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정년 단축으로 ‘은퇴 이후 생활’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민거리가 됐다. 특히 ‘은퇴 준비생’으로 불리는 50대들에게는(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은퇴 나이는 53세다) 각별하다. 당장 은퇴 이후 끊기는 생활비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퇴직금이 남아 있다면 얼마간 생활은 유지할 수 있지만 소득 없는 지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불안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국민연금이 소득원이 될 수 있지만 지급 시기나(65세) 그 규모는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어 길고긴 노후를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은퇴 이후 생활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자산운용업계에서 ‘은퇴 전도사’로 불리는 김형호(46) 아이투신운용 상무에게 물었다.

“은퇴자 2(주식) : 8(채권)  투자가 제격”

채권 전문가인 김형호 상무가 ‘은퇴 전도사’로 불리게 된 것은 지난 1월2일 국내 최초로 생활비 지급형 상품인 매월분배형펀드(아이러브평생직장채권펀드, 이하 생활비펀드)를 선보이면서 부터다. 이 펀드는 국내외 채권에 투자해 그 수익을 매월 고객에게 지급하는 펀드로, 은퇴를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사람들의 노후 보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매월 지급되는 수익은 콜금리+0.25%(현재 연 4.75%) 정도. 즉 2억원을 투자한 고객이라면 매월 79만원(연 950만원) 정도를 받아 생활비에 보탤 수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장점이 부각되면서 이 펀드는 최근 은퇴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펀드는 만기나 환매 때만 수익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펀드는 단순히 목돈 마련을 위한 투자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생활비펀드가 출시되면서 고정관념은 깨졌다. 펀드의 용도가 목돈마련에서부터 은퇴 준비로까지 넓어진 것이다.

김 상무는 주변에 은퇴한 사람들 대다수가 일정한 소득이 끊기는 것을 가장 걱정하는 것을 보고 2006년 9월부터 상품 개발에 나섰다고 한다.

“정작 상품 개발에 나섰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동안 많은 상품을 만들어봤지만 가장 힘들었던 펀드로 기억될 것 같아요. 펀드는 ‘만기나 환매 때 수익을 돌려받는다’는 고정관념이 강했고, 관련 법령이나 규정은 물론 회계 처리도 미비했기 때문이죠. 2개월간 밤을 새가며 상품 구조를 설계하고, 판매사와 금감원을 다니면서 상품을 이해시켰죠.”

어렵게 만들어진 만큼 보답도 따랐다. 매월 수익을 지급하는 새로운 상품 구조가 인정받으면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배타적우선상품권을 획득한 것. 이에 따라 여타 자산운용사들은 유사상품을 취급할 수 없는 상태다.

매월 콜금리+0.25% 수익 지급

김 상무는 은퇴 이후 노후생활을 위해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한다면 안전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원금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자산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은퇴자는 소득이 없는 만큼 투자 손실이 곧 노후생활 불안으로 이어진다”며 “50대 은퇴자라면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때 2:8(주식:채권) 비율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주식 비중을 줄여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설명했다.

또 연금상품이나 역모기지론 등 안전자산에 가입할 때도 일정한 수익 보장은 물론 유동성이나 원금 확보가 가능한지 여부도 체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령화로 삶이 길어지면서 언제 급전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모기지론(집이나 자산을 담보로 매월 생활비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이 인기가 없는 이유는 일단 대출상품이라는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원금이 없어지는 소멸성이라는 것 때문이죠.”

그가 생활비펀드를 개발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것도 유동성과 원금 보존이었다. 이 펀드는 운용 수익을 매달 지급하지만 일부분은 펀드 내에 남겨둬 원금을 불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즉 생활비 보장은 물론 자산 증식 효과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또 펀드 특성상 언제든 환매가 가능해 급전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할 수도 있다. 투자 리스크도 적다. 통상 금리가 오르면 채권펀드의 수익률은 하락하지만 이 펀드는 수익률이 오르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반대로 금리가 떨어지면 다소 손해를 볼 수 있다.

김 상무는 국민연금과 함께 생활비펀드를 보완 수단으로 투자한다면 은퇴 이후 노후생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생명보험협회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물가 수준을 감안할 경우 부부가 노후생활을 위해 필요한 금액은 월 167만원 정도다. 따라서 국민연금과 함께 생활비펀드로 매월 일정한 소득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안정적인 노후생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노후생활을 위해 10억원 이상 필요하다는 여타 금융기관들의 통계는 사실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말 그대로 럭셔리하게 사는 일부 부유층들을 위한 것이죠. 국민연금을 통해 월 100만원을 받는다면 2억(월 지급액 79만원)~3억원(118만원) 정도만 생활비펀드에 투자해도 넉넉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은퇴 자산 설계하는 펀드 개발중

김형호 상무는 앞으로 다양한 유형의 생활비펀드가 시장에 선보이는 것은 물론 ‘국민 상품’으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했다. 고령화가 빨라지는 만큼 노후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연금상품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

실제로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생활비펀드가 은퇴 준비물로 여겨지고 있다. 국내보다 앞서 고령화에 접어든 일본의 경우 생활비펀드가 전체 공모펀드 시장의 36%(15조9558억엔, 한화 127조원)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아직 초기라 매월 수익을 지급하는 주식형과 채권형 2개 펀드만 출시된 상태지만 앞으로는 국내외 자산을 기초로 수많은 생활비펀드가 출시될 것입니다. 또 수익 지급 방식도 고객의 니즈에 따라 한 달, 분기별, 반기별 등 다양한 형태로도 가능하죠. 이렇게 될 경우 생활비펀드는 목돈 마련을 위한 적립식 펀드와 함께 대표 펀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 상무는 펀드 하나로 은퇴 이후 투자자 스스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는 생활비펀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미 상품 개발을 시작한 상태로 연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모자 펀드인 이 상품은 투자 대상이 국내외 주식, 채권은 물론 인덱스, 부동산, 실물 등 다양하게 설계될 예정이다.

“고령화로 인해 은퇴 이후에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됐죠. 이에 따라 은퇴 이후에도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인생 2막을 사는 것이죠. 은퇴 자금이 많은 고객이라면 인생 2막도 힘들이지 않고 펼칠 수 있지만 부족한 고객이라면 투자를 통해 이를 보충해야죠. 따라서 은퇴 이후에도 자산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고객들을 위해 펀드 하나로 인생 2막과 자산 포트폴리오를 함께 맞춰갈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