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K푸드 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한국 음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지난 7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K푸드 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한국 음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10월 19일(이하 현지시각) 찾은 프랑스 파리 1구 생트안느가(街). 식당과 식료품점이 늘어선 이곳에선 한 손에 삼각김밥을 든 프랑스인과 쉽게 마주쳤다. 같은 골목의 한인 마트 에이스마트는 삼각김밥과 김, 김치는 물론 새송이버섯 등 신선 농산물까지 구비해 한국의 슈퍼마켓을 옮겨놓은 듯했다.

에이스마트를 자주 찾는다는 플로린 볼테르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삼각김밥을 사 먹게 됐다”면서 “김밥은 기름지지 않고 건강에 좋은 편이라 지날 때마다 들러 사 먹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엔 한인 마트가 아닌 프랑스 마트에서도 한국 식료품을 살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 음식이 비빔밥과 불고기로 대표되는 시대는 지났다. ‘미식의 나라’로 불리는 프랑스에서도 김과 김치 등 한국의 가공식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식당에서 맛본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수요가 늘면서 간장, 고추장 같은 장류 수출마저 지난해 전년 대비 80% 증가했다.

한국농식품유통공사(aT) 파리지사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의 한국산 농식품 수입액은 4479만달러(약 581억원)로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 라면 등 면류가 수입액 중 가장 많은 38%를 차지했고, 이어 조제·보존 처리한 과실 및 견과류로 분류되는 김이 24%로 뒤를 이었다.

특히 김의 경우 지난해 913만달러(약 118억원)를 수입해 전년 대비 47% 증가했다. 김치가 포함된 ‘조제·보존 처리한 채소류’는 3.7%를 차지했지만, 수입액을 기준으로 23%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고추장, 간장으로 대표되는 한국산 소스류 수입액은 80% 늘었다.

하정아 aT 파리지사장은 “과거 K팝이 인기 있을 당시만 해도 일부 젊은층의 선호 정도에 그쳤지만, 최근 드라마 등이 인기를 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한식당을 찾고, 한식당에서 먹은 음식을 직접 만들기 위해 식재료를 구매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식당은 이미 파리의 주류 음식점이 된 채였다. 프랑스 파리 1구 생트안느가에만 20여 개 한식당이 있었다. 프랑스 현지 한인 매체인 ‘한위클리’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파리 내 한식당은 200여 곳 수준으로 집계됐다. 2019년 말의 두 배로 늘었다.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는 김일무씨는 “과거 파리에선 한식당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제는 먹는 게 어려운 일이 됐다”면서 “한국식 고기를 파는 곳 등 인기 있는 식당은 점심, 저녁 시간 가릴 것 없이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실제 파리 오페라극장 인근에 있는 한식당 ‘온더밥’에는 점심시간을 앞두고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떡볶이, 순살치킨, 김치볶음밥, 튀김 등을 15~20유로(약 2만~2만7000원)에 즐길 수 있어, 현지인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온더밥 관계자는 “떡볶이를 이미 알고 와서 주문한다”고 말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기반을 둔 한국산 농식품의 가격 경쟁력도 프랑스에서 한국산 농식품 인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은 2009년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연합(EU)과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먼저 FTA를 타결했다. 이후 2년여 만인 2011년부터 관세 철폐 등을 발효했다.


프랑스 파리 한 한인 마트를 찾은 시민이 삼각김밥을 손에 들고 있다. 사진 배동주 기자
프랑스 파리 한 한인 마트를 찾은 시민이 삼각김밥을 손에 들고 있다. 사진 배동주 기자

애초 농·축·수산물 분야는 개방의 파고로 인해 타격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한국 식품의 인기를 타고 수출 증가의 밑거름이 돼주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로 수출되는 주요 농식품인 라면·김·김치 등은 모두 한·EU FTA 협정 세율로 무관세(0%) 수출할 수 있다.

이에 힘입어 한국 농식품은 프랑스 백화점에도 들어갔다. 파리에서 가장 큰 백화점 중 하나인 르봉 마르셰 백화점 식품관에는 ‘코레(Corée·프랑스식 한국 표기)’라 적은 별도 식품 코너가 자리했다. 지난 7월에는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도 김과 김치, 고추장이 들어갔다.

르봉 마르셰 식품관에 한국 식품을 공급하는 지주연 리앤코 대표는 “2019년 20년 만에 식품관 개편을 진행했던 르봉 마르셰가 한국 식품을 넣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면서 “파리 내 20여 곳에 매장을 갖춘 고급 식료품점인 에피스리핀에도 김과 고추장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한국산 농식품의 인기는 가공식품을 넘어 신선 농산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특히 새송이버섯이 ‘고기 같은 식감, 고소한 풍미’를 앞세워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인 마트는 물론 프랑스 현지 대형마트에서도 한국산 새송이버섯을 구매하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김수정 에이스마트 매니저는 “새송이버섯은 신선 식품 코너에 들여놔야 하는 인기 상품 중 하나”라면서 “양송이버섯 정도만을 소비했던 프랑스 사람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aT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의 한국산 버섯류 수입액은 85만달러(약 11억원)로 32% 늘었다.

