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네이버 검색툴 개발, 씽크리얼즈 창업, 카카오 서버 개발, 판교장터(현 당근마켓) 창업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재현
네이버 검색툴 개발, 씽크리얼즈 창업, 카카오 서버 개발, 판교장터(현 당근마켓) 창업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지난 4년 반 동안 가장 자주 받은 요청이 ‘다른 지역과도 거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전 사람이 서울 매물을 사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건 당근마켓의 지향점이 아니에요. 우리는 정반대로 하죠. 사용자가 늘어나면 거래 가능 범위를 되레 줄입니다.”

12월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에 있는 당근마켓 사옥. 3년 5개월 만에 만난 김재현(40) 당근마켓 공동대표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부끄러운 듯 어색하게 짓는 미소도, 청바지에 운동화 복장도, 심지어는 한 손에 들고 있는 노트북도 그대로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강북 시민도 강남 물건 좀 살 수 있게 해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 대표는 웃는 얼굴로 “비슷한 요구가 많지만 수용하기 힘들다”고 선을 그었다.

“당근마켓은 슬세권(슬리퍼 신고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에 집중하는 ‘우리 동네’ 플랫폼이에요. 마을 공동체 일원, 같은 아파트 주민이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게 하는 것이 당근마켓의 목표죠. 이게 잘 이뤄지려면 사용자들이 근거리에 거주해야 해요. 저희가 거래량이 풍부한 지역의 ‘동네 범위’를 차츰 줄여나가는 이유입니다.”

김 대표가 노트북 화면에 지도 하나를 띄웠다. 서울 송파구 잠실 2동에 사는 당근마켓 이용자가 어느 동네까지 진출할 수 있는지 나타낸 지도였다. “예전에는 잠실 2동 주민이 강남구 자곡동 밖에 사는 주민과도 거래했어요. 지금은 아니죠. 종로구 구기동이 현재는 은평구 녹번동 등과 묶이지만 향후 사용자가 늘면 (동네 범위가) 좁아질 수 있어요.”

당근마켓의 당근은 ‘당신 근처’를 줄인 말이다. 김 대표가 카카오 재직 시절 동료인 김용현(41) 현 공동대표와 의기투합해 2015년 7월 서비스를 론칭했다. 출범 당시 이름은 당근마켓이 아닌 ‘판교장터’였다. 판교에 있는 카카오의 사내 중고 거래 장터가 활발한 모습을 보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판교에서 시작한 서비스를 전국 단위로 확대해 나가면서 서비스명을 당근마켓으로 바꿨다.

당근마켓은 2016년 12월 13억원을 투자받았다. 2017년 10월과 12월에는 각각 100만 다운로드와 월 방문자 수(MAU) 50만 명을 넘어섰다. 성장 속도가 본격적으로 빨라진 건 지난해 5월 소프트뱅크벤처스·카카오벤처스 등으로부터 총 68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였다. 현재 이 회사는 누적 다운로드 1000만, MAU 400만 명, 가입자 수 800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

“아무래도 내 이웃과 만나는 건데 사기를 치거나 덤터기를 씌우기 힘들죠. 출퇴근길에 마주칠지 모르잖아요. 이런 특성은 당근마켓 거래에 대한 신뢰 강화에 도움을 줬어요. 지금도 ‘동네 주민끼리 직거래’ 원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덕분에 구글플레이 국내 쇼핑 애플리케이션(앱) 중 1인당 방문 횟수 1위와 체류 시간 1위(2018년 12월 기준)에 오를 수 있었죠.”

각종 사고 방지를 사람에게만 맡기는 건 아니다. 짝퉁 물품이나 동물·술·담배 같은 거래 금지 물품을 찾아내는 일은 머신러닝(기계학습)으로 훈련된 인공지능(AI)이 맡는다. AI가 사진이나 상품 설명문을 분석해 분쟁 소지가 다분한 매물을 미리 골라내는 방식이다. 90% 이상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AI가 믿을 만한 상품 진열을 돕는 일등 공신이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머신러닝 전문가 3명을 별도로 채용하기도 했다.

김 대표 역시 타고난 개발자다. 그는 네이버에서 검색 툴을 만들던 시절부터 종종 흥미로운 웹사이트를 제작해 주변에 보여주곤 했다. 2010년 네이버를 퇴사한 김 대표는 모바일 앱 개발 업체 씽크리얼즈를 창업한 뒤 의류 쇼핑몰을 한데 모은 ‘포켓스타일’과 소셜커머스를 모아놓은 ‘쿠폰모아’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김 대표는 “쿠폰모아는 출시 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씽크리얼즈를 2년 동안 운영하다가 카카오에 매각하고, 아예 카카오에 합류해 서버 개발자로 3년 더 근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김용현 대표와 자본금 5억원을 들여 당근마켓을 창업했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당근마켓 사옥 내부. 당근마켓은 생활 정보가 넘쳐나는 동네 플랫폼을 지향한다. 사진 당근마켓
서울 역삼동에 있는 당근마켓 사옥 내부. 당근마켓은 생활 정보가 넘쳐나는 동네 플랫폼을 지향한다. 사진 당근마켓

지역 종합 커뮤니티 꿈꿔

후발 주자임에도 중고나라·번개장터 등의 경쟁 업체를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은 당근마켓의 저력은 2019년에도 이어졌다. 지난 9월 당근마켓은 400억원 규모의 세 번째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는 알토스벤처스와 굿워터캐피탈이 주도했고, 기존 투자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카카오벤처스·스트롱벤처스·캡스톤파트너스도 참여했다. 12월 11일에는 구글플레이가 당근마켓을 ‘2019 올해의 베스트 앱’에 선정했다. 김 대표는 “많은 훌륭한 앱과 진검승부를 겨뤄 얻은 결실이라는 점에서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빠른 성장 덕에 당근마켓 임직원들은 이삿짐을 싸고 푸는 일을 1년에 한 번꼴로 반복 중이다. 창업 직후 첫 사무실은 강남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두 김 대표를 포함해 6명이 작은 오피스텔에 책상 6개를 밀어 넣고 부대끼며 일했다. 2016년 옮긴 판교의 한 상가 건물 사무실에서는 2년 동안 생활했다. “2018년 여름 다시 서울로 복귀해 서초동에 둥지를 틀었다가 1년 만인 올해 6월 현 사옥으로 이사했습니다. 여기서도 좋은 성과를 내야죠.”

김 대표는 핵심 서비스인 중고 거래에만 머물러 있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동네에서 발생하는 모든 생활 정보를 취급하는 지역 커뮤니티로 진화해 나갈 겁니다. 중고 거래는 물론 부동산이나 구인·구직 정보를 구할 때도 당근마켓을 찾게 하고 싶어요. 강아지 산책시켜줄 이웃을 구하거나 함께 배드민턴 칠 사람 찾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주변을 둘러보면 온라인으로 넘어올 수 있는 생활 정보가 은근히 많습니다.”

당근마켓에 등록된 지역 광고 2000여 개에서 김 대표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서울 강서구의 수학 학원, 노원구의 필라테스 교습소, 경기도 안양시의 영어 공부방 등이 눈에 들어왔다. “기존에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종이 전단 뿌리던 업체들입니다. 참고로 이 중 영어 공부방은 당근마켓에 1만2000원 지불하고 동네 주민 2500명에게 노출됐어요. 어떤 홍보가 더 효과적이라고 보세요?”


Company Info

창업 연도 2015년
사업 모델 중고 거래, 지역 광고· 업체 정보 제공
서비스 지역 전국
가입자 수 800만 명
월 방문자 수 400만 명
누적 다운로드 1000만
누적 투자금 480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