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부터 시행되는 ‘모델별 자동차보험료 차등화’로 인해 자동차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모델별 자동차보험료 차등화’란 동급 차량(동일 배기량의 자동차)이라도 손해율(사고 발생에 따른 보험금 지급 비율)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즉 같은 배기량의 자동차라 할지라도 사고 발생 시 파손 위험이나 수리비용 등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는 것이다. 파손 위험이 높거나 수리비용이 많이 드는 차는 보험료가 비싸지고 반대는 저렴해진다. 자동차 및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패턴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7년 7월25일, 가족의 안전을 고려해 1600cc 중형차에서 3000cc 대형차로 바꾸기로 한 김오너씨는 며칠간 여러 차종의 디자인과 성능, 가격 등을 비교하다 점찍어 두었던 자동차 대리점을 찾았다.

대리점 직원과 상담하던 그는 끝마무리에 이렇게 물었다.

“이 차는 보험료가 얼마예요?”

그러자 대리점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본사에서 제작한 ‘모델별 자동차보험료 안내서’를 내밀었다. “동급 최저입니다. 그만큼 차량 안전도가 높고 부품 가격도 싸서 유지비용이 적게 들죠”

김씨가 마음에 둔 자동차는 동급 차량 중 가격이 제일 비쌌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보험료가 싸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하고 장기적으로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차종별 보험료 차등화

조만간 자동차 대리점이나 중고차 매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앞으로 새 차나 중고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는 브랜드, 디자인, 성능, 가격뿐만 아니라 보험료까지 세세히 체크해야 된다. 4월부터는 배기량이 같은 자동차끼리도 손해율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는 ‘모델별 자동차보험료 차등화’가 본격 시행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배기량이 같은 자동차는 모델(브랜드)에 상관없이 자차보험료(할인율 및 특약 제외)가 동일했다. 하지만 4월부터는 배기량이 같아도 모델별로 손해율에 따라 보험료가 최고 5만원까지 차이가 나게 된다.

지난해 12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동차보험료 개선안’을 만든 보험개발원은 현재 보험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자동차 모델별 기준요율을 뽑고 있다. 보험개발원은 오는 2월말에서 3월초까지 기준요율을 완성해 각 손해보험(이하 손보)사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손보사들은 이 기준요율에 자사의 차종별 손해율을 따져 최종적으로 보험료를 책정하게 된다. 책정된 보험료는 4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정태윤 보험개발원 자동차보험본부 상품팀장은 “그동안 보험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는 차량 충돌 테스트 등을 통해 차량의 손상성(파손 정도), 수리성(수리 용이성 및 비용) 등 손해율 데이터를 축적해왔다”며 “이 데이터를 기초로 오는 2월말이나 3월초까지는 차종별 기준요율을 뽑아 손보사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우선 자차보험(자기차량손해담보)부터 적용된다. 제도 도입에 따른 소비자들의 혼란과 자동차업계의 부담을 고려해서다. 향후 보험개발원은 제도 시행 효과에 따라 단계별로 대물, 대인, 자손보험 등으로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내 차 보험료 어떻게 달라지나?

제도가 시행되면 보험개발원의 기준요율에 따라 동급 차량이 11개 등급으로 나뉜다. 기준 등급은 6등급이며 등급이 낮을수록 손해율도 낮은 것으로 자차보험료는 싸진다. 등급간 가격 차이는 최대 ±10%다. 즉 1등급 차량은 자차보험료가 10% 할인되고, 11등급인 차량은 10% 할증되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배기량의 자동차라도 모델별로 자차보험료가 최대 20%까지 차이가 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차보험료로 20만원을 냈던 소비자의 보유 차량이 1등급 판정을 받을 경우 보험료는 2만원이 준 18만원을, 11등급 판정을 받을 경우 22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연식이나 차량기준은 등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모델이 같으면 등급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1500cc 아반떼XD(기본형 기준)가 5등급 판정을 받았다면 2005년형이나 2003년형이나 모두 똑같은 등급이 유지되는 것이다. 단 ABS, 오토매틱 등 옵션 설치 여부에 따라 자차보험료는 달라질 수 있다.

또 올해 출시되는 신 모델 자동차는 이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보험개발원은 자동차업계의 부담을 고려해 올해 출시되는 신 모델 자동차에 한해 1년간 자차보험료 차등화를 유예했다. 2008년부터는 신 모델 자동차도 출시 이전에 자차보험료가 차등 적용된다.

