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 사진 삼성전자
황철성 서울대 석좌 교수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황철성 서울대 석좌 교수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반도체가 ‘산업의 쌀’에서 ‘국가 안보의 쌀’로 바뀌면서 국내외에서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19년 7월 4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 이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통제 조치가 진행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반도체 품귀 현상까지 빚어지면서 반도체 분야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지난 2년간 관련 업계 및 정부의 집중적인 노력과 적절한 투자 덕분에 일본 소재 수출 통제에 따른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의 저하는 없었다. 오히려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과, 더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 결과 정부나 학계가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최고급 연구 역량을 갖춘 우수 인재 양성이라는 점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산업계의 관련 인재 양성에 대한 높은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도체 산업 성장세 확대 등을 감안해 인력 양성 목표 상향 조정을 추진하고 현행 제도하에서도 대학 내 학과 조정, 대학원 정원 증원 기준 개정, 공동 학과 신설 등을 통해 반도체 인력 양성 확대를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에도 여전히 반도체 전문인력 육성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 대학의 구조 변화와 교육 이념 변화 등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서는 학사보다는 석⋅박사급을 원하지만, 반도체 관련 대학원의 경우 교수가 없어서 반도체를 공부하고 싶은 학생을 수용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반도체 분야의 고급 인력 양성은 대학원 수준의 석⋅박사급 인재 양성과 학사 수준의 인재 양성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반도체 산업 기술이 극단적으로 높은 것을 고려하면 당연히 최고급의 석⋅박사급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대학의 반도체 연구 수준이 산업계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상황만 고려하면, 학부만 졸업하고 취업한 후 기업이 직원의 연구 역량을 배양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상당수의 회사 고위 임원이 그와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 어렵다. 기업은 근본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조직이지 직원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체 분야와 같이 매우 넓은 분야에 대해 깊은 지식과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일은 대학에서도 쉽지 않다.


반도체 계약 학과·학부 인력 증원도 어려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계약 학과, 심지어는 소재 부품 장비 계약 학과가 거론되고 있다. 또한 학부 인력 확충을 위하여 관련 학과 정원 확대 문제도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현실성이 없거나, 효용성이 없다.

먼저 반도체 계약 학과는 주요 대학 학부에 반도체 계약 학과를 설치하고 회사가 일정 기간 그 운영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미 삼성전자에서 2019년에 서울대에 반도체 계약 학과 설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었다. 표면적인 원인은 학내 타 단과 대학, 심지어 공과대학 내 타 학문 분야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문제 때문이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학과를 만들려면 교수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필자가 재직 중인 서울대 공대에는 교수 약 330명 중에 반도체를 전공한 교수가 설계까지 통틀어 많아야 10명 내외다. 이들을 다 반도체 계약 학과로 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계약 학과를 만들려면 교수를 새로 뽑아야 하는데, 계약 학과라는 것은 정해진 기간의 계약이 해지되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대학 입장에서는 그런 학과를 대상으로 정규 교수를 뽑아 줄 수 없다. 또한 교수로 선발되면 연구를 해서 실적을 내야 하는데, 계약 학과는 학부생만 있으니 연구할 수가 없다. 그러니 우수 교수를 뽑을 수도 없다.

학부 정원 확대도 여의치 않다. 산업계 입장에서는 수도권의 우수 대학 정원 확대를 통한 인력 저변 확보가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유은혜 교육부총리의 5월 6일 발표를 보면, 정원을 채우는 데 어려움이 큰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수도권 대학 정원을 감축하고자 한다. 이는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대전제하에 시행되는 정책이라서, 반도체 한 분야를 위해 이 큰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반도체 관련 학부 정원 확대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반도체 관련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반도체 전문 인력 부족은 해결될 수 없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는 대학(학부)의 교육 이념이 해당 분야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소위 T 자형 교육이었다. 그 때문에 이수 요구 학점도 140학점에 전공 학점을 거의 100학점을 따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반 교양인을 키워내는 것으로 교육 이념이 바뀌었다. 즉 전공과 교양 두 개의 다리가 비슷한 정도의 중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 졸업 학점도 130학점으로 줄었고, 전공 과목은 이 중 절반 정도의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이 가능하다. 따라서 가령 전자공학과 출신 학부 졸업생이라고 해도 반도체 관련 과목은 3~4개 정도 수강한다. 즉 지금의 대학 교육의 기본 전제는 전문인은 대학원에서 육성한다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배운 반도체 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공과대학에서 대학원의 정원을 다 못 채우는 실정이다. 약 20년간 연구 중심 대학 정책에 따라 소위 우수 대학의 학부 정원은 전체적으로 축소됐지만 대학원 정원은 계속 늘려 왔다. 정체되거나 쇠퇴하고 있는 산업 관련 대학원, 인력이 필요하고 성장세를 보이는 산업 관련 대학원 모두 일괄적으로 정원을 늘려 한쪽은 대학원생이 부족하고, 다른 한쪽은 교수가 부족한 미스매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학원에서 반도체를 전공하려는 학부 학생이 매우 많은데, 교수가 없어서 그 학생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실에 현재 대학원생 60여 명이 있는데, 아마 지원자를 다 받았으면 100명도 넘었을 것이다. 결국 반도체를 연구하는 교수에게 연구비를 많이 지원하는 방안을 만들어 관련 교수를 대학에서 선발하게 하는 것만이 필요한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해 현재 유일하게 가능한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공과대학의 중요한 기본 역할은 중요 산업이 요구하는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계가 요구하는 고급 인력에 대한 수급 불일치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지난 10년 이상 정부에서 반도체 분야의 연구비를 많이 줄인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작게 보면 교수 개인이나 학과, 좀 더 크게 보면 대학을 평가하는 것이 가령 QS, 타임스 랭킹 등 우리 현실과는 맞지 않은 기준에 따라 진행된 탓이 있다. ‘네이처’ ‘사이언스’ 등 저널에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분야가 각광받게 된 현실이 큰 요인이라는 얘기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대학에서 반도체 분야 교수를 선발하기 매우 어렵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런 문제를 개선해야 반도체 분야의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