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치박스 홈페이지. 사진 와치박스
와치박스 홈페이지. 사진 와치박스

주말 백화점에 가보면 명품 매장에 길게 늘어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고객들의 행렬이 장관이다. 백화점의 명품 매장을 방문하기 위해 대기 번호를 발급받아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이렇게 급증하는 명품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은 글로벌한 현상이 되고 있다.

전체적인 소득 수준의 향상, 풍부하게 공급된 유동성, 투자 혹은 사업의 성공으로 형성된 신규 부유층의 증가, 다른 부분의 소비를 희생해서라도 어느 한 분야에 크게 투자(소비)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 ~2010년생)의 특성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해, 명품 수요는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하나의 패턴이 된 듯하다.

이러한 명품에 대한 수요로 인해 중고 혹은 리셀링(재판매) 시장 또한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 나온 에르메스나 샤넬의 가방을 사자마자 리셀링 시장에 내어놓으면 몇백만원의 차익을 볼 수 있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럭셔리 시장은 3억7000만유로(약 503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11%의 성장률이 예측되는 시장이다.


명품 중고 시계 시장 파고든 ‘와치박스’

미국의 중고 명품 시계 전자상거래 업체인 와치박스(WatchBox)는 시장 수급의 불균형 흐름을 잘 파고든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 명품 럭셔리 시계 시장은 수요 증가, 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숙련된 시계 기술자의 수작업이 핵심이기 때문에, 생산 수량을 늘리는 것에 제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고급 브랜드들은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생산과 판매를 무한대로 늘리려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롤렉스의 인기 모델인 서브마리너(그린)의 경우, 신상품 가격은 9050달러(약 1150만원)이지만, 중고 거래 가격은 1만7000~3만6000달러(약 1955만~4140만원)로 오히려 더 높은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희귀성으로 인한 프리미엄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투자 심리’ 또한 이러한 현상을 강화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래전 모델의 명품 시계는 더 추가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시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 더 높은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중고 시계의 연간 거래액은 160억달러(약 18조4000억원)에 이른다.

3명의 공동창업자인 저스틴 레이스(Justin Reis), 대니 고버그(Danny Govberg), 태이 리엄 위(Tay Liam Wee)는 2015년 럭셔리 중고 시계 거래를 디지털 방식을 통해 활성화하기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에 와치박스를 설립했다. 특히 태이 리엄 위는 ‘신시어 와치스(Sincere Wathces)’를 홍콩과 싱가포르 증권 시장에 각각 상장시키며 시계 유통 업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와치박스는 모든 시계 거래 정보 교환이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명품 시계를 팔고자 하는 고객들은 와치박스의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을 통해 본인이 소유한 시계 정보를 입력하고, 이메일이나 메신저 같은 온라인 방식을 통해 와치박스 전문가와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를 협의한다. 협의를 마친 고객이 팔고자 하는 시계를 와치박스로 보내면, 와치박스는 사내 전문가의 자체 검증을 통해 진품 여부와 시계 상태를 확인한 후 최종 가격을 제시한다. 시계를 팔려는 고객이 최종 가격을 수락하면 24시간 내로 송금한다. 매입된 시계는 ‘WBX’라고 불리는 자체 가격 책정 시스템을 통해 공식 사이트에 판매 가능 상품으로 업로드된다. 이 시스템은 전 세계 다른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와 이베이, 경매 데이터 등을 모니터링한 뒤, 글로벌 환율 등을 감안한 가격을 책정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와치박스의 가격은 명품 글로벌 중고 시계 시장의 표준 가격으로 통하고 있다.

와치박스의 2020년 매출은 2억900만달러(약 2403억원)로, 2017년(1억4500만달러) 대비 44% 증가했다. 매출의 75%는 미국 시장에서, 나머지 25%는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 스위스 등에서 발생하고 있다. 와치박스의 기업 가치는 1억5200만달러(약 1748억원)에 달한다. 2017년 1월에는 싱가포르의 시엠아이에이 파트너스(CMIA Partners)로부터 5000만달러(약 575억원)를 투자받기도 했다.


“시계 콘텐츠 만들고 오프라인 매장도 열어”

박순우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 대표 전 한빛소프트 해외마케팅 상무, 전 LB인베스트먼트 중국법인 대표
박순우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 대표
전 한빛소프트 해외마케팅 상무, 전 LB인베스트먼트 중국법인 대표

와치박스는 럭셔리 시계를 주제로 한 자체 제작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적게는 몇천만원부터 수억원까지 호가하는 럭셔리 중고시계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거나, 쉽게 접하기 어려워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와치박스는 케이블 방송국처럼 자체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8000개가 넘는 자체 제작 영상 콘텐츠도 보유하고 있다. 매주 여러 개의 새로운 영상이 추가되는데, 지속적인 콘텐츠 제공을 통해 고객들의 관심을 끌고, 잠재 고객을 발굴하며, 기존 고객의 재구매 의사를 높인다.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고객들과의 신뢰를 구축한 점도 와치박스 성공 비결로 꼽힌다. 럭셔리 시계의 경우, 고가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직접 실물을 만져보고 착용해보길 원한다. 와치박스 역시 평균 판매 가격이 2만달러(약 2300만원)인 고가 제품을 다루기 때문에 세계 주요 도시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해 시계를 판매하고자 하는 고객과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 모두가 직접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 홍콩, 두바이, 스위스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은 지역 고객을 유치할 뿐 아니라,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와치박스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고객을 보유하고 있어 신생 시계 브랜드 업체들에 매우 매력적인 신제품 유통 채널 역할을 한다. 이 경우 와치박스는 이 업체들과의 교섭력을 높일 수 있고 독점적인 위탁판매 계약을 따내, 높은 수준의 마진(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Plus Point

중고 럭셔리 시계 판매 기업 상한가

와치박스와 같이 중고 럭셔리 시계를 판매하는 기업들은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와치박스와 비슷한 형태로 중고 럭셔리 시계를 판매하는 기업은 독일에 본사를 둔 크로넥스트(CHRONEXT)와 영국에 본사를 둔 와치파인더(WATCHFINDER)가 있다. 와치파인더의 경우, 2018년 6월 리치몬트그룹(Richemont)에 인수됐다. 크로넥스트는 2021년 9월 독일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다.

와치박스 역시 2023년 미국 증시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와치박스는 중고 럭셔리 시계뿐 아니라 보석이나 와인 등으로도 판매 물품을 확대할 예정이다. 앞으로 와치박스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