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디터 헬름 옥스퍼드대 경제정책학과 교수, 문재도 수소융합얼라이언스 회장, 손인완 한화솔루션 미래기술연구센터장, 박상길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 사진 조선비즈 DB
왼쪽부터 디터 헬름 옥스퍼드대 경제정책학과 교수, 문재도 수소융합얼라이언스 회장, 손인완 한화솔루션 미래기술연구센터장, 박상길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 사진 조선비즈 DB

멈추면 넘어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듯 줄곧 앞만 보며 달리던 세계 경제가 방향을 틀었다. 세계 경제 성장의 원천이었던 화석연료는 인류를 현대문명으로 인도했지만, 기후 위기라는 대재앙을 함께 줬다. 인류는 더는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과 ‘경제성장’의 양자택일에 놓여있지 않다. 탄소 중립 없이는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없음을 각국 정상들이 공감하고 기후 변화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탄소 중립이라는 글로벌 어젠다를 선점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조선비즈는 6월 17일 개최한 ‘2021 미래에너지포럼’에서 세계적인 석학과 국내외 에너지 전문가를 초청해 탄소 중립을 위한 국가별 정책과 기업들의 전략을 진단하고 그린 수소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과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참석자들이 제안한 탄소 중립 방법론은 다양했지만,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기후 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탈원전·탈탄소 동시 추진 비용 천문학적”

포럼 기조연설자로 나선 디터 헬름(Dieter Helm) 옥스퍼드대 경제정책학과 교수는 탈원전과 탈탄소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지만, 그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탈원전·탈탄소를 동시에 추진하는 독일을 예로 들었다. 독일은 슈퍼 그리드(대규모 송전망)를 구축해 주변 국가로부터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 디터 헬름 교수는 “독일이 규제가 잘돼있는 기존 원전을 왜 닫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그러고는 프랑스 등 이웃으로부터 원전 에너지를 수입한다. 독일의 탈원전은 합리적인 탄소 중립 정책보다는 이념적 문제가 작용한 것 같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디터 헬름 교수는 “탈원전·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하는 독일은 오히려 효과적인 탄소 중립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한국 정부도 이런 비용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라고 했다.

그는 원전 없는 탄소 중립이 초래할 결과가 녹록하지 않다며 신재생에너지 비용 문제를 언급했다. 태양광과 풍력 등 간헐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해야 하는데, 기존 전력 수요를 맞추려면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디터 헬름 교수는 탄소 배출이 아닌 탄소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디터 헬름 교수는 탄소 집약 제품의 수입을 자국 내 생산과 같은 기준으로 취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자국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관세(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조치다. 디터 헬름 교수는 “중국 등 일부 국가들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 기후 변화를 멈출 수 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며 “탄소 집약도가 높은 중국 제품의 상당수가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전 세계 국가와 기업, 개인의 탄소 소비량을 의미하는 ‘탄소 발자국’을 추적하고 탄소 소비 자체를 줄여나가는 것이 탄소 중립의 핵심”이라며 “탄소국경세를 부과해 탄소 소비 감소를 유도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소 산업 잠재력 큰 한국

문재도 수소융합얼라이언스 회장은 한국이 국제사회 협력과 인프라 구축을 통해 세계 수소경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소융합얼라이언스는 수소차 산업 확산을 목적으로 한 민관협의체다.

문 회장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수소 산업 생태계의 균형 있는 성장, 민간투자 활성화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2040년까지 1000개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수소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수소를 활용하는 기술, 특히 수소연료전지차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며 “그 결과 우리는 승용차, 버스, 트럭 등 모든 자동차를 수소차로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됐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현재 갖고 있는 기존 제조업 경쟁력을 활용하면 세계 최고 수소경제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자동차를 비롯한 모빌리티 분야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라고 했다.

문 회장은 수소경제 성공을 위해 국제 협력을 특히 강조했다. 문 회장은 “많은 나라가 수소 공급망 구축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국내에서도 수소를 생산해 조달하겠지만, 많은 부분은 수입해야 하는 만큼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는 “국제사회 노력에 동참하면서 수소 주도권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기술개발과 인력 양성, 인프라 구축을 해나간다면 한국은 2050년 탄소 중립이 실현됐을 때 미래 수소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화그룹의 수소 사업을 총괄하는 손인완 한화솔루션 미래기술연구센터장은 한국이 수소 산업에서 높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수소경제 이전에 석유화학 산업과 압축천연가스(CNG) 산업이 발달해 파이프라인과 저장시설을 많이 갖추고 있다”며 “이런 네트워크가 수소와 연계되면 산업이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대자동차 등 연료전지 분야에서 글로벌 사업 역량을 보유한 기업도 많아 먼저 수소 산업을 고도화하고 있는 유럽이나 호주보다 수소 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라고 말했다.

손 센터장은 모빌티리 분야에서 수소가 가장 먼저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수소가 리튬배터리 등과 비교해 대용량 저장이 가능한 만큼 트럭이나 기차, 선박 등 대형 모빌리티에서 사용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손 센터장은 또 “단기적으로 전기차는 도시 안에서 움직이는데, 수소차는 서울에서 부산과 같이 장거리를 이동할 때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자력 분야 전문가인 박상길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은 한국 정부가 ‘2050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한국이 온실가스 ‘넷제로’로 가기 위해선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시설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며 “파리협약 선언대로 감축하려면 2017년 탄소 배출량 대비 약 50~ 60%를 감축해야 한다”고 했다. 박 위원은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MR은 원전을 구성하는 여러 기기를 용기에 일체화해 중소형으로 제작한 원전이다. 기존 원전보다 안전성이 강화되고 입지와 출력에서 유연성도 갖춰 온실가스 감축 계획의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 위원은 “SMR은 시스템이 단순해 제작이 쉬워 경제성을 갖췄으며,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고 핵무기로 전용 가능성이 없어 보안성도 갖췄다”며 “덩치가 작아 선박 추진, 해수 담수화, 극지 전기 제공 등 사용처도 무궁무진하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