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박8일 간의 강도 높은 해외 출장길에서 바로 전 날 돌아왔다는 원명수(59) 메리츠화재 대표이사의 얼굴에선 피로함을 느낄 수 없었다. 미국 5개 도시에서 열아홉 번의 미팅을 소화했다며 원 대표는 “아주 힘든 출장이었다”고 손사레를 쳤지만 엄살처럼 들렸다. 그러나 첫 출근과 함께 장시간 회의를 주재했던 탓일까. 건강을 묻는 질문에 원 대표는 유난히 ‘CEO의 건강’을 강조하며 우회적으로 피로함을 호소했다.

채 2년도 안 된, 지난 2005년 3월 이후 메리츠화재는 국내 어느 기업보다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해 동양화재에서 메리츠화재로 CI를 변경하고 여의도에서 강남 신사옥으로 이전한 것은 변화의 시초일 뿐이었다. 메리츠증권 인수에 이어 한불종금까지 자회사로 편입해 몸집을 불려, 2008년 종합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매출 확대 등 그동안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성장에 주력해 왔던 경영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와 수익성 위주의 내실 경영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2005년 26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 전년 대비 성장률 면에서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주가도 3배 정도 상승했다. 2006년 11월에는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로부터 보험업계 최초로 A3(전망 : 안정적) 등급을 획득하기도 했다.

한진그룹 계열이었을 당시에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변화다. 그러나 계열 분리 이후 대외적인 행보는 공격 지향적으로, 대내적으로는 방어 지향적으로 경영 전략을 전환함으로써 1년 반 만에 전혀 다른 회사를 창조해 냈다.

그 중심에는 조정호 회장이 있었다. 그리고 조 회장을 보좌한 전문경영인 원명수 대표가 또 있었다. 조 회장과 원 대표 투 톱 체제로 메리츠화재는 ‘수익성 위주의 성장’을 모토로 기업문화와 시스템을 혁신하고 임직원들의 의식전환을 통해 차별화된 전략을 바탕으로 전문금융회사의 비전을 달성해가고 있다.

이를 위해 원 대표는 연수원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회사나 개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꼭 가져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연수원입니다.” 때문에 원 대표는 교육프로그램에 CEO와의 대화를 신설하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연수원을 찾아 신입사원부터 임원에 이르기까지 직접 대화에 나서고 있다. 서울 우이동의 연수원을 방문하기 위해 길에서만 왕복 2~3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원 대표는 그 시간을 허비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임직원과의 대화와 그 대화를 통해 얻게 되는 다양한 목소리가 곧 회사 발전의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CEO는 작은 일에 간여를 하지 않습니다. 또 그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디테일한 부분에 CEO들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작은 것에서 큰 방향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 대표는 미국 은행과 보험회사 근무 경력에 국내 은행, 생보·손보업계를 두루 거친 금융 전문가다. 현재 국내 보험업계와 관련 학계에서 채 50여 명도 안 되는 미국 CPCU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CPCU(Chartered Property Casualty Underwriter)는 미국 손해보험 전문인 자격 프로그램 인증서. 손해보험 전문인 중 으뜸으로 통하고 있다.

- 수익 경영의 성과가 매우 크다고 들었습니다. 내용과 전략은 무엇인지요?

솔직히 말씀드려 큰 성과를 냈다고 말씀드리기는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2006년은 상반기(9월)까지 전체적인 시장 상황의 악화로 큰 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업계 전체적인 상황과 비교해서는 당기순이익이나 자동차손해율 면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나 언론, 감독당국 등 외부에서 우리 메리츠화재를 ‘보험업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회사’라는 평가를 해 주는 것에서 성과를 다소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익성 위주의 성장이라는 모토 아래 수익성에 근거해 채널별 영업자원 투입을 차별화했고, 장기보장성 신계약 판매를 위한 타깃 마케팅을 실시했습니다. 또 불완전판매 근절방안을 마련하고 종목별 언더라이팅 강화를 통한 우량 물건 인수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 대외 신인도도 많이 향상되었지 않습니까.

