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땅(~stan, 스탄)이 곧 황금 땅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동남아시아에 이어 중앙아시아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개발, 개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검은 땅들을 미리 선점하기 위해서다.

국내 금융기관 중 중앙아시아 공략에 가장 발 빠르게 나서고 있는 곳은 (베트남??) 금융 한류의 주인공으로 불리는 브릿지증권이다. 진출지는 키르키즈스탄.

브릿지증권은 오는 3월초 키르키즈스탄의 수도 비쉬켁(Bishkek)에 일종의 부동산신탁회사인, ‘골든브릿지센추럴아시아’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개발사업이 한창인 현지 건설사의 분양 대금 관리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주선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키르키즈스탄 현지 법인 설립과 관련, 변원섭 브릿지증권 글로벌팀장은 “키르키즈스탄은 지난 14년 동안 주택 공급이 없어 수요가 엄청나고 이에 따라 주택개발사업이 한창이다”며 진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키르키즈스탄은 개발사업 붐이 일고 있지만 분양 대금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줄만한 부동산신탁회사도 없고 관련법도 미비한 상태”라며 “부동산 금융에 강점을 지닌 브릿지증권이 현지에 부동산신탁회사를 설립, 자금 관리와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노하우를 전수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릿지증권이 키르키즈스탄에 부동산신탁회사를 설립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그룹 송골매의 리더였던 구창모씨 덕분이다. 구창모씨는 현재 비쉬켁에서 1400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변 팀장은 “중앙아시아 진출을 고민하는 와중에 현지에서 건설업을 하는 구창모씨와 연이 닿았다”며 “분양 대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금융회사가 필요하다는 구창모씨의 요청에 따라 중앙아시아 진출을 앞당기게 됐다”고 말했다.

브릿지증권은 이번 ‘골든브릿지센추럴아시아’ 설립을 시작으로 중앙아시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이의 일환으로 연내에 키르키즈스탄 현지 은행을 M&A하거나 신규 설립하는 것도 추진 중에 있다. 외국 금융기관이 키르키즈스탄에서 은행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자본금이 최소 700만달러(62억원)가 필요하다.

브릿지증권은 키르키즈스탄 은행 인수 또는 설립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모기지론 시장을 선점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변 팀장은 “부동산신탁회사 설립과는 별도로 키르키즈스탄 현지 은행을 인수하거나 신규 설립하는 것도 추진 중이다”며 “중앙아시아는 아직 금융산업이 초기 단계라 영업에 한계가 있지만 주택개발사업과 모기지론 시장은 대폭 성장하고 있어 모기지 전문 은행을 만들 계획이다”고 밝혔다.

최근 카자흐스탄 아파트 개발사업에 뛰어든 현대증권도 현지법인 설립을 통한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올해 초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이 직접 현지 시찰을 다녀온 상태며 시장조사를 위해 전문가를 상주시키고 있다.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현지법인 설립 등 직간접투자를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진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올해 아시아 대표은행 도약을 선포한 우리은행도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와 함께 중앙아시아 진출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이를 위해 조만간 중앙아시아 유망 진출 지역에 지역 전문가를 파견, 시장조사를 하는 등 타당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이밖에도 올 상반기 중 중국 쑤저우( ?f)지점, 모스크바 현지법인, 뉴델리 사무소를 개설할 계획이며 인도네시아의 현지 은행을 M&A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국금융지주도 중앙아시아 진출에 적극적이다. 한국금융지주는 2007년 중 베트남에 현지 합작 증권사를 설립하고 몽골, 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지는 ‘금융 실크로드’를 개척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2020년 아시아 최고 종합 금융회사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있다.

한국증권 고위 관계자는 “한국증권의 투자은행업무 노하우를 가지고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에도 진출할 계획”이라며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진척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 증권뿐만 아니라 저축은행업계도 최근 중앙아시아 진출에 공격적이다. 이미 한국저축은행, 현대스위스저축은행, 모아저축은행 등이 카자흐스탄 등을 방문, 주택개발 프로젝트파이낸싱에 대한 사업성을 검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최근 저축은행들은 위로는 은행, 아래로는 대부업체 등과 경쟁하면서 점차 국내 영업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고객들에게 더 좋은 상품을 제공하고 영업 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선 이머징마켓 등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 등 위험 요소 많아 우려도

이처럼 국내 금융기관들이 중앙아시아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성장잠재력이 풍부한 시장을 미리 선점, 세를 넓히기 위한 포석이다.

실제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최근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은 상태다. 카자흐스탄은 2000년 이후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이어가고 있고,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여타 주변 국가들도 기지개를 펴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가속화하면 기초 경제 인프라인 금융시장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중앙아시아가 아직까지 ‘불모지’라는 점 때문이다. 즉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진출해 있지 않은 곳이 많아 경쟁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변원섭 팀장은 “키르키즈스탄 등 중앙아시아는 성장잠재력이 크지만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아직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많이 들어와 있지 않다”며 “몸짓이 작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시장을 공략하기엔 여건이 좋다”고 전했다.

한편 금융기관들의 중앙아시아 진출과 관련,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동남아시아에 비해 중앙아시아는 위험과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 이유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국내 금융기관들이 많이 진출한 인도,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지는 금융 시스템이나 사회·정치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지만 중앙아시아의 경우 아직 정치, 제도, 지리적 위험과 변수가 너무 많다”며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아직까지 중앙아시아 진출을 재는 것도 이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내 금융기관들의 이머징마켓 진출은 시대적인 필요성 때문이기는 하지만 진출 국가별로 보다 더 철저한 시장조사와 리스크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