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 주류 시장 특수를 두고 ‘순한 소주의 독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법정에서 맞붙은 진로와 두산이 장본인들이다. 진로는 두산주류BG의 ‘처음처럼’ 이벤트마케팅 대행사에 대해 100억원의 손배소를 청구한 것. 과연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2006년 9월18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음식점. 두산의 이벤트 진행요원을 본 진로영업사원 강모씨는 준비한 녹음기를 꺼내들었다. 이벤트 진행요원은 ‘처음처럼’을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슬이(참이슬후레쉬)가 일본에서 만든 거거든요. 한 병당 로열티가 장난이 아녜요.”

 진로는 2006년 2월경부터 악성루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진로가 일본 기업에 넘어 갔다’는 루머가 대표적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루머에 진로 측은 당황했다고 한다. 특히 소비자들의 근거 없는 반일감정은 진로에게 큰 부담되었던 것. 때문에 영업사원들이 식당에 참이슬을 들여놓을라치면 주인이 직접 나서 “참이슬은 일본 거니 안 받겠다”고 돌려세우는 일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쯤되자 진로는 임직원들에게 악성루머에 대한 홍보지침을 내리고, ‘순수 국민기업’이라는 내용이 삽입된 인쇄물을 제작·배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아울러 진로는 각종 일간지에 ‘하나 된 하이트와 진로가 외국자본으로부터 우리 경제를 지키는 한국의 대표주가 되겠습니다’는 문구와 더불어 조선시대 장군이 성을 지키는 이미지의 광고도 진행했다. 또 이 광고 안에 진로의 지분이 하이트맥주 41.9%, 교원공제회 21%, 군인공제회 16.5%, 기타(산업은행, 새마을금고 등) 20.6%로 구성돼 있다며 일본기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확실하게’ 내비쳤다.

 

진로 경쟁사 이벤트대행사에 소송

비수기 7~8월에 잠잠했던 소문은 9월이 되자 다시 살아나 진로를 괴롭혔다. 9월은 바로 진로가 19.8도의 저도수 소주인 ‘참이슬 후레쉬’를 내놓은 시기다.

 진로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진로가 일본기업이라는) 그 말이 사실이냐’며 전화를 걸어오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심지어 진로의 한 임원은 “어느 날은 아내까지 나서서 ‘반상회에서 진로가 일본 기업이란 얘길 들었는데 나한테만은 사실대로 이야기해 달라’고 독촉하더라”고 전했다고 한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의욕적으로 내놓은 ‘참이슬 후레쉬’가 이제 막 알려질 무렵인데 루머가 더 빠르게 확산돼 가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었어요. 아시다시피 소주는 한국 사람에게 ‘생필품’ 같은 것입니다. 이런 제품은 한번 이미지가 나빠지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워요.”

 진로는 2월 즈음 루머가 퍼질 때부터 우호적인 고객들로부터 “경쟁업체 이벤트 담당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더라”는 말이 들어왔다. 이번엔 ‘바로 알리기’에 그치지 않고 ‘증거 확보’에 나섰다. 강남역, 신촌 등 소주 이벤트가 열리는 곳을 영업사원들이 자리를 지켰다. 강씨가 경쟁사 이벤트 대행사 진행요원을 만난 때가 바로 이때다.

 진로는 2006년 9월21일 현장녹취자료와 관련사진 등을 근거로 이벤트 진행요원 2명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소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매출 하락과 기업 이미지 훼손을 이유로 두산의 이벤트대행사인 프로모팩토리와 진행요원에 대해 100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민사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프로모팩토리는 두산 ‘처음처럼’의 광고를 의뢰받는 대행업체고, 진행요원은 프로모팩토리의 인력공급업체인 S사에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이다.

 진로는 소장에서 “허위사실 유포행위는 국민기업으로서의 긍정적 이미지를 훼손하고 반일감정과 연계하여 진로의 사회적 가치를 저하시킴은 물론 참이슬 판매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도 자료를 통해 “통상적으로 기업들이 이벤트업체에 위탁할 때는 제품 홍보 및 제품 특성, 마케팅 전략 등에 대한 교육 자료를 제공한다”며 “그 배후(이벤트 업체에 위탁한 업체)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두산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

두산 “우리와는 무관한 일”

“물론 인력업체로부터 공급받은 아르바이트생이 교육을 나가기 전 두산 직원이나 이벤트업체 직원으로부터 교육을 받습니다. 하지만 해야 할 말만 교육합니다. 아마도 일부 도우미들이 행사 대상자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실적을 올리려고 자신이 들은 소문을 얘기 했던 듯합니다.”

두산 관계자는 진로측의 주장을 사실상 부인한 것이다. 당시 불과 두 팀이 강남역에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지는 소주 이벤트의 특성상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기에도 바쁜데 경쟁사 흠 잡을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진로가 손배소를 내자 두산은 보도 자료를 통해 “진로 직원들이 두산 직원을 사칭해 유도심문을 해 얻어낸 이야기를 가지고 아르바이트비 5만원을 벌기 위해 일하는 학생과 조그마한 이벤트 회사를 상대로 100억원대 소송을 거는 것은 판매 부진의 원인을 외부 요인으로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차라리 두산에 소송을 걸라”며 “이는(두산에 소송을 걸지 못하는 것은) 이번 사건이 두산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진로 측이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두산 관계자는 “이런 루머는 아사히맥주의 진로 인수 시도 및 최근 진로재팬의 매각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해 소문의 근원지가 진로임을 지적했다.

어쨌든 진로측이 민형사소송을 취하하지 않는 이상 이번 소주전쟁은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따라서 이번 싸움의 판가름이 소주 애주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