정 팀장은 “제도가 도입되면 소비자가 어떤 차를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진다”며 “하지만 등급에 따라 보험료가 인상된 만큼 또 인하되기 때문에 전체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아직 보험개발원이 기준요율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자동차별로 보험료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보험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1500cc 자동차 모델별 손해율을 보면 대충 윤곽은 알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1500cc 자동차(ABS미장착)는 칼로스(지엠대우), 스펙트라(기아자동차), 슈마(기아자동차), 쎄라토(기아자동차), 베르나센스(현대자동차) 순으로 손해율이 높았다. 손해율이 기준 등급(6등급)에 해당했던 자동차는 세피아Ⅱ였다. 손해율이 가장 낮은 자동차는 현대자동차의 엑센트, 지엠대우의 라노스, 누비라 순이었다. 이 자료가 큰 변동이 없다면 현대자동차의 엑센트가 지엠대우의 칼로스보다 보험료가 저렴하게 된다.





자동차, 보험료 따라 울고 웃는다

자동차의 손상성과 수리성 등 손해율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면서 소비자의 구매 패턴에도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보험료가 싸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하고 부품 가격, 공임 등 수리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정 팀장은 “자동차 모델별로 보험료가 차등화 되는 만큼 소비자의 선택 기준도 다양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다수 자동차 전문가들도 4월 제도가 시행되면 단기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동차 브랜드 인지도는 물론 판매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영호 대우증권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아직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판가름하기 힘들지만 정비망이 좋고 부품 조달이 원활한 현대자동차 등 수위 업체에게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 엄승섭 메리츠증권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도 “당장 차종별 보험료가 차등화 된다고 해도 자차보험에 한정되고 가격 차이도 크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 판매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보험료 차등화의 조건이 자동차의 손상성과 수리성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소비자들의 자동차 브랜드 인식이나 구매 기준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차종별 보험료 차등화가 세분화되고 확대될 경우 그 파장은 시장 판도를 바꿀만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보험료 차이가 커지거나 대물, 대인, 자손보험까지 차등화할 경우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보험료를 기준으로 바뀔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상민 동양증권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제도가 시행돼도 가격 민감도가 낮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자동차 판매보다는 브랜드 인지도나 회사별 마케팅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향후 대물, 대인, 자손보험까지 확대되고 보험료 가격 차이가 커지면 실제 판매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차종별 보험료 차등화가 소비자의 브랜드 인지도와 구매 패턴은 물론 종국에는 부품 가격, 자동차 정비망, 차량 가격 등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현대기아자동차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최윤식 연구원은 “모델별 자동차보험료 차등화는 소비자의 자동차 선택은 물론 자동찬산업 전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라며 “손해율이 자동차의 손상성과 수리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부품 가격 및 수리 공임이 인하될 가능성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자동차 정비망과 자동차 제작 및 설계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자동차보험료로 인해 자동차산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대책 마련에 ‘분주’

제도 시행에 따른 엄청난 파장이 예상되자 자동차업계도 바빠졌다.

현재 현대기아, 지엠대우, 르노삼성 등 자동차업체들은 내부적으로 제도 시행 이후 시장 변화를 분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각 사별로 수리 체계 개선, 부품 세분화 및 가격 인하 등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제도 도입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보험료 낮은 자동차가 좋은 차’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부품 가격 인하 등으로 손해율을 낮춰 경쟁사와의 자동차보험료 갭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이미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를 통해 시장 변화를 분석하고 부품 가격 및 수리 체계 개선, 마케팅 차별화 등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현대기아자동차는 차등화 된 자동차보험료를 마케팅에 활용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손보사들과의 제휴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연구원은 “제도 시행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동차보험료를 줄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회사별로 부품 가격 및 공임 인하, 수리 체계 개선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소비자 구매 패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동차보험료를 광고, 홍보 등 마케팅에 활용해 경쟁사와 차별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지배력, 정비망 등 전반적으로 현대기아에 비해 열세인 지엠대우, 르노삼성도 마찬가지다. 지엠대우 관계자는 “아직 시행 전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다”면서도 “내부적으로 제도 시행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도 “시장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현재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하지만 자동차보험료 차등화가 소비자에게 자동차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자칫 시장을 흙탕물로 만들까봐 걱정이다”고 우려했다.

