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뉴욕 맨해튼 풀턴스트리트의 한 동네 마트에 한국 김치가 진열돼 있다. 사진 이현승 기자 2 미국 월마트에 진열된 풀무원 김치. 사진 풀무원3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시티 오브 인더스트리에 있는 대상 LA 공장. 사진 대상
1 미국 뉴욕 맨해튼 풀턴스트리트의 한 동네 마트에 한국 김치가 진열돼 있다. 사진 이현승 기자 2 미국 월마트에 진열된 풀무원 김치. 사진 풀무원3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시티 오브 인더스트리에 있는 대상 LA 공장. 사진 대상

미국 뉴욕 관광명소 브루클린 브리지가 한눈에 보이는 로어맨해튼(lower manhattan) 풀턴스트리트의 항구 피어17. 이곳 동네 마트 55 풀턴 마켓(55 fulton market)에 들어서자 입구의 신선식품 진열대 상단에 ‘KIMCHI’라고 쓰인 제품들이 나란히 진열돼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울식 김치’ ‘100% 자연 발효된(100% natural fermented)’이라는 설명이 쓰인 일부 제품에 멸치 액젓(anchovy extract), 생선 소스(fish sauce)가 들어가 있다는 원재료 표기가 돼 있었다. 그동안 김치 제조업체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소비자들이 비릿한 맛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액젓을 뺀 비건(vegan·채식) 김치를 주로 판매해왔다.

그러나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 장벽이 낮아진 가운데 한류(韓流) 열풍, 코로나19 등이 몰고 온 발효음식 재평가로 ‘진짜 한국식 김치’를 맛보고 싶어 하는 현지 소비자들이 늘면서 국내 기업의 김치 수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FTA로 김치 관세 11.2% 철폐…대상·풀무원 등 수출 급증

11월 7일(이하 현지시각) 찾은 뉴욕의 한 H마트. 한국인이 설립한 아시안 식자재 마트이지만 매장 내에서 백인과 유색인종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장바구니를 든 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진열된 물건을 유심히 살피는 사람들이 보였다.

장바구니에 대상의 김치 브랜드 종가(Jongga) 배추김치를 담은 미국인 남녀에게 김치를 먹어본 적이 있냐고 묻자 “한식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김치는 처음”이라며 “유명 요리 유튜버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는 영상을 보고 궁금해서 사봤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대미(對美) 김치 수출은 FTA 발효 전인 2011년 280만달러(약 37억원)에서 작년 2800만달러(약 366억원)로 10배 증가했다.

FTA 발효에 따라 수출 김치에 붙던 11.2%에 달하는 관세가 철폐된 덕분이다. 김치 수출량에서 미국 비중은 FTA 발효 전 평균 2.6%에서 FTA 이행 6~10년 차 평균 13.8%로 상승했다.

FTA 체결 전까지 미국에서 주로 현지 업체들이 소규모 공장에서 미국산 농산물로 액젓 없이 담근 김치가 팔렸다면 교역 환경이 개선되고 한국 음식에 대한 현지인의 관심이 늘면서 국내 대기업의 수출이 증가했다.

대상, 풀무원은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와 주(州)와 카운티 단위로 운영되는 동네 마트에 김치를 납품하고 있다.

대상의 김치 브랜드 종가의 미국 수출액은 작년 1617만달러(약 212억원)로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지난 3월에는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200억원을 투입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1만㎡(약 3000평) 규모의 김치 공장을 완공해 가동에 들어갔다.

풀무원은 미국에 김치를 수출한 첫해인 2019년 매출이 12억원에 불과했으나 2020년 100억원을 넘은 데 이어 올해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할 전망이다.

그동안 비건 김치를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다 지난 5월부터 월마트 400개 매장에 새우젓을 베이스로 깔끔한 맛을 낸 젓갈 김치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전북 익산 김치 공장에서 담근 김치를 미국에 수출해 한국 본토의 맛을 전파한다는 포부다.

