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부품, 화학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견기업 켐트로닉스 창업주 김보균 회장의 장남인 김응수 부사장이 올 1월부터 공동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리면서 ‘2세 경영’의 문을 열었다. 그는 2014년부터 자율주행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자율주행 사업부를 진두지휘하는 등 선제적으로 사업 기반을 다져 놨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아버지와 공동 대표에 오른 것은 자율주행 시대 개막이 임박하면서 그 공을 인정받은 것이란 분석이다.

1983년 신영화학으로 설립된 회사는 2000년 11월 ‘화학(chemistry)’과 ‘전자(electronics)’를 합친 현재 상호 켐트로닉스로 이름을 바꿨다. 삼성전자에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용 터치 스위치 납품을 시작하는 등 전자부품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2007년에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2021년 매출 5634억원, 영업이익 385억원을 올렸으며 올해는 각각 5889억원, 266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켐트로닉스 관계자는 “스마트폰, 가전 등 전방 산업 수요가 줄었고 원자재 가격으로 비용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특히 신사업인 자율주행 부문의 매출 기여도가 커지고 있는 데 고무적인 분위기다. 아직 매출의 한 자릿수 비중에 불과하지만 2019년 17억원, 2020년 116억원, 2021년 202억원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올해도 3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이 자율주행 사업에서 나올 전망이다.

켐트로닉스가 자율주행 사업을 본격 모색했던 건 2013년부터다.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에 집중된 매출 구조를 다각화하고,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로 미래 성장 사업을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켐트로닉스는 자동차와 사람, 사물 등이 연결되는 V2X(Vehicle to Everything) 관련 통신 모듈(부품 덩어리), 단말기 세트,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술·제품을 종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대구, 판교, 새만금, 세종 등의 지방자치단체 V2X 사업에 이어 올해 2월 국토교통부 주관의 수도권·경부선 815㎞ 구간 인프라 구축 본사업에도 참여했다. 정부가 이르면 내년 자율주행 통신 인프라 표준을 C-V2X(LTE·5G 이동통신망 이용)로 할지, 웨이브(근거리전용 무선통신을 통한 차량 간 직접 통신 방식)로 할지 정하고, 고속도로 2300㎞ 구간에 기지국 설치 사업을 벌인다면 먹거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켐트로닉스 측은 “C-V2X, 웨이브 중 어떤 것이 표준으로 선정되더라도 하이브리드로 모든 단말기, 소프트웨어를 납품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V2X 통신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카메라 기반의 자율주행 센서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2020년 카메라 센서 기술을 보유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전문업체 비욘드아이를 인수한 것이 바탕이 됐다. 3분기 말 665억원에 달하는 현금(현금성 자산 포함)을 실탄으로 보유하고 있어 자율주행 관련 추가 투자 가능성도 점쳐진다.

SK㈜ C&C를 거쳐 켐트로닉스에 합류한 김 부사장은 일찌감치 소프트웨어로의 다각화를 주장해왔다. 3분기 말 현재 지분 4.53%로 최대 주주 김 회장(13.36%)에 이은 2대 주주다. 김 회장의 차남인 김응태 전무의 지분은 4.3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현재 김 전무는 김 회장과 함께 핵심 자회사인 위츠 공동 대표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위츠는 삼성전기 무선 충전 사업을 양수하면서 설립된 곳이다.


자율주행 통신을 위한 하드웨어 OBU(차량 탑재)와 이동식 RSU(인프라 탑재). 사진 켐트로닉스
자율주행 통신을 위한 하드웨어 OBU(차량 탑재)와 이동식 RSU(인프라 탑재). 사진 켐트로닉스

포토레지스트 핵심 원료, 내년 말 본격 양산

매출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화학사업부는 크게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등에 사용되는 전자용 용매 그리고 페인트·농약·세정제 등에 사용되는 공업용 용매 제품을 수입, 정제, 유통해 납품한다. 올해 초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PR)의 핵심 원료 ‘프로필렌글리콜 메틸에테르 아세트산(PGMEA)’을 초고순도(순도 99.999%)로 생산하는 데도 성공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의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에 쓰이는 핵심 재료인 포토레지스트는 2019년 일본이 한국으로 수출을 규제한 핵심 소재 3종 중 하나다. 이런 성과 역시 김 부사장의 공동 대표 체제 개막과 맞물려 나왔다.

켐트로닉스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PG MEA 제조 공장을 완공하고, 내년 말부터 본격 양산하는 게 목표”라며 “국내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등 수요가 생각보다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2027년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 韓…차량 통신 표준은 아직 못 정해

정부는 2027년 레벨4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자체적으로 수많은 센서와 연산력을 갖췄다 해도, 눈·비·안개 등으로 가시성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어린이, 자전거 등이 갑자기 도로에 뛰어드는 돌발 상황 대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로 주변, 전후방 상황에 대한 인지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V2X 기술이다. V2X는 차량이 주행하면서 도로 전반의 인프라를 비롯, 다른 차량과 지속적으로 통신하며 교통 정보와 물체, 차량 접근 정도, 추돌 가능성 등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55만 대 수준이었던 V2X 장비 탑재 차량은 2026년 2877만 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V2X 시장 규모 역시 2028년 73억5200만달러(약 9조535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V2X 기술은 통신 유형에 따라 웨이브, C-V2X 방식 두 가지가 있다. 웨이브가 인프라(V2I) 또는 다른 차량(V2V)과 직접 통신하는 방식이라면, C-V2X는 LTE·5G 같은 이동통신망을 이용해 정보를 전송하는 V2N(Vehicle to Network) 방식을 택하고 있다. 웨이브 방식의 표준을 주장해 온 국토부는 최근 전향적으로 V2N을 병행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C-V2X 방식이 구축 비용, 커버리지(서비스 가능 구역), 초저지연, 전송 속도 등에서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 기술은 현재 실증 중이며, 이르면 내년 말 표준이 확정될 전망이다. 

5G 포럼 진행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경희 인하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아직 완전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지 않은 것은 고속도로가 아닌 도심 밀집 지역에서의 어려움 때문”이라며 “네트워크가 이미 잘 깔린 우리나라는 이동통신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