자동차업체보다 더 걱정하고 있는 곳은 중고차업체와 수입차업체들이다. 단종된 중고차의 경우 부품 조달이 원활하지 않고 이 때문에 부품 가격이나 수리 공임도 상대적으로 높다. 또 수입차의 경우도 부품 조달이 힘들고 가격 면에서 국산차에 비해 불리하다. 수리가 용이하지 못하고 비용도 높다는 것은 자동차보험료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국내 최대 중고차 판매업체인 SK엔카 최현석 본부장은 “중고차 고객들은 차량 가격이나 유지비용, 세금 등 돈에 민감한 고객들이다”라며 “따라서 자동차보험료가 차등화 되면 판매에도 영향이 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중고차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제도 시행으로 수요가 줄면 차량 가격도 떨어질 것”이라며 가격 변화 가능성도 전망했다.

이에 따라 SK엔카 등 중고차업체들은 차종별 고객 반응 변화에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단종차에 대한 재고를 줄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중고차 판매에서 단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50% 정도다.

수입차업체들은 부품 조달 체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소비자들은 특성상 보험료, 세금 등 부대 비용에는 민감하지 않다”며 “하지만 제도 시행으로 모델별 수리 용이성에 대한 변별력이 생기면 판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부품 조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됐다”고 전했다.



<< 모델별 자동차보험료 차등화 왜 도입하나 >>

합리적인 보험료 책정, 손보사·소비자 부담 완화

손보업계에서 ‘모델별 자동차보험료 차등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손보업계는 합리적인 보험료 산정 및 영업수지 안정을 위해 이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자동차업계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돼 왔다.

일반적으로 동급 차량이라고 할지라도 교통사고 발생 시 파손 정도나 수리비용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배기량, 연식, 차량가액을 제외하고 이러한 변수들이 자동차보험료에 적용되지 않았다. 때문에 합리적인 보험료 산정이 힘들었고, 이는 곧 소비자와 손보사의 부담으로 전가됐다.

단적인 예로 사고 발생 시 가장 많이 교체되는 범퍼의 경우 현대기아자동차는 분리형을 쓰지만 지엠대우, 르노삼성차는 일체형을 사용한다. 통상 분리형 범퍼는 사고 부위만 교체하면 되기 때문에 파손 정도와 상관없이 통째로 갈아 끼우는 일체형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이처럼 부품별로 가격 차이가 있지만 자동차보험료(자차보험료)는 배기량에 따라 모두 대동소이하다.

정태윤 팀장은 “사고 발생 시 차종별로 파손 정도와 수리비가 다르지만 그동안 배기량, 연식, 차량가액이 동일한 소비자는 모두 똑같은 보험료를 내왔다”며 “더 많이 보험료를 내야 할 소비자가 적게 냄으로써 전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의 강력한 반대와 로비에도 불구 오는 4월 이 제도가 전격 도입된 것은 청와대가 나섰기 때문이다. 손해율 증가로 손보업계의 영업수지가 급격히 악화되자 지난해 4월 노무현 대통령은 개선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보통 손해율이 72%(100원에서 72원을 보험료로 지급)가 넘으면 손보업계의 영업수지가 악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고 발생이 많아지면서 손해율이 80%를 넘어선 상태다.

당시 자동차업계에서는 “대통령이 별걸 다 챙긴다”며 손보사 로비설이 지적됐지만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힘을 얻은 손보업계는 재빨리 그동안 준비한 개선안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 제도가 자동차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면서 개선안도 자차보험에 한정된 것이다. 손보업계와 자동차업계가 한 발씩 양보함 셈이다.

도입 배경이야 어떻든 제도가 시행되면 소비자들은 보다 합리적인 자동차보험료를 낼 수 있고,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도 다양해져서 그만큼 효과를 볼 수 있다. 손보사의 영업수지도 완화될 수 있다. 반면 자동차업계는 부품 가격 인하, 수리 체계 및 자동차 설계 개선 등이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편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 이 제도가 도입된 상태다. 또 자차보험뿐만 아니라 대물, 대인, 자손보험까지 기준을 세분화해 적용하고 있는 국가도 있다. 독일에서는 이 제도의 시행으로 10년 만에 부품 가격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