2006년 11월23일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로부터 보험업계 최초로 A3 등급을 획득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무디스는 S&P, 피치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신용평가 기관 아닙니까. 이런 회사로부터 보험업계 최초로 A3 등급을 획득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보험회사 신용평가 전문기관인 A.M.Best사로부터도 지난해보다 한 단계 상향된 B++를 획득했습니다. 이렇게 향상된 신인도를 바탕으로 대형 일반보험 입찰 경쟁에 당당히 나설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고객들의 신뢰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 메리츠증권에 이어 최근엔 한불종금까지 인수하며 금융그룹의 모습이 갖추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금융전문그룹이란 비전은 언제쯤 가시화되고,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는 무엇입니까.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등 최근의 금융 환경은 은행이나 증권, 보험 등을 더 이상 따로 보지 않고 하나의 울타리 내에서 경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고 한·미 FTA 추진 등으로 인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보험, 증권, 종금 등을 하나로 묶어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업종을 뛰어넘어 여러 가지 금융 상품을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경쟁력 있는 전략입니다. 비록 지금은 초기단계로 회사의 지배구조 측면에서만 금융그룹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전략, IT, 상품, 마케팅, 인적 교류 등의 측면에서 활발한 교류와 통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금 여러 시나리오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2007년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인력, 조직, 제휴 등 세팅을 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2008년이면 완성된 그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림이 완성되면 인당 생산성 향상, 경쟁력 있는 상품의 출시, Cross-selling(일괄판매)이나 Co-marketing(공동마케팅) 등을 통한 제반 시너지 창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중장기적으로 여타 금융 산업에까지 영역을 확대할 계획도 추진할 수 있게 됩니다.

- 최근 금융 시장은 세계적으로 대형화 추세에 있는데, 중소형 금융전문그룹의 비전은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최근 금융환경이 급변하면서 ‘대형화’는 세계적 추세일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이 생존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귀결점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기관 대형화가 시작됐지만 세계 유수 금융기관의 자산규모와 비교했을 때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보험 쪽은 아직도 대형화에 대한 진전이 미흡해 중소 규모의 보험사가 많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중소 규모의 보험사도 나름대로 특화된 시장에서 제한적이고 차별화된 전략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고, 미국이나 유럽 등 금융 선진국에도 이러한 형태의 소규모 보험사가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객에게 진짜 제대로 된 Total Risk Solution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보험회사도 경쟁력 있는 규모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메리츠화재가 지금 시점에서 ‘작지만 강한 보험회사’를 지향하고 있는 것도 실은 ‘대형화’ 정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 스스로 실력을 키우고 내실을 갖춰 놓은 연후에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대형화를 추진할 것입니다.

- 최근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매우 높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과 전망은 무엇입니까.