최근에는 배, 포도 등 과일의 프랑스 수출도 타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2022 파리 국제식품박람회(SIAL 2022) 한국관에는 지역영농조합, 농산물 유통 업체 등 일곱 곳에서 배와 샤인머스캣(포도 품종)을 선보였다. 현지 바이어를 찾고, 프랑스 등 유럽으로 수출을 위해서다.

농산물 유통 업체 GG팜 관계자는 “농산물도 동일하게 한·EU FTA 협정 세율로 무관세 적용을 받는다”면서 “샤인머스캣의 경우 항공 운송을 해야 해 가격이 비싸지만, 최근 한국 식품에 대한 인기가 전에 없이 높은 만큼 11월부터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하정아 aT 파리지사장
“한국산 농식품 인기 이제 시작”

하정아 한국농수산 식품유통공사(aT)파리지사장 사진 배동주 기자
하정아 한국농수산 식품유통공사(aT)파리지사장 사진 배동주 기자

세계 최대 규모 식품 박람회인 ‘파리 국제식품박람회(SIAL 2022)’가 한창이던 10월 17일 현장에서 만난 하정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파리지사장은 “유럽은 이제 칼칼한 고추장 소스와 물컹거리는 떡의 질감까지 즐기기 시작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aT 파리지사는 한국산 농식품 부문 유럽 시장 유일의 수출 지원 창구로 통한다. 유럽 물류 기지로 꼽히는 네덜란드에서 2013년 말 유럽 소비 시장의 중심인 프랑스로 위치를 옮겼다. SIAL에 한국관을 열고, 별도의 ‘K푸드 페어’를 여는 등 K푸드 홍보·마케팅도 겸한다.

하 지사장은 “2020년 2월 처음 파리지사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 음식에 대한 인지도는 비빔밥이나 불고기 정도에 그쳤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파리서 한식당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게 됐고, 현지 마트에서 김과 김치를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 지사장는 K팝의 인기 이후 영화, 드라마 등으로 이어진 이른바 K콘텐츠의 인기가 K푸드의 인기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음악과 달리 영화와 드라마에는 음식이 반드시 등장하고 그걸 본 현지인이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K푸드에 대한 관심은 aT 파리지사가 지난 7월 파리 루브르 박물관 지하 컨벤션센터에서 주최한 ‘2022 파리 K푸드 페어’에서도 확인됐다. 해당 행사는 우리 수출 기업의 유럽 시장 개척을 위해 aT가 파리에서 코로나19 이후 개최한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였다.

하 지사장은 “행사가 시작되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루브르 박물관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대기 줄보다 더 길게 늘어섰다”면서 “사전 예매 티켓 4000여 장이 팔렸고, 현장에 7000여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입장을 중단시켜야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K푸드 페어는 상업적 성과도 냈다. 유럽 13개국 51개 사 바이어와 270여 건의 상담이 진행됐고, 총 4000만달러(약 519억원)의 수출 상담 성과를 거뒀다. 떡볶이, 소스류, 한식 밀키트 등에 관한 양해각서(MOU) 계약 7건이 현장에서 체결되기도 했다.

하 지사장은 한국 농식품이 인기에 부합하는 품질 및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고 있다. 호기심에서 찾은 한국 음식에 빠지고, 이를 집에서도 직접 만들어 먹고자 하는 수요 덕에 대형마트 등으로의 한국산 농식품 입점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상반기 유럽 국가에 수출된 한국산 농식품은 4억2644만달러(약 5531억원)어치였다”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선 29% 증가했고,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이전인 2019년 상반기보다는 무려 50% 늘었다”고 말했다.

aT 파리지사는 대형마트에서의 한국산 농식품 판촉 지원을 재개, ‘K푸드 프로모션’에 다시 나선다는 방침이다. K푸드 프로모션은 aT 파리지사가 현지 전문 식품 벤더사로 예산을 배정해 한국 농식품의 판촉을 간접 지원하는 사업이다.

하 지사장은 한국산 농식품의 수출 규모는 물론 품목까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당장 새송이버섯이 프랑스 현지에서 인기를 끌면서 파리 외 2선 도시 개척에 나선 유통사가 등장했다”면서 “한식당에서 파는 한국 맥주도 새로운 인기 품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