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월 10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사람들이 몰렸다. 2 4월 8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한적한 모습. 3·4 4월 10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세계음식문화거리를 찾은 사람들. 5·6 4월 8일 한적한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사진 김윤수 기자
1 4월 10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사람들이 몰렸다.
2 4월 8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한적한 모습.
3·4 4월 10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세계음식문화거리를 찾은 사람들. 5·6 4월 8일 한적한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사진 김윤수 기자

4월 10일 저녁 서울 이태원동(이하 이태원). 일요일이었는데도 술집들은 대부분 만석이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사람들의 긴 줄이 늘어졌다. 인근 상인들은 금요일과 토요일엔 인파가 이보다 두 배 많다고 했다. 폐점한 채 방치됐던 건물들은 다시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대로변을 제외하면 상가가 거의 다 찼다”며 “3월부터 이틀에 한 건꼴로 상가 임대나 매매 문의가 오는데, 공실이 없어서 임차인들이 못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명동은 여전히 썰렁했다. 4월 8일 금요일 저녁이었는데도 길거리엔 인적이 드물었고 상가에는 불이 꺼져 골목 전체가 어두컴컴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로는 올해 1분기 기준 명동 상가 열 곳 중 네 곳이 문을 닫은 상태인데, 상인들은 올해도 공실률 회복이 더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여전히 상가 임대 문의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이태원과 명동 상권의 희비가 갈리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1년 전 이맘때 두 상권의 상가 공실률은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상가 공실률은 명동이 중대형과 소형 각각 38.4%, 38.3%, 이태원이 22.6%, 31.9%였다.

외국인 관광객 수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한 외국인 관광객은 약 97만 명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1750만 명)의 5.5% 수준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1년 후인 올해 1분기 상가 공실률은 명동이 중대형 40.9%, 소형 42.1%로 더 높아진 반면 이태원은 중대형 9.8%, 소형 4.4%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4월 10일 기자가 만나본 이태원 공인중개업소와 상인들은 올해 들어 공실이 더 줄고 상권 회복이 빨라진 걸 체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대료는 코로나19 발생 직전 66㎡(20평) 면적 기준 월 500만원에서 최저 200만원대로 낮아진 와중에 유동 인구는 늘면서, 상가 임대 수요가 커진 덕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임차인들의 움직임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있었다”며 “먼저 회복을 시작한 세계음식거리에 이어, 대로 맞은편 이태원 퀴논길도 올해 들어 상가 임대 수요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실제로 공실들은 개업을 준비 중이었다. 세계음식거리엔 3층짜리 건물이 인테리어 작업에 한창이었다.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각 층이 따로 와인바를 운영하다가 지난해 차례로 폐업한 건물인데, 이번에 한 사업자가 세 개 층을 모두 임대해 3개월 뒤 새로운 와인바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퀴논길의 빈 건물 하나도 4월 말 식당 개업을 위해 인테리어 작업 중이었다.

세계음식거리의 술집 ‘베이비기네스’에서 일하는 이모씨는 “지난 겨울과 비교해도 손님이 확실히 늘었다”며 “일이 없어 지난해 내내 쉬었는데 올해 1월부터 다시 출근하고 있다. 주방 직원과 홀 직원이 따로 있는데도 일손이 모자라서 사장까지 뛰고 있다”고 했다. 퀴논길의 음식점 ‘버들골이야기’를 운영하는 문모씨는 “코로나19 직전 방문객의 80% 정도로 손님 수가 회복된 것 같다”며 “인건비를 아끼려고 직원 두 명을 모두 잘랐는데, 최근 일손이 부족해져서 아들이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 1981~2010년대생)의 발길도 잦아졌다. 이태원 유동 인구를 떠받치던 한 축인 외국인 수는 코로나19 이전엔 주변 미군 기지 철수, 이후엔 관광객 급감으로 줄어든 후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대신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덜한 MZ 세대에게 이곳이 핫플레이스(명소)로 알려지면서 거리가 활기를 되찾은 걸로 보였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여기 사장들은 인터넷 블로그나 소셜미디어(SNS)를 많이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찾아오는 걸로 안다”며 “이들을 중심으로 상권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SNS로 입소문을 탄 명소인 한 사주 가게를 발견했다. 이날 낮 인근 술집들이 문을 열기 전부터 가게 앞엔 20대로 보이는 여성 손님 10여 명이 점을 보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신모씨는 “저렴하면서 점을 잘 맞추는 걸로 유명하다고 들어서 와 봤다”며 “대기 시간이 길다고 해, 아예 끝나고 저녁까지 즐기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태원의 활기를 명동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중심가(명동8길)를 따라 일부 화장품 가게와 음식점, 노점상이 문을 열었지만 주 고객인 외국인 관광객이 없다 보니 개점 휴업 상태나 다름없었다. 상인들은 “놀 수 없어 마지못해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중심가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상가 대부분이 폐업하고 간판 한 개 정도만 가로등처럼 밤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태원과 달리 명동은 주거지 등 배후 수요가 없고 내국인보단 외국인 관광객에게 서비스가 맞춰져 있어, 코로나19 거리 두기 해제로는 상권 회복이 쉽지 않을 걸로 내다봤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명동은 배후 수요가 취약하기 때문에 외부 유동 인구(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전엔 이태원 등 다른 상권과 회복 시간에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명동은 임대료가 높아 화장품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와야지, 자영업자가 접근할 수 있는 상권이 아니다”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다 보니 객단가도 높아 내국인에겐 소외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국인 수요는 인근의 을지로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들어오기 전엔 명동 상권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같은 이유로 이태원에 대해선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에 따른 용산 개발의 수혜지가 될 거란 분석이 나왔다. 박 교수는 “이태원은 용산 한남뉴타운, 동부이촌동 개발로 배후 수요가 지속적으로 강화할 상권이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국제업무지구 개발, 주한미국대사관 이전으로 글로벌시티화(化)하면 외국인 유입도 늘어 코로나19로 인한 손실 이상으로 상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영향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본다”면서 “늘어날 유동 인구를 수용할 지역 상권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이태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