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 수도산와이너리 대표 프로 복서 출신, 2001년부터 산머루 재배, 2006년 와인 생산 / 백승현 수도산와이너리 대표가 와인 브랜드 ‘크라테(Krate)’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백승현
수도산와이너리 대표 프로 복서 출신, 2001년부터 산머루 재배, 2006년 와인 생산 / 백승현 수도산와이너리 대표가 와인 브랜드 ‘크라테(Krate)’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자연의 링에서 한국 와인 시장의 챔피언이 되겠다.”

프로 복서 출신의 양조장 대표가 2021년 대한민국 주류대상 한국 와인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화제의 주인공은 경북 김천의 와인 양조장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 고교 시절부터 권투를 한 백 대표는 프로 복서와 보안 업체 직원 등을 거쳐 1998년 외환위기 때 고향인 김천으로 내려왔다.

귀농인으로 변신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부모님이 담뱃잎을 키우던 1만6500㎡(5000평) 밭에다가 2001년부터 산머루를 키운 것이다. “산머루로 제대로 된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는 게 산머루를 심은 이유였다. 산머루밭이 해발 1300m 수도산 자락에 있어 양조장 이름을 ‘수도산와이너리’라고 지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고, ‘한국 와인 챔피언이 되겠다’는 그의 약속은 올해 드디어 이뤄졌다.

지난 2월 대한민국 주류대상 주최 측인 조선비즈로부터 “수도산와이너리 와인이 한국 와인 부문에서 최고상(Best of 2021)을 받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십 종이 출품된 한국 와인 가운데 최고점을 얻은 제품은 수도산와이너리가 출품한 2017년산 ‘크라테 세미 스위트’ 와인이었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3길 29에 자리한 수도산와이너리 산머루밭의 특징은 줄지어 선 나무가 죄다 투명 비닐우산을 받치고 있다는 사실. 외국 와이너리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백 대표는 “여름철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추려고 비닐우산을 씌웠다”고 말했다. 비를 많이 맞은 과실은 수분이 많아져 당분 함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당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햇빛은 최대한 받게 하려고 투명 비닐을 사용했다. ‘여름철 강우량이 많아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기 부적합하다’는 한국 기후 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당도 높은 좋은 와인을 만들려는 그의 노력은 이뿐이 아니다. 9월 초면 다 익는 산머루를 곧바로 따지 않고 10월 중순까지 내버려 뒀다가 서리를 한두 차례 맞힌 뒤에야 수확한다. 이러면 산머루 열매의 수분이 증발해 열매가 쭈글쭈글해진다. 수분이 줄어드는 만큼 전체 생산량은 줄지만, 열매 자체의 당도는 훨씬 높아진다. 한국 와인의 ‘치명적 단점’인 보당(설탕 첨가)을 가급적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자연 건조를 통해 산머루 열매를 농축시켜 당도를 높이는 것은, 수확한 포도를 건조해 와인을 만드는 이탈리아 ‘아마로네 와인’과 유사하다.


수도산와이너리의 다양한 와인. 사진 수도산와이너리
수도산와이너리의 다양한 와인. 사진 수도산와이너리

프로 복서 등 이력이 다양하다. 와이너리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고교 시절 아마추어 복싱을 시작했다. 제대 후 프로에 입문했다. 군대 다녀오고 나서 술·담배를 하니까 몸이 이전만 못하고 사람이 나태해지더라. 결국 권투를 그만두고 보안 업체 경호원으로 취직했다. 3년 6개월 동안 근무하다가 외환위기 이후 고향인 김천으로 돌아왔다. 2년 정도 뭐할까 방황하다가 부모님 밭에 산머루를 심기 시작했다.”

산머루를 심은 이유는.
“산머루, 오미자, 다래 등이 지천으로 자라는 지역이다. 부모님께 ‘산머루를 재배해 술을 만들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본격적인 산머루 재배는 2001년부터 했고, 2004년부터 와인 공부를 시작했다. 와인은 2006년산이 처음이다.”

산머루를 와인의 주재료로 삼은 이유는.
“산머루는 해발 300m 이상 돼야 잘 자란다. 이곳 와이너리는 500m 이상이다. 산이 없는 김천 시내에서 자란 산머루로 와인을 담가 보니까 좋은 술이 안 나오더라. 산머루는 산포도라 부르는 토종 품종이다. 아시아종(비티스 아무렌 시스 계통)인데,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산머루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머루로 레드와인을 빚으면 색상이 일반 포도 와인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색이 워낙 진해 옛날에는 산머루를 염색 재료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농촌진흥청에서 성분 검사를 해보니 모든 성분이 산머루가 포도보다 7~10배 많은 거로 조사됐다.”

산머루도 양조용으로는 당분이 모자랄 텐데 어떻게 해결했나.
“산머루도 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리면 당도가 낮아진다. 그래서 당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생산량을 많이 줄였다. 응축된 산머루를 생산하기 위해 단위 면적당 나무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한 그루당 수확량은 2㎏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한 당도가 보장되지 않아 수확기에 산머루를 따지 않고, 서리가 한두 차례 내릴 때까지 기다린다. 수분이 빠져 열매가 쭈글쭈글하게 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한다.”

산머루는 껍질이 얇아서 타닌이 적고 보디감(와인을 입안에 머금었을 때 느끼는 무게감)도 약하다.
“보디감을 높이기 위해 산머루 줄기를 다 제거하지 않고 일부를 남겨 같이 발효시킨다. 일반적으로는 줄기를 제거하고 열매만 압축한 뒤 발효 과정을 거친다. 또 숙성 과정에서 오크통을 쓰면 보디감이 다소 올라간다. 오크통에서 3년간 숙성한 뒤 병입하는 이유가 보디감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1년 숙성한 것과 3년 숙성한 것의 보디감은 큰 차이를 보인다.”

와인 브랜드 ‘크라테’는 어떤 의미인가.
“2007년 주류 제조 면허를 따면서 와인 브랜드를 ‘크라테(Krate)’로 정했다. 크라테는 화산분화구(Crater)와 한국 술(K)을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이곳 지형이 분화구를 닮았다. 산머루가 토착 품종이라 한국 술임을 강조했다.”

3년간 숙성을 거쳐 병에 넣는 이유는.
“숙성을 오래 할수록 술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3년간 오크통 숙성 후 맛을 보고 나서 문제없으면 병입하지만, 다소 부족하면 병입 시기를 더 늦춘다. 병입하고도 최소 6개월은 지나야 시장에 내보낸다.”

앞으로 계획은.
“안방(국내 와인 시장)에서 먼저 제품력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와인 공부를 꾸준히 해서 좀 더 좋은 와인을 만들겠다. 그런 후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산머루 와인 크라테를 수출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파리의 심판(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시음회. 예상과 거꾸로 캘리포니아 와인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 행사를 해보고 싶다. 같은 빈티지의 프랑스 고급 와인과 당당히 겨뤄보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프랑스 수출도 어렵지 않을 거로 본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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