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시부야역에 위치한 할인 잡화점 ‘메가 돈키’에 마련된 한국 소주 매대. 사진 이민아 기자
일본 도쿄 시부야역에 위치한 할인 잡화점 ‘메가 돈키’에 마련된 한국 소주 매대. 사진 이민아 기자

2022년 10월 일본 도쿄 대표 쇼핑몰 긴자식스 안에 위치한 편의점 ‘로손(Lawson)’. 이곳에 들어서자 각종 과일 향이 가미된 한국 소주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국 소주는 이처럼 일본에 방영된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일본 주요 편의점과 마트에 입점해 있다. 일본 도쿄의 대형 할인 잡화점인 ‘메가 돈키’에는 한국 소주 전용 매대가 따로 마련돼 있기도 하다. 김경현 CJ푸드재팬 마케팅부장은 “일본 주요 편의점에서 한국 소주가 냉장 매대에 진열돼 있는데, 냉장 매대는 잘 팔려야 진열할 수 있는 자리”라며 “이는 충격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조선비즈가 일본 현지에서 만난 농식품 수출 기업인들은 한국 농산물과 식품, 주류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점을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혐한(嫌韓)’ 분위기 탓에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판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관세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2022년 발효된 것을 또 하나의 호재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의 대(對)일본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간의 첫 번째 자유무역협정(FTA)인 RCEP는 한국, 중국, 일본 및 아세안(ASEAN),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 국가가 참여하는 ‘메가 FTA’다.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2월 1일 발효됐다. 



RCEP 발효로 소주, 막걸리, 배, 버섯류 개방

한국 정부는 RCEP로 농식품 수출에 있어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우리나라 수출 유망 품목 중 소주, 막걸리, 청주, 배, 버섯류 등이 개방됐다”며 “일본은 우리나라 주요 농산물 수출 시장이기 때문에 우리 농식품 수출에 좋은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일본에서 한국 식품을 유통하며 현지 사정에 잔뼈가 굵은 김규환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장도 “관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철폐되는 만큼,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효과를 체감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RCEP 체결은 한국과 일본의 교역이 활발해진다는 차원에서 기쁜 소식”이라고 말했다.

일본 현지에서 농산물을 유통하고 있는 기업인들은 한국 농산물의 품질이 향상된 만큼 가격 경쟁력이 산업의 성장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에 한국산 파프리카와 김치를 수출, 유통하는 김진호 농협인터내셔널 대표는 “RCEP의 핵심은 관세를 점진적으로 내려 10년 후에는 0%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교역이 늘면서 단일 품목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유통 파프리카 82%는 한국산

현재 일본으로 수입되는 한국산 파프리카는 3%, 복숭아나 자두 등 과일류는 6%의 관세가 붙는다. 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파프리카의 99.5%는 일본으로 간다. 일본 내에서 유통되는 파프리카 가운데 82.37%는 한국산이다. 김 대표는 “파프리카는 일본으로 수입되는 한국 신선 농산물의 간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채소류뿐 아니라 과일류의 경우 RCEP로 인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농가 수준이 많이 향상돼 일본에서도 과일 품질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됐기 때문에 RCEP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품질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사례로 2022년 처음으로 일본에 들여온 한국산 천도복숭아를 들었다. 그는 “시험적으로 소량으로 들여온 천도복숭아의 통신판매 발주 물량이 순식간에 소진돼 한인 마트에는 공급도 하지 못했다”며 “한국 농식품의 가능성이 생각보다도 훨씬 크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장서경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일본지역본부장 겸 도쿄지사장은 소주, 막걸리 등 한국 주류가 RCEP의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장 본부장은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국산 소주와 막걸리에 대한 관세가 20년간에 걸쳐 축소된다”며 “최근 한국 드라마에 소주가 자주 등장하면서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도쿄에서 가장 큰 할인 잡화점인 메가 돈키에 한국 소주가 진열돼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경현 부장도 RCEP가 촉발할 관세 인하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수입해 오는 만두의 관세가 21%, 김의 관세가 25%”라며 “관세가 내려가면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Plus Point

Interview 김규환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장
“日서 팔리는 김 대부분 한국산…늘 공급 물량 부족”

김규환재일한국농식품 연합회장 사진 이민아 기자
김규환재일한국농식품 연합회장 사진 이민아 기자

“일본의 어느 가게에서 파는 김이든, 대부분 한국산일 겁니다.”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장이자 일본 도쿄 최대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의 상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김규환 히토시나상사 대표(이하 김 회장)는 2022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1966년생으로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그는 1991년 일본으로 건너가, 31년 넘게 한국 농식품을 일본에 수입하고 있다. 그는 한·일 간 교류가 지금보다 활발하지 않던 1990년대부터 한국 농식품을 일본에 유통했다. 악수를 청하는 두툼한 손에서 타지에서의 풍파를 이겨낸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재일농식품연합회는 한국 농수산식품을 수입하는 32개 업체로 구성된 단체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aT)의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김은 2022년 9월 기준 한국 농식품 가운데 수출액 기준 일본으로 가장 많이 수출된 품목 4위(9636만달러·약 1227억원)에 올라가 있다. 김은 지난 2020년에는 대(對)일 농식품 수출 품목 가운데 3위(1억3291만달러·약 1741억원)까지 올라갔었다. 2021년 5위로 내려가며 다소 주춤했지만 2022년 다시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김 회장은 “일본의 김 수입 관련 협회에서 한 해의 수입량을 미리 한국 수산조합들에 주문한다”며 “한국 김을 더 많이 수입해 오고 싶지만, 항상 한국산 김을 사다가 일본에서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물량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마른 김이나 조미김뿐 아니라 김으로 만든 과자를 의미하는 김스낵의 인기가 늘면서 매년 한국을 대표하는 ‘효자 상품’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하며 그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확산했던 ‘혐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있다’는 식의 근거 없는 혐한 분위기로 인해 한국 식품에 대한 선호가 당시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한국 농식품을 들여오는 동료들의 50% 가까이가 그때 도산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의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코로나19가 일본에서 확산하면서 집 안에서 해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으로 ‘한국 라면’이 널리 인기를 얻었다. 그는 “한류 스타들의 인기가 매우 높아지면서, 한국 음식을 먹는 장면들이 일본 미디어에 많이 노출돼 인기가 배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0년대 초만 해도 한국 농식품은 일본에 있는 한국 사람만 먹었다”며 “지금은 한국 농식품 수요가 늘면서 연합회 소속 회원사들의 2022년 추정 매출액이 약 1조원에 달할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