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9일 마틴 빈터콘 아우디 회장은 파리 모터쇼에서 “현대차와 같은 대량생산 자동차 회사가 고급 자동차 브랜드로 변신하려면 장기적이고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우디는 1970년대까지 만해도 현대자동차의 포니 같은 소형차를 만들던 평범한 업체였다. 그런 아우디가 혁신을 통해 하나의 자동차 생산업체로서 디자인 정체성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마틴 회장은 모터쇼에서 ‘전사적 디자인 경영(Total Design Management : TDM)’에 대해 굳이 규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우디의 정체성을 위해 과감한 기술의 혁신(innovative technology)을 이룸과 동시에 이탈리아 알파로메오사(社) 출신의 유명 카 디자이너 ‘발터 드 실바’를 영입, 고유한 디자인 정체성을 함께 이뤄 냈다.

아우디의 엔진기술과 디자인이 알려지기 전까지 만해도 자동차 디자인에선 신선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신선한 형태와 개념의 아우디 디자인은 소비자들의 안목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독일의 자동차 첨단 기술과 이탈리아의 디자인을 합금시킨 오늘의 아우디는 자동차시장의 새로운 신화로 거듭났다.

아우디의 성공은 하이터치와 하이테크의 결합을 통해 일구어 낸 전사적 디자인 경영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여기까지 오는데 아우디는 20년이라는 ‘험난한 디자인 매니지먼트’의 길을 걸어왔다. 이는 또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영자들 대부분은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하고는 있다. 하지만 마틴 빅터콘 아우디 회장과 같이 경영자 스스로가 전사적 디자인 경영 체제로 이끌어 갈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경영자들이 1980년대 이후 기술 중심의 전사적 품질 경영 시대를 지향해온 지난 세기의 관성에 따라 경영에서 디자인을 첨단 기술의 하위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디자인이 경영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뿐더러 전사적 디자인 경영 체제는 그들에게 먼 훗날의 이야기일 것이다.

디자인을 모르는 CEO는 리더십을 잃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대부분의 CEO세대들이 예술에 대한 이해가 결핍된 교육을 받아왔고 예술성이나 미적 감각에 대한 공복감마저 느끼지 못하는 생활을 해온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인지 디자인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들은 리더십을 발휘할 안목이 없었다.

앞으로는 ‘technology without design(디자인 없는 기술)’도 ‘design without technology(기술 없는 디자인)’도 성공할 수 없다. 이 말은 디자인의 성공 없이는 기술의 성공도 반쪽의 성공일 수밖에 없고, 디자인의 성공도 기술의 성공 없이는 온전한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최근 들어 시장은 첨단 기술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첨단 기술이 보편화, 일반화하는 추세다. 이 같은 현실에서 제품의 경쟁력은 디자인에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CEO들은 이제부터라도 디자인은 기술을 ‘포장’하는 분야가 아니라, 기술을 ‘성공’시키는 분야이며 디자인을 통해 기술의 가치를 ‘증폭’시키는 분야로 인식해야 한다. 좋은 예로 애플사의 ‘MP3-iPod’를 생각해 보자. 사실 MP3 기술은 이미 알려진 기술로 상용화되고 있었던 기술이다. 그런데 2004년 선보인 ‘MP3-iPod’ 디자인의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애플의 주가가 1년간 200% 급신장을 했을 뿐 아니라, 애플의 맥킨토시 컴퓨터의 매출을 능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또 아우디의 경우에서도 자동차의 기술이 매출을 올리는 성공을 거두었다기보다는 아우디만의 디자인 스타일을 찾아 낸 것에 성공이 있었던 것이다.

디자인 사고의 중추는 ‘extra sense(또 다른 그 무엇을 느끼는 감각)’이다. 기술은 이 ‘extra sense’를 가능케 하는 기능적인 사고가 그 중추다. 근대 과학소설의 선구자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의 <해저 이만 리>는 ‘쇠는 물에 뜰 수 없다’는 물리학적 지식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시대에 집필됐다. 이 소설에 나오는 노틸러스호와 네모 선장의 이야기는 기술적 사고로는 상상할 수 없는 콘텐츠였다. 하지만 베른은 특유의 상상력 즉 ‘extra sense’로 당시의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노틸러스호를 소설 속에서 디자인해 냈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한 문학가의 ‘extra sense’를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고 촉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결과적으로 베른의 생각이 망상이나 공상이라고 하기에는 과학적 합리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extra sense’를 생산으로 직결시키기 위해서는 TDM 시대를 열어 가야 한다. 국가도 전 국가적 디자인 경영 시대를 열어야 하고, 기업도 TDM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extra sense’가 작동하는 사회를 열어야 하고, extra sense’가 기업의 조직이 되어야 하며, ‘extra sense’의 열정이 숨 쉬게 하는 사회 문화, 기업의 문화 환경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를 강력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 CEO들 스스로 디자인에 대한 안목을 높여야 하며 예술에 대한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970년대를 마케팅을 위한 교육 시대라 하고, 1980년대 이후를 기술 경영을 위한 교육 시대라 한다면 미래는 디자인 경영 시대를 위한 디자인 교육 시대로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디자인이 고부가 가치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영기 제품디자이너 이화여대 디자인학과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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