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영 지시울양조장 대표가 양조장 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유소영 지시울양조장 대표가 양조장 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강원도 춘천에 있는 지시울양조장의 신상 술인 ‘화전일취, 백화’가 전통주 업계에서 화제다. ‘화전일취, 백화’는 이 양조장이 2022년 7월 서울 강남의 코엑스에서 열린 주류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인 술이다. 쌀을 원료로, 소줏고리에 내린 전통 소주를, 발효 중인 약주에 첨가한 과하주다. 과하주는 ‘여름에 빚어 마시는 술’ 혹은 ‘여름이 지나도록 맛이 변하지 않는 술’이란 뜻으로, 무더운 여름철에, 술이 상하지 않도록 약주(쌀 발효주)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를 섞은 술을 말한다. 

지시울양조장의 ‘화전일취, 백화’는 제조법(발효 중인 약주에 소주를 넣어, 약주보다 달고, 도수가 높은 술)으로는 과하주이지만, 재료로 보면 ‘백화주’다. 조선시대 처음 만들어진 술, 백화주란 ‘100가지 꽃을 넣은 술’이란 뜻으로 꼭 100가지 꽃이 아니더라도, 많은 꽃을 넣은 술을 백화주라 했다. 

지시울양조장의 ‘화전일취, 백화’에는 20종의 말린 꽃을 넣었다. 요즘도 술 교육기관에서 옛 문헌을 토대로 백화주를 빚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지시울양조장처럼 상업 양조장에서 백화주를 출시한 경우는 거의 없다. 술에 꽃잎을 넣더라도 꽃향기를 제대로 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화주의 시장 반응은?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 2022년 7월 첫선을 보인 ‘화전일취, 백화’는 진작부터 ‘없어서 못 파는 술’로 등극해, 전통 주점에서 서로 가져가겠다고 난리라고 한다. 그러나 생산량이 많지 않아 맛을 본 행운아들은 아직 많지 않다. 

‘화전일취, 백화’를 마신 첫 느낌은 한마디로 ‘꽃밭’이었다. 백화주를 조금 입에 머금고 있으니, 한때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았던 만화책 ‘신의 물방울’이 떠올랐다. 와인 한모금 들이켜면 세상이 갑자기 온갖 꽃이 피어있는 꽃밭으로 둔갑하는 순간을 그 만화책은 흔하게 묘사했다. 조금 과장이긴 하지만, 화전일취, 백화를 마신 순간이 딱 그랬다. 

‘화전일취, 백화’를 만드는 지시울양조장은 춘천에 있다. 양조장이 있는 옛지명(지시울)을 따서 양조장 이름을 지었다. 춘천에서 생산되는 멥쌀로 밑술을 만들고, 찹쌀로 덧술을 만들어 이양주로 술을 빚는다. 술 이름은 모두 ‘화전일취’다. 막걸리(화전일취 12도), 약주(화전일취 15도), 과하주(화전일취 백화 18도) 그리고 증류주(화전일취 38도, 52도 두 종류)가 있다. 화전일취 술은 모두 밑술과 덧술 재료인 멥쌀, 찹쌀, 누룩, 정제수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술 재료와 똑같다. 감미료 같은 첨가물은 일절 넣지 않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양조장은 재료뿐 아니라, 술 빚는 법 역시 우리 조상이 만들었던 그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는 사실이다. 옛 문헌에 나와있는 제법 그대로 백화주를 만들어 상품화했고,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소줏고리 방식으로 술을 증류해 소주를 만든다. 

1 유소영 지시울양조장 대표가 소줏고리 증류기를 설명하고 있다. 2 지시울양조장 백화주에 들어가는 꽃잎들을 술항아리에 담은 모습. 사진 박순욱 기자·지시울양조장
1 유소영 지시울양조장 대표가 소줏고리 증류기를 설명하고 있다. 2 지시울양조장 백화주에 들어가는 꽃잎들을 술항아리에 담은 모습. 사진 박순욱 기자·지시울양조장

왜 소줏고리를 사용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소영 대표는 “소줏고리를 쓰는 것은 동 증류기 등을 사용한 것보다 술맛과 향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소줏고리로 술을 내렸기 때문”이라며 “지시울양조장의 정체성은 철저히 전통 방식 그대로 술을 빚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의 술 스승은 서울 효자동에 있는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다. 박 소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주 전문가다. 유 대표는 스승으로부터 누룩을 시작으로, 밥알이 동동 뜨는 동동주 만드는 것부터 배웠다. 박 소장이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거의 다 이수하는 데 거의 3년 걸렸다. 양조장 설립은 2020년 8월이었다. 이제 2년 조금 지난 신생 양조장이다. 박 소장은 제자인 유소영 대표에게 상업 양조를 권했다. ‘화전일취’라는 술 이름을 지어준 이도 박 소장이다. 화전일취는 조선 헌종 때 정학유가 지은 가사 ‘농가월령가’에 나오는 표현으로 ‘님도 꽃이요, 꽃도 꽃이니, 꽃 앞에서 함께 취하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술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스승이 평범한 주부인 제자에게 양조장을 차리라고 했을까. 

“선생님은 ‘술맛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했다. 약주도 그랬고, 나중에 소줏고리로 내린 소주도 맛 보고는 똑같은 칭찬을 했다. ‘가장 스탠더드(배운 대로 잘 따라 하는) 스타일의 제자’라고 했다.”

‘화전일취’라는 이름을 박 소장이 지어준 배경을 유 대표에게 물어봤다. “우리가 술을 따질 때, 향이 좋은 술, 맛이 좋은 술, 색이 좋은 술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으뜸은 향이 좋은 술이라고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꽃을 넣진 않았지만 향이 좋은 술을 빚어라’는 의미에서 화전일취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걸로 이해했다. ‘꽃향기가 나는 술을 빚어라’는 의미 아니겠나. 굳이 꽃을 넣지 않더라도, 쌀로 빚은 순곡주에도 얼마든지 꽃향이 날 수 있다. 화전일취 이름을 받은 것은 양조장 설립 전인 2019년 1월이었다.”

지시울양조장 술의 또 다른 특징은 산미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단맛은 살짝 있다. 단맛이 도드라지는 정도는 아니다. 유 대표는 “향기가 좋고 산미가 덜 나게 하기 위해 세미(쌀 씻기), 침미(쌀 불리기), 방랭(발효 중인 술 식히기) 이 세 가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소줏고리에 관한 질문을 했다. 지금껏 양조장을 많이 가봤지만 소줏고리 증류를 고집하는 양조장은 이곳이 처음이다. “소줏고리 역시 그렇게(우리 선조들은 전통 소주를 소줏고리에 내렸다) 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굉장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니고, 배운 술이 이것(소줏고리 증류)이기 때문에 지금도 소줏고리 증류를 할 뿐이다. 술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른 사람과 다소 차이가 있다. 요즘 사람은 현대적 방법을 써서 쉽게, 빨리, 맛있는 술을 그것도 많이 만들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전통주를 만드는 방법은 옛날 사람이 했음직한 바로 그 방법이다. 우리 양조장의 정체성이 바로 그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내가 추구하는 방식의 술이라는 게, 현대적인 방식으로 빨리, 쉽게, 많이 만들 수 있는 게 없다. 옛날 선조들이 했음직한 제조 방식을 가능하면 훼손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동 증류기보다 좀 더 힘이 들더라도 옹기로 만든 소줏고리로 증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