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부자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서울 성북동에서 시작한 부촌의 역사는 강남 8학군의 요지 대치동을 ‘교육 부촌’으로 바꿔 놓았고 남쪽으로 향하는 관문 분당·용인을 ‘명문 신도시’로 치켜세웠다. 변화를 거듭해 온 ‘한국판 베벌리힐스’를 시리즈로 찾아간다.

지난해 4월 건설교통부가 전국 단독주택 가격을 처음으로 공시하면서 최고 부촌으로 공인된 서울 한남동. 한국 부촌의 상징인 한남동(漢南洞)은 이름부터 심상찮다.

남쪽에 한강(漢江)이 흐르고 서북쪽으로 남산(南山)이 있다 해 한강과 남산의 앞 글자를 따 지었다는 것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이후 한남동으로 불러 온 이곳은 한마디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터.

풍수학계에서는 한남동을 ‘한강 물이 감싸고도는 데다 남산에서 서빙고동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가 품어 안고 있는 형국’이라고 묘사한다. 남산서 뻗어 나온 용맥의 기운이 응집되는 곳이 바로 한남동으로 집터로는 더 좋은 자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국내 굴지의 재벌 총수들이 한남동에 운집해 사는 가장 큰 이유도 이 같은 풍수지리에 있다는 게 정설.

이건희 삼성 회장 저택 공시가 85억원

내로라하는 재벌들 저택 가운데서도 ‘별 중의 별’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 이건희(64) 회장 자택이다. 우리나라 총주택 1301만 가구 중 가장 비싼 집으로 2006년 공시가격만 85억2000만원에 이른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이 2004년 7월 완공한 이 저택은 대지 649평에 연건평 1040평,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 이 회장 자택은 직사각형 건축물 위에 검은색 지붕을 얹고 오각형 모양의 창을 내 유럽 저택을 연상시킨다.

지난해 한강 조망권과 소음 때문에 ‘이웃집’ 신춘호(74) 농심 회장과 법정소송까지 가는 신경전을 벌였던 일화로 유명하다. 풍수 전문가인 박민찬 신안계물형학연구소 원장은 “이 회장 집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금계포란형)으로 집터로는 최고의 길지”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남산 기슭에 솟아 있는 그랜드 하얏트호텔 후문 아래부터 한남대로 건너편 단국대 부근까지 퍼져 있는 주택가가 한국 갑부(甲富)들의 동네, 한남동이다. 인근에 이건희 회장 누나인 이숙희씨(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부인)와 여동생인 이명희(63) 신세계 회장, 정용진(38) 신세계 부사장 등도 살고 있어 한남동은 ‘삼성 타운’으로도 불린다. 실제 이곳에는 2004년 10월 개관한 삼성미술관(리움미술관)과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삼성문화재단도 자리 잡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외 정몽구(68) 현대차 회장과 구본무(61) LG 회장 등 국내 재계 ‘빅3’ 총수는 물론 박삼구(61) 금호 회장, 김준기(62) 동부 회장 등도 한남동 일대에 살고 있다. 한마디로 ‘재벌 총수의 집성촌’으로 부를 만하다.

이들 총수들이 살고 있는 집값만 더해도 웬만한 중소기업 연간 매출액을 뛰어넘을 정도다. 2005년 공시지가 기준으로 신춘호 농심 회장의 자택이 26억8000만원, 구본무 회장 자택이 18억4000만원, 정몽구 회장 자택이 18억3000만원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주택 공시지가가 시세의 80%선에서 결정된다는 건 서민 집 얘기”라며 “우리를 통해 거래되는 경우가 없어 추정만 가능하지만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 될 것”이라고 귀띔한다.

오너들의 저택은 대부분 골목 한두 개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 고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 집에서 왼쪽으로 꺾어 50미터 들어가면 이명희 신세계 회장 집이 나오고 이 집과 마주보고 있는 집이 정용진 부사장 집인 식이다. 구본무 LG 회장 집과 김준기 동부 회장 집도 몇 십 미터 안쪽에 이웃해 있다.

대부분 3~4미터의 높은 벽과 수십 개의 감시용 CC카메라가 둘러싸 철저하게 사생활을 보호하고 있다는 게 공통점. 실제 한남동에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다는 40대 남성은 “사람들이 ‘저 집이 누구네 집’이라고 말해 줘 듣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이 집이 어떤 회장 집인지는 정확히 모른다”고 들려줬다.

외교 1번지 특성상 ‘삼엄 경비’ 혜택도

그렇다면 왜 재벌 총수들이 한남동에 모여 살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첫 번째 이유를 탁월한 풍수지리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풍수에서 재물을 뜻하는 물(한강)이 한남동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두 번째 이유를 찾자면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교통 요지라는 점. 남북으로 지나는 한남로는 한남대교와 남산 1호터널로 이어져 강남과 중구 필동으로 연결되고, 강변북로와 이태원로, 소월길, 독서당길 등이 있어 서울의 동서남북 어디로도 쉽게 통할 수 있는 접근성 면에서 탁월하다는 것.

세 번째 이유는 바로 한남동이 외교 1번지라는 점이다. 최근 UN사무총장에 내정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을 비롯, 30여 개국의 외국 대사관과 영사관이 즐비하다. 경찰의 삼엄한 경비가 24시간 가능한 지역이라는 게 이유다.

한남동이 재벌촌이지만 국내 표본주택 가격 1위도 한남동에 있는 유엔빌리지다. 지난해 4월말 건교부 발표에 따르면 유엔빌리지 내 2층 주택 값은 27억20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서민들의 재테크 수단인 아파트 값은 강남에 비해 그리 비싸진 않다. 금호리첸시아만 해도 33평의 경우 스피드뱅크, 닥터아파트, 유니에셋의 시세표에 따르면 4억9000만원에서 5억8000만원대로 평당 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한남동 아파트는 대단지가 아닌 ‘나 홀로 아파트’ 형태가 많아 투기성 매수세가 유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남동은 2002년께부터 한남 뉴타운 개발로 들썩이고 있는 점도 특징. 한남동 산동네부터 보광동, 이태원을 아우르는 한남 뉴타운의 평당 지분가는 2500만원에서 3000만원을 호가한다. 오병화 한남부동산 공인중개사는 “가장 비싼 지분은 평당 35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고 들려준다.

그러나 재벌촌 등 고급주택 지역의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경기 변동에 둔감한 데다, 매매조차 뜸하기 때문이다. 단지 몇 년간 큰 변화가 없던 유엔빌리지 값은 최근 약간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얼마 전부터 강남의 30~40평대 아파트를 처분한 사람들이 유엔빌리지 가격을 많이 물어 와 이 동네 사람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싼값에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파트 값이 강남만 못해도 ‘한남동’이라는 동네 지명도가 최소한 강남보다 훨씬 높다는 게 이 지역의 자존심인 듯 했다.

그러나 한국 제1의 부촌 한남동에도 ‘옥에 티’는 있다. 인도대사관을 중심으로 왼쪽 아랫길로는 부잣집들이 즐비한 반면, 오른쪽으로 불과 50미터 정도만 걸어가도 마치 80년대 풍경을 연상케 하는 ‘달동네’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남2동 동사무소의 한 직원은 “한남동은 한국 최고의 재벌들이 몰려 사는 동네이면서 서울에서 생활보호대상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며 “한국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큰 동네가 바로 한남동”이라고 촌평했다.

박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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