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종합금융그룹인 HSBC가 파격적인 이자와 수수료 혜택을 담은 인터넷 서비스로 국내 리테일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점 방문 없이도 입출금, 이체 등 모든 은행 업무를 해결할 수 있는 다이렉트(Direct) 뱅킹 서비스가 바로 그것. 다이렉트 뱅킹은 이미 대만에서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2월1일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스미스 HSBC 아시아·태평양 대표를 만나 다이렉트 뱅킹과 향후 한국 시장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마이클 스미스 대표는 보통 HSBC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경영자(CEO)로 불리지만 공식 직함은 6개나 된다. 그는 아·태 지역 CEO와 함께 말레이시아 HSBC은행(베르하트) 회장, 호주 HSBC은행 회장, 항생은행 은행장, HSBC그룹 기업금융 글로벌 총괄대표, HSBC 금융회사 이사 등 6개 직함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맡은 역할이 많은 만큼 일정도 빡빡할 수밖에 없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위치가 “보기보다 화려하지 않다”고 농담 섞인 투정을 할 정도다. 그는 지난해 365일 중 20일은 비행기 안에서, 200일은 각국의 호텔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번 한국 방문 역시 당일치기였다.

때문에 그의 이동에는 항상 특별한 비즈니스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 보통이다. 그의 한국 방문 계획이 전해지자 국내 금융권에서 “HSBC가 국민은행 매각이 무산된 외환은행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의 추측과는 달리 그는 “이번 한국 방문은 특별한 비밀이 아닌 선물 보따리를 내놓기 위해서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외환은행 인수는 사실무근입니다. 외환은행의 문제(헐값 매각 검찰 조사)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한 고려할 생각도 없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 목적은 순수하게 다이렉트 뱅킹을 소개하기 위해서죠.”

아·태 지역 총괄 대표가 직접 캠페인에 나설 정도인 다이렉트 뱅킹이란 뭘까.

HSBC가 영국과 미국, 대만에 이어 네 번째로 한국에 선보이는 다이렉트 뱅킹은 인터넷 뱅킹과 콜센터 서비스를 합친 것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고객은 지점을 방문할 필요 없이 전화나 인터넷으로 모든 금융 서비스를 365일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통장 개설조차도 HSBC 직원이 직접 방문해 처리해주기 때문에 편리한 것이 장점이다. 국내 은행들도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지만 실명확인을 위해 고객이 꼭 한 번은 지점을 방문해야만 한다.

또 파격적인 이자와 수수료 혜택도 기존 국내 은행의 인터넷 뱅킹 서비스와 다른 점이다. 다이렉트 뱅킹은 고객이 저축예금(수시입출금식) 계좌에 단 하루만 돈을 맡겨도 연 3.5%의 이자를 지급한다. 이는 국내 시중은행의 수시입출금식 통장 이자에 비해 7~10배나 많은 수준이다. 예금 이자는 일단위로 계산되며, 매달 고객의 저축예금 계좌로 지급된다.

이체 등 서비스 수수료도 모두 공짜다. 다른 은행으로 이체할 때도 수수료가 없다. 최근 국내 은행들의 높은 수수료가 문제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공짜 수수료만으로도 고객들의 관심을 얻기에 충분하다.  

단 하루만 맡겨도 이자가 지급된다는 점에서 증권사 CMA와 비슷하지만 다이렉트 뱅킹은 예금자 보호가 되고 향후 대출과 보험, 펀드 상품 가입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

마이클 스미스 대표는 “다이렉트 뱅킹이 국내 은행들의 서비스 정책은 물론 고객들의 은행 이용 관행도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다이렉트 뱅킹이 활성화 된 영국에서는 은행 거래의 절반 이상이 다이렉트 뱅킹만 하는 회사를 통해 이뤄질 정도다. 또 대만의 경우 HSBC가 다이렉트 뱅킹을 시작한지 5주 만에 과거 5년간 확보한 고객보다 더 많은 고객들을 유치한 바 있다.

“다이렉트 뱅킹은 고객 편의를 높이면서도 더 많은 혜택을 줄수 있는 신개념 금융 서비스죠.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비결은 지점에 들어가는 비용을 인터넷과 콜센터로 줄였기 때문이죠. 이 서비스가 본격 시작되면 한국 고객들의 은행 이용 관행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는 한국에서도 다이렉트 뱅킹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국 고객들은 저축을 선호하는 데다 인터넷 이용률도 그 어느 곳보다 높기 때문. “다이렉트 뱅킹은 저축을 선호하는 한국인에게 적합한 상품이죠. 더욱이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고 인터넷 뱅킹에도 익숙해 다이렉트 뱅킹이 자리 잡기에 적합한 시장입니다.”

HSBC가 다이렉트 뱅킹 서비스 국가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한국을 택한 것은 영업기반이라 할 수 있는 지점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HSBC는 현재 전국에 11개 지점만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수백 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경쟁 자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투자비용을 줄이면서 시장을 효율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이렉트 뱅킹만한 것도 없는 셈이다. 마이클 스미스 대표가 직접 한국을 찾아와 홍보에 나선 것도 그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거는 기대도 크다는 반증이다.

지점 확대, 비은행 부문 투자 등 계획

마이클 스미스 대표는 “한국 시장은 잠재력이 풍부한 시장으로 동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며 지점 확대 등 추가적인 투자 계획도 밝혔다. 지점 확대와 관련 그는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HSBC의 규모는 충분하지 않다”며 “부족한 부분인 영업망(지점)은 단계별로 확충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은행을 제외한 증권 및 자산운용사 등 비은행 부문의 진출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한국 내 전략은 자생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한국 금융시장도 금융 겸업화, 자본시장통합법 등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좋은 기회가 온다면 M&A도 진행할 계획이죠. 특히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맞춰 증권 자산운용 등 비은행 부문에서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해외펀드(역외펀드) 비과세 문제와 관련, 마이클 스미스 대표는 “한국이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참여자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하며,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정부는 최근 해외에서 운용되는 역외펀드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외국계 금융기관의 불만을 사고 있다.

그는 또 최근 경쟁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국내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도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해외시장은 나라마다 제도나 영업환경이 완전히 다릅니다. 또 고객 성향이나 태도도 천양지차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보다 우위에 있다고 쉽게 접근해서는 안 되죠. 이 점을 숙지한다면 한국 금융기관들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