모건 리(Morgan Lee) 풀무원 마케팅 PM(product manager)은 “미국 마트에 (같은 절임 채소인) 피클과 함께 김치가 진열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김치를 활용한 햄버거, 핫도그 등을 소개함으로써 김치가 자연스럽게 현지인 입맛에 녹아들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BTS가 작년에 공개한 자체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다. 사진 V라이브
BTS가 작년에 공개한 자체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다. 사진 V라이브

‘김치의 날’ 제정하는 美…한류 덕에 김치 국적 논란서도 승기

미국에선 매년 11월 22일을 ‘김치의 날(kimchi day)’로 공식 선포하는 주(州)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한국 정부가 2020년 법정기념일로 제정한 데 이어 작년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김치의 날 제정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뉴욕, 버지니아, 조지아, 텍사스 등 총 7개 주가 동참했다.

결의안에는 미국 현지에서 김치의 인기가 높다는 점, 김치의 역사, 건강식품으로서의 우수성과 함께 한국이 김치의 종주국이라는 점이 명시됐다. 일부 중국인이 주장하는 ‘김치 중국 유래설’을 전면 부인하는 한국의 노력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김치 국적 논란에서 한국이 승기를 잡은 데는 한류 영향도 크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BTS는 자체 예능을 통해 한국 김치를 비롯한 K푸드를 전 세계 아미(BTS 팬덤명)에게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BTS는 작년 6월 자체 예능에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함께 배추김치 겉절이, 파김치를 만들어 짜장라면과 수제비와 함께 맛보는 모습을 공개했다. 외국어 자막이 붙은 이 콘텐츠의 조회 수는 874만2893회.

이 영상에서 BTS 멤버 RM은 “김치엔 우리의 ‘소울(soul)’이 녹아있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우리 고유의 김치는 액젓과 새우젓을 쓴다. 우리 전통의 김치는 발효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김치가 한국 전통음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정한 대상아메리카 본부장은 “한류 덕을 크게 보고 있다”며 “특별히 고수하는 현지 김치 브랜드가 없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Plus Point

Interview 심화섭 aT 미주지역본부장
“고기·채소·김치 싸 먹는 韓 BBQ 문화 전파할 것”

11월 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aT 사무실에서 만난 심화섭 미주지역본부장. 사진 이현승 기자
11월 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aT 사무실에서 만난 심화섭 미주지역본부장. 사진 이현승 기자

“미국에서 외국인 거주 비율이 낮기로 유명한 버몬트주에서도 현지인들이 핫소스를 활용한 절임채소에 김치라는 이름을 붙여 건강식으로 섭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치에 대한 관심이 실제 수출 증대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 aT 사무실에서 만난 심화섭 미주지역본부장은 한·미 FTA가 발효된 후 김치 수출액이 10배 증가했으며 한류 덕분에 전망이 더욱 밝다고 내다봤다.

김치를 비롯한 K푸드에 대한 관심은 지난 6월 개최된 미국 최대 식품 박람회 ‘2022 서머 팬시 푸드 쇼(2022 summer fancy food show)’에서도 확인됐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개최된 현장 행사에 한국 업체 46개가 참여했고 스낵류와 음료, 소스류 30만달러(약 4억원) 규모의 계약이 이뤄졌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최근 몇 년 사이 긍정적으로 변해 이른바 ‘K프리미엄’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심 본부장은 말했다. 프라이팬에 한국산이라고 써 붙이면 잘 팔린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식품에 대해 ‘맛있다, 건강에 좋다, 믿을 수 있다’는 이미지가 미국 사회에 각인이 됐다”며 “주 소비층인 아시아계에는 고급 제품이라는 이미지도 구축돼 있어 중국계 미국인들은 현지에 중국 마트가 많은데도 한국 마트를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도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데 일조했다. 심 본부장은 “여전히 맨해튼은 사무실 복귀율이 50%가 안 된다”며 “재택근무가 길어지며 새로운 음식을 찾다가 한국 음식에 처음 입문한 사례가 많고 K무비,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상승 작용을 했다”고 설명했다.

aT는 한국산 농산물에 대한 현지 바이어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식 쌈, BBQ 문화를 전파하는 홍보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삼겹살과 마늘·버섯·김치 등을 함께 구워 상추, 깻잎 등 다양한 쌈 채소에 싸 먹는 문화를 널리 알리면 한국산 식재료 전반에 대한 소비 증대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