자동차보험은 대통령께서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또 손해보험 산업에서 어렵지만 풀어야 할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수지타산만을 놓고 본다면 적게 팔거나 아예 팔지 않는 것이 좋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자동차보험을 공적부조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정부의 시각과 이에 따른 여러 가지 정책, 또한 자동차보험을 일종의 게이트웨이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영업 가족이나 판매 관리자들의 기대에 비추어 소홀히 하기는 어려운 상품입니다. 특히 온라인 자동차보험이 산업에 나타난 이후 가격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수익성 악화가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보험 원리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수지상등의 법칙’입니다. 즉, 들어온 보험료와 나가는 보험금이 대수의 법칙에 따라 동일한 수준이 되는 것이 원칙인데, 정부의 정책 지도나 회사 간 이전투구의 양상에 따라 시장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험 상품을 내놓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결국 손해율 악화는 물론이고 손해보험 산업 전체의 경쟁력 악화를 초래하는 형국이 돼 버렸습니다. 소비자와 감독당국 그리고 보험사 모두의 이익을 위해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메리츠화재는 지역별, 차종별, 채널별 등 각종 통계자료를 통한 수익성 분석을 통해 언더라이팅과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상품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는 장기, 일반보험 등 우량상품 구성비를 높이고 자동차보험 구성비를 점차 축소시키는 등의 방법을 병행하면서 ‘자동차보험 손해율 악화’라는 난제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 자동차보험은 레드오션이라고 합니다. 손보회사도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블루오션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가 각종 연구와 검토를 통해 최근 주목하고 집중하고자 하는 시장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상품 측면에서 두 가지, 채널 측면에서 한 가지입니다. 상품 측면에서는 ‘중소상공업 시장’과 ‘고령화 사회 대비 시장’입니다. 중소상공업 시장은 그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 미용실, 도소매업, 옷가게 등으로 시장에서 보험 수요는 있지만 리스크가 너무 다양하고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보험회사에서 외면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시장의 리스크를 잘 분류해 통합하고, 체계적인 관리 툴(Tool)을 마련함으로써 새로운 마케팅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만간 신상품도 출시할 계획입니다. 다음은 고령화 사회 대비 시장인데 노후연금보험이라든가 노후 간병, 건강보험 등을 출시할 것을 연구, 검토하고 있습니다.

채널 측면에서는 ‘Agency’ 채널 육성에 중점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장차 판매의 전문성과 생산성 등을 문제로 독립된 Agency 채널이 각광받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우리 회사는 지난 10월 업계 최초로 Agency 채널을 전문으로 하는 영업부를 전국적으로 신설했습니다.

- 최근 민영의료보험 시장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현재 정부가 진행 중인 민영의료보험 제도 개선은 국민의 의료복지 수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져야 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과 민영의료보험 간 역할은 수요자인 국민의 요구(Needs)를 만족시키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합니다. OECD 등 선진국에서는 자국의 여건에 맞게 보충형, 대체형, 중복형 등으로 운영되고 있고, 올 1월 의료보험 제도를 변경한 네덜란드의 예에서 보듯이 정부의 역할은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머지는 민간보험사에서 담당하는 형태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우리 손해보험업계는 지난 40여 년간 민영의료보험 운영을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부문 부족분을 보완하여 계약자들의 의료비 부담 경감에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향후 전문가들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현명한 방안으로 처리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향후 손보업계의 경영 환경 변화에 대한 전망과 더불어 메리츠화재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향후 보험 환경은 경영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현재의 보험 환경보다 하나도 나아질 것이 없다고 보면 될 정도로 경영에 압박을 주는 부담 요소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변화 속에서 메리츠화재는 일단 보험, 증권, 종금 등으로 대변되는 금융그룹화를 통해 금융겸업화 시대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남보다 한발 앞선 준비를 통해 향후 유리한 입지를 먼저 점유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강점입니다. 또 일단은 작지만 강한 회사, 남들과는 사고방식과 전략이 다른 차별화된 회사, 의사결정 과정이 누구보다 투명하며 제반 Compliance Risk에 대한 대비가 철저한 선진화된 회사를 만든다는 전략적 방향성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강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84년 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겪어왔던 많은 변화와 풍파 속에서도 꿋꿋하게 역경을 이겨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전통과 자신감, 임직원 간에 서로 믿고 신뢰하고 사람을 가장 중요한 경영자원으로 인식하는 따뜻한 기업문화가 제3의 경쟁 무기가 될 것입니다.

CEO의 건강을 강조했던 원 대표는 평소 휘트니스센터에서 건강관리를 한다고 했다. 많은 CEO들이 즐기는 골프는 3년 전부터 시작했다. 시간을 많이 빼앗겨 배우지 않으려 했지만 “운동량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자연스럽게 교분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력은 평균 100타로 비기너(beginner) 수준이다. 대신 30년 정도 스키를 즐기고 있다. 상급자 코스에서도 무리 없이 내려올 수 있는 실력이다. “이번 주말에도 스키장에 간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은 원 대표는 “언젠가 여건이 되면 알프스 쪽에서 헬기 스키를 타보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