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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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해양 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액은 25억달러(약 3조2715억원)를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국내 어업(연근해어업·양식업· 원양어업·내수면어업) 총생산량은 375만6000t으로 집계됐다. 해양 산업이 발전하면서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 가는 어민과 기업 간 분쟁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너지 발전 기지 건설에 따른 어획량 감소 문제가 있다. 해안가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기지 등이 들어서면서 토사물이 바다로 쏟아지고, 이에 따라 해양 생물이 밀려나 어장이 황폐화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건설 공사에 앞서 환경 영향 평가를 진행, 직접적으로 타격받는 어민에게 어업 피해를 보상한다. 하지만 간접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에 대한 피해를 책정하는 데는 문제가 발생한다. 어민들은 ‘자신들의 생업에도 문제가 생겼다’며 피해를 보상하라는 반면 기업들은 ‘실제 공사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어민들에게까지 보상할 수 없다’고 맞서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경북 울진군 어민들(원고·법무법인 하나)과 한국가스공사(피고·법무법인 바른·이하 가스공사) 사이 손해배상 소송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을 심리한 법원은 최근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며 9년간에 걸친 1심의 결론을 냈다.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바른의 정인진 변호사와 김지희 변호사는 “(피해 영향) 감정인은 거액의 보수를 수령하기 때문에 상당수가 어민들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게 되고, 감정인이 어민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선례가 필요하다는 공사 측의 의견에 따라 강력하게 대응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민들 반발 “LNG기지 건설 탓 어업량 감소”

가스공사는 2010년 3월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와 노곡리 해상에 삼척 LNG 생산 기지를 건설하는 내용의 실시 계획을 승인받고 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토사가 바다에 유입되면서 해상으로 확산됐고, 인근 지역 어민들의 어업 생산량이 감소했다. 가스공사는 건설 공사에 따라 어업권이 사라지는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월천어촌계에 피해를 보상했고, 2011년에는 호산·작진·고포어촌계 등 어업 피해 지역 주민에게 56억원의 선급금을 지급했다. 그러자 경북 울진군 어민들이 반발했다. 공사장에서 부유물이 해류를 타고 울진군 쪽으로 넘어와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양 피해 조사를 위한 전문기관 선정을 두고 양측의 갈등이 커지자 어민 276명은 2013년 법원에 “삼척시 해상에 LNG 생산 기지를 건설하면서 어획량이 감소해 피해가 발생했다”며 가스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어민들은 “공사 과정에서 수인한도(受忍限度)를 초과해 부유 토사를 확산시켰고, 이로 인해 어장에서의 어획량이 감소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가스공사 측은 공사 시작 전 환경 오염 피해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영향 평가를 거치고, 부유 토사의 확산 방지를 위해 오탁 방지망을 설치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맞섰다. 재판에서는 삼척 LNG 생산 기지 건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부유 토사가 삼척을 넘어 경북 울진군 어민들의 어장에까지 확산됐는지, 이에 따라 어민들의 어획량이 감소해 실질적으로 손실이 발생했는지가 쟁점이었다. 

법원은 감정인을 선정해 부유 토사 발생과 어획량 변화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진행했다. 어업 피해 보상 사건에서는 감정인이 피해 영향을 조사한다. 대체로 법원은 원고(어민) 측이 신청한 감정인을 선정하고, 감정 결과는 곧 사건의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과학적 분석을 통한 논리적인 반박이 중요하다.


감정(鑑定) 오류 잡아낸 ‘바른’

어민 측 감정인 A씨는 2016년 3월 건설 공사로 인해 발생한 부유 토사 중 생물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정되는 농도 0.2㎎/L 이상의 부유 토사가 △저감 대책 수립 전의 경우 남북 방향으로 표층 14.21㎞ △저감 대책 수립 후의 경우 남북 방향으로 표층 13.28㎞까지 확산한다고 감정했다. 삼척 공사 현장에서 생긴 부유 토사가 울진군까지 흘러갔다는 의미다. 바른은 감정 결과를 분석해 수치 모델에 입력되는 기촛값(관측값)과 조건값이 잘못된 오류를 발견했다. 모래알 크기와 침강 속도 산정 방식이 실제 공사에서 발생한 부유 토사의 특성과 침강 속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A씨는 약 0.0415㎜ 크기의 모래알에 대해 0.432㎜/s의 침강 속도를 대입해 실험을 수행했는데, 모래알 크기의 평균을 산정한 지점은 공사 현장에서 떨어진 곳이었다. 아울러 A씨는 100년 빈도의 가장 큰 홍수 발생량을 대입해 부유 토사 확산 실험을 진행했다. 김 변호사는 “부유 토사의 크기(입경)를 작게 산정할수록 침강 속도가 낮게 계산되고, 그 결과 부유 토사 확산 범위가 실제보다 넓게 나타나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른은 A씨가 ‘최악의 조건’만을 대입해 어업 피해 범위를 산정한 것이라고 봤다. A씨는 실제 수행된 공사 내용이 아니라 계획 공사량을 대입했고, 동해의 특성상 바람·파랑·해류 등에 의한 영향이 조류(조석)에 의한 영향보다 크지만 조석 성분만을 추출해 수치 모형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이와 함께 부유 토사 확산 범위를 산정하면서 A씨는 ‘Tanimoto & Hoshika’의 입경 분류 기준 및 침강 속도 산정 공식을 사용했는데, 바른은 해수 밀도와 온도를 반영하는 ‘van Rijn’ 공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가 “해당 공식은 담수에서의 모래 등 입자의 침강 속도를 계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해수에서의 모래 침강 속도 계산 방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재판부는 “(A씨가 사용한 공식은) 부유 토사 확산 범위 예측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바른은 일부 해역에서 부유 토사 등의 환경 변화로 어류 서식 장소나 그 종류가 다소 변경된다고 하더라도 어업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주장도 했다. 이동성 어선 어업은 오염 물질이 퇴적되지 않는 개방된 수면에서 수산 동식물을 포획 또는 채취하는 사업으로, 외해에 서식하는 어류는 일정한 장소에 고착된 게 아니라 활발하게 이동하고 어선도 어류를 포획하기 위해 이동하기 때문에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부장판사 서보민)는 “어업 손해가 인정되는 허가 어업의 부유 토사로 인한 어업 생산 감소율은 0.02~0.22%, 어업 수익 피해율은 0.04~0.77%에 불과하다. 연간 손실액도 4만2000~190만10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심지어 이는 어민들이 입은 실제 손실액이 아니고, 일부 어민은 공사 수행 이후 어업 수익이 증가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어민들은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