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전통의 대한방직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패션의 본고장 뉴욕의 한 여성의류 브랜드를 들여오기로 하는 한편 타 업종으로 진출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공격경영의 중심에 3월16일 주총에서 CEO로 공식 취임할 이남석(43) 대한방직 대표이사가 있다. 그를 2월14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올해 뉴욕 여성의류 브랜드 도입 등 사업 다각화로 흑자 전환 시킬 것"

이남석 대표는 삼성종합화학 전략기획팀, 삼성중공업 경영기획팀, 삼성자동차 해외업무팀,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비서팀을 두루 거친 전략기획의 인재였다. 이런 그가 삼성을 떠난 것은 2000년 경영학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영국 옥스퍼드 경영대학으로의 유학길에 오르면서다. 그는 지난해 봄까지 영국에 거주하면서 기업경영전략을 공부했고, 삼성-르노-닛산의 자동차 전략적 제휴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에 몰두하던 2005년 말 아는 사람으로부터 대한방직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신규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경영인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였죠. 예전부터 삼성그룹에서의 경험을 적용할 좋은 기업을 생각해오고 있었던 터라 합류하게 됐습니다.”

설범(49) 대한방직 대표이사 회장의 연세대 경영학과 후배이기도 한 이남석 대표는 지난해 8월 부사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대한방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대한방직은 일명 슈퍼개미로 불려지는 두 큰손들이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M&A 이슈가 부각되고 있었다. 현재 그중 한 사람은 30억원의 차익을 얻으면서 대한방직의 지분을 전량 팔아치웠고, 나머지 한사람은 최근에도 지분을 21.34%에서 21.7%로 높였다. 그러나 이 대표는 “현재까지 회사 경영에 지장을 주는 (큰손의) 요구는 없었다”며 “사외이사 한 사람을 추천해 상견례 및 검증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조심스레 밝혔다.

 큰손이 사외이사 추천을 하면서 요구사항은?

전주공장 부지 개발 및 활용에 관심이 있고, 사외이사로 추천된 사람 역시 대기업 건설업종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요구가 회사 경영에 지장이 없는지?

전주공장은 100% 가동되고 있지 않다. 인근 지역이 도심지구가 되었다. 전주공장 유휴 부지를 활용, 증설을 할지 공장을 이전하고 용도 개발을 할 것인지 결정된 바는 없다.

전주시 대한방직 공장부지(20만7,900여㎡)는 당초 개발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전북지방경찰청에 이어 전북도청이 옮겨가면서 다시 개발 논의가 일고 있다. 공업지역으로 묶여 있는 이 땅이 준공업이나 주거지역으로 변경될 경우 땅값이 현재보다 최소 3배 이상 오를 것으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큰손은 바로 이점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방직은 매출이 지난해 전년에 비해 약간 오른 2448억원을 기록했지만 당기순이익은 전년 390억원에서 지난해 마이너스 44억원으로 적자로 반전됐다. 불황의 터널을 제대로 뚫고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쟁 방직회사들을 보면 기존 업종으론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의류, 금융 등 관련 및 비관련 사업으로 다각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수년간은 금융사업 후유증 때문에 바깥이나 신규사업으로 눈을 돌릴 입장이 아니었다.”

이남석 대표는 2006년 8월 부임 이후 신규사업을 검토해왔다. 그는 방직 관련 사업인 여성복 디자이너 브랜드 사업에 진출하기로 하고 뛰어다닌 끝에 최근 미국 뉴욕의 모 브랜드와의 근 성사 단계에 와 있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이 대표는 타 업종, 타 기업의 경영권 인수도 검토 중이다. 특히 설범 회장이 이 같은 신규사업에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련 업종은 좋고, 아닌 것은 나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인식은 근거가 없다. 중요한 것은 경영을 영위할 기업의 역량이다. 우리가 추진 중인 패션사업은 관련 업종 다각화라고 보기보다는 비관련 업종으로의 다각화라고 보면 된다.

대한방직은 과거 생명보험사, 종금사 등의 사업을 했고, IMF 경제체제에서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원 사업장, 대구 칠성동, 월배 등 부동산을 어쩔 수 없이 매각했다. 전주공장 부지는 향후 대한방직의 방향을 가늠하는 리소스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린 방직업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성장할 대체 사업이 있어도 방직업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혀 무관한 분야로의 진출은 힘들다. 이익이 많이 나고 인력 투입이 많지 않은 소위 황금알을 낳는 사업은 기초 체력 비축 후에 해도 가능하다”

이 대표는 내부조직에 대한 변화도 꾀하고 있다. 신규사업을 추진하는 등 재도약을 하려면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은 필수다. 그러나 그는 인원 감축 등과 같은 형태의 사기 저하를 가져오는 조직 개편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먼저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 회사 구성원 간 수평, 수직 조직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조직 개편이 불가피하지만, 파이를 키워서 내부 인적 자원을 활용하고, 개개인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교육, 직무 순환 등의 계획을 갖고 있다.”

대한방직의 올해 목표는 어떨까.

이 대표는 신규사업이 올 가을부터야 매출이 일어날 것이기에 작년보다 약간 늘어난 2500억원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는 대구 칠성동 부지 관련 기부 체납 비용 때문에 당기순이익이 적자였다”며 “올해는 획기적인 매출 증가 보다는 내부적으로 합리화, 효율화를 추구해 흑자로의 전환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