화에 나선 것은 집안 사정도 크게 작용했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오빠나 동생에게 ‘고급 막걸리를 만들라’고 당부했지만 1990년대 중후반 당시만 해도 백세주, 산사춘 같은 약주가 워낙 잘나가던 시절이라 이미 술 사업을 시작한 오빠, 동생은 고급 막걸리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보고 ‘그럼 네가 한번 해봐라’고 막걸리 사업을 권하신 것이 나이 마흔에 막걸리 사업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막걸리 시장에는 늦게 뛰어들었지만 남들과는 차별화된 것을 하자는 생각에서 처음부터 고급화를지향했다.”

주력 제품인 부자 막걸리는 고두밥을 찌지 않고 쌀가루를 발효에 사용하는 생쌀발효법을 쓰고 있다. 그 장점은.
“생쌀발효법은 열처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쌀 본연의 아미노산, 비타민, 식이섬유 같은 영양소가 다른 술에 비해 많이 살아 있다. 또 마실 때 목넘김이 깔끔한 것도 생쌀발효법의 장점이다. 발효 시 사용하는 누룩균주도 일반 술과 다른데, 그래서 숙취를 유발하는 물질이 적게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향후 신제품 등 중장기 계획은.
“남들과 다른 증류주를 만들 것이다. 공장이 있는 화성 쌀을 베이스로 한 프리미엄 증류주를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우리에게는 남들보다 좋은 양조용 미생물이 많으니까, 이를 사용한 막걸리를 증류해서 차원이 다른 증류주를 내놓을 참이다.”

형제 회사인 국순당과 배상면주가도 나중에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막을 도리가 없다.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술 시장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형제라고 해서 사업 영역을 나누고 다른 형제의 사업영역에는 뛰어들지 않는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내가 막걸리 시장에 뛰어든 지 20년이 지났지만, 나부터가 아직 ‘마이너’를 벗어나지 못한 마당에 오빠, 동생한테 ‘막걸리 시장엔 들어오지 말라’고 할 명분도 없다. 형제가 다 모이는 집안 제사 때 제주는 항상 백세주를 쓴다. 장남이 만드는 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