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이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신성장 동력 발굴’과 ‘고객 신뢰 확보’를 주문했다. 올해 글로벌 경기 침체와 수출 부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심화 등으로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위기 속에서 도약의 기회를 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동시에 총수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도 빠트리지 않았다.

 

“혁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올해 총수들의 신년사에서는 ‘위기’라는 키워드가 빠지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총수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기존 틀을 깨는 ‘기술력 강화’와 ‘조직 문화 개선’이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월 3일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코로나19 여파에 금리와 물가가 상승하고, 환율 변동 폭이 커졌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해지며 경제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다”며 돌파구로 소프트웨어를 제시했다.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소프트웨어가 중심인 자동차’로 전환하겠다”고 한 것이다. 정 회장은 “보다 완벽한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를 만드는 역량을 확보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며 “소형모듈원자로(SMR) 같은 에너지 신사업 분야로의 확장을 추진하고, 스마트 물류 솔루션 육성에 박차를 가해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을 지속 확보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전자 회사 같은 꼼꼼한 문화를 강조하는 등 조직 문화 쇄신도 주문했다. 이날 신년회는 현대자동차그룹 최초로 정 회장과 사장단이 직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1월 2일 수원 삼성디지털시티에서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과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과 임직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무식을 했다. 한 부회장은 경계현 사장과 공동으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경영 체질과 조직 문화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미래를 위해 더 과감하게 도전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 부회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세상에 없는 기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하고,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인 품질력을 제고하고, 고객의 마음을 얻고 차별화한 경험을 제공해 기술 경쟁력 확보에 전력을 다하자”고 당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이날 신년사에서 올해를 영구적 위기의 시대로 규정하고 “해묵은 습관을 되돌아보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 ‘새로운 롯데’를 만들자”고 말했다. 이어 기업 문화와 관련해서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젊은 리더십과 외부에서의 새로운 시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글로벌 메이저 사업으로 키워나가자”고 했다. 이어 “미래 지향적 경영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가 인체라면 항공업은 동맥”이라며 “올해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큰 과제를 완수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이를 외면한다면 대한민국 항공 업계가 위축되고 우리의 활동 입지 또한 타격을 받는다”고 했다. 


‘고객에게 광적으로 집중’

고객 중심 경영은 올해도 반복됐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고객과 상품·서비스에 광적으로 집중해야 다가오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신세계백화점 본점 확장, 이마트의 업그레이드한 통합 멤버십 론칭 등으로 충성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12월 20일 신년사를 발표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한 단계 발전한 ‘고객 가치 경영’을 예고했다. 그는 더 높은 고객 가치에 도전하는 구성원을 ‘고객 가치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며 “우리 고객은 LG의 이름으로 고객 감동을 만들어 가는 여러분이며, 모든 고객 가치 크리에이터 한 분 한 분이 고객 감동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만드는 고객 가치”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의 실천과 도전이 인정받고 더 큰 기회와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수년간 트렌드로 떠오른 ESG 경영도 강조됐다. 한종희 부회장은 “올해는 ‘신(新)환경 경영 전략’을 본격화하는 원년이므로 친환경 기술을 우리의 미래 경쟁력으로 적극 육성하고, 삼성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내일을 만드는 것이 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정의선 회장도 “지속 가능 미래를 위한 올바른 행동(The Right Move for the Right Future)이라는 그룹의 사회 책임 메시지에 걸맞게 환경을 생각하고 서로 상생하고 협력하며 인류와 함께 성장하는 모범적인 기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이미 알려진 위기는 더는 위기가 아니며, 위기라는 말에는 기회의 씨앗이 숨어 있다”며 “100년 기업으로 영속하기 위해서는 ESG 가치 제고와 조직 문화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Plus Point

경제 6단체장 신년사
“노동·규제 개혁해야…국민·정치권·기업 원팀 되자”

왼쪽부터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사진 각 사·조선일보 DB
왼쪽부터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사진 각 사·조선일보 DB

“노동·규제 개혁으로 경쟁국들과 동등한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제 6단체장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정부와 국회에 한목소리로 촉구한 것은 ‘경제 구조 개혁’이었다.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국민과 정치권, 기업이 ‘원팀’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12월 29일 신년사에서 “개혁 과제를 일관성 있게 추진해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기업의 경영 활동 영역을 사전에 폭넓게 인정하되 그에 따른 책임은 사후에 묻는 규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며 “경쟁국들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우리나라의 법인·상속세율은 투자 기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 회장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기업 정규직 과보호에 집중된 제도와 관행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보고, “경직된 노동 시장 규제를 해소해 시장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자열 한국무역협회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하는 규제나 제도의 개선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정부에 건의하고, 우리 기업들이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얻도록 교역 상대국과 협력 활동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우리나라는 성장과 퇴보가 갈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하며 “‘환부작신(換腐作新·썩은 것을 도려내 새것으로 바꾼다)’의 자세로 전방위적 구조 개혁을 추진해 글로벌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효과적인 정책을 정부에 제안해 중소기업의 경제 위기 대응력을 높이겠다”며 주 52시간제 유연화 등 다양한 규제 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중견기업 경영 애로를 가중하는 법·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곧 대한민국 경제의 근본을 강화하는 일”이라며 ‘중견기업 특별법’의 상시 법화와 전면 개